천리 장성은 고구려가 당의 침략에 대비하여 631년(영류왕 14)
12월부터 647년(보장왕 6)까지 16년의 공사 끝에 완성한 성이다. 북단은 부여성(농안)이며,
남단은 비사성(대련)이다. 연개소문은 이 성곽 축조를 감독하면서 요동 지방의 군사력을 장악함으로써
영류왕을 죽이고 보장왕을 세우는 정변에 성공하여 독재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이 천리 장성은 기존의 성곽을 연결시켜 각개의 기존 성곽을 독립적인 방어 체제로 구축하였다.
천리 장성의 핵심부는 요동성이고, 그 북방의 백암성과 남방의 안시성은 배후 산성으로서 고구려
수비를 책임지는 요충이었다. 특히, 요동성은 주몽의 사당이 있을 정도로 고구려의 중요한 정치적
거점이 되었다.
백암성은 현재 요양시 등탑현 서대요향 관둔촌에 위치한 석성으로 거의 완벽하게 남아 있다. 비사성은
대련시 금주구 대흑산성에 있는데, 그 위치로 보아 고구려의 해상 기지에 해당한다. 특히 성 남쪽의
오호도는 당군이 군량미를 비축하던 군사 기지로서 서해 제패의 관문이 되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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