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은 우리나라의 고유 문자를 만들기 위하여
궁중에 정음청을 설치하고 집현전 학자들인 성삼문, 신숙주 등을 중심으로 한자의 음운을 연구하게
하였다. 세종과 이들 집현전 학자들은 1443년(세종 25년)에 한글을 창제하고 용비어천가 등을
지어 실제 사용의 모범을 보인 후, 1446년(세종 28년)에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 반포하였다.
훈민정음은 나중에 언문, 반절 등으로 불리다가 주시경에 의하여 한글로 불리게 되었다.
한글은 세계 역사상 매우 우수한 문자로서 창제될 당시에는 자음 17자, 모음 11자로 모두 28자의
문자였다. 한글은 28자의 문자로 우리말의 소리를 정밀하게 표기할 수 있으며, 우리말을 정확히
표기할 수 있는 자모 문자로 만들어졌다. 또 한글은 세계의 다른 문자들과 달리 사람의 발음 기관을
본떠서 문자의 모양을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한글은 누구나 배우기 쉽고 쓰기 쉬운 대중적 문자로서
세종이 훈민정음의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익혀 날마다 써서 편리하게 만들었다.
세종과 함께 한글 창제에 참여한 정인지는 한글이 간단하고 요긴하면서도 이해하기 쉬워 현명한 자는
하루 만에도 익힐 수 있고 어리석은 자는 10일 안에 배울 수 있다고 그 우수성을 설파하였다.
언어학자 다이어먼드(J. Diamond)는 과학 전문지 디스커버리(Discovery)에서 한글이
가장 과학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지식의 확산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한글을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인 문자라고 그 우수성을 격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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