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오류신고

오류신고

1 같은 내용인데 해석차이가 있습니다. ㆍ작성자 : 윤더거
ㆍ자료명 : 사료로 본 한국사 ㆍ오류 유형 : 오자·탈자
ㆍ자료위치 : http://contents.history.go.kr/id/hm_067_0070
초조대장경 판각 유래에 관한 설명 중
1. 사료로 본 한국사, 불교 사상과 신앙, 대장각을 각판하면서 기도하며 올리는 글

'옛날 현종 2년(1011)에 거란주(契丹主)가 크게 군사를 일으켜 와서 정벌하자 현종은 남쪽으로 피난하고, 거란 군사는 송악성(松岳城)에 주둔하고 물러가지 않았습니다. 현종은 이에 여러 신하들과 함께 더할 수 없는 큰 서원을 발하여 대장경 판본을 판각하자 거란 군사가 스스로 물러갔습니다. '

2. 사료로 본 한국사, 거려의 우수한 문화유산, 인쇄술의 발달 – 팔만대장경과 상정고금예문

'옛적 현종(顯宗) 2년1)에 거란주(契丹主)가 크게 군사를 일으켜 와서 정벌하자 현종이 남쪽으로 피난하였는데, 거란 군사는 오히려 송악성(松岳城)에 주둔하고 물러가지 않았습니다. 현종이 이에 여러 신하와 함께 더할 수 없는 큰 서원을 세워 대장경 판본을 판각해 완성하자 거란 군사가 스스로 물러갔습니다. '

3. 우리역사넷, 한국사 연대기, 고려, 초조대장경
이규보(李奎報)가 1237년(고종 24)에 지은 「대장각판군신기고문(大藏刻板君臣祈告文)」 에는 고려에서 처음으로 대장경을 판각한 사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맨 처음 대장경을 만들게 된 이유를 살펴보면, 옛날에 현종 2년에 거란이 크게 군사를 일으켜 침략해오자 현종 임금께서는 남쪽으로 피난하시고 거란군은 수도인 송악성(松岳城)에 주둔하여 물러가지 않았습니다. 이에 현종 임금께서 여러 신하와 함께 위없는 큰 서원을 내어 대장경을 판각하기로 맹세하자, 거란 군사가 스스로 물러갔습니다. 대장경을 새기고자 임금과 신하가 함께 발원하는 것이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데, 어찌 그때 거란군만 스스로 물러가고 지금 몽골군은 그렇지 않겠습니까. 다만 여러 부처님과 천신들께서 보살펴주시는 데 달려있을 뿐입니다.'

이상의 내용들을 살펴보면 1번에서는 '대장경 판본을 판각하자 거란 군사가 물러남' 2번에서는 '대장경 판본을 판각해 완성하자 거란 군사가 물러남'
3번에서는 대장경을 판각하기로 맹세하자 거란 군사가 물러남'
으로 나와있습니다. 고려사의 기록에 따르면 1011년 1월 28일 양규가 거란군과 싸우다 죽다(고려사절요에도 같은 날로 기록됨)
1011년 1월 29일 거란주가 군대를 이끌고 압록강(鴨綠江)을 건너 물러났다.'
라고 나와있습니다. 또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의 초조대장경 항목에는
' 1011년에는 현종이 남쪽으로 난을 피하였으나 거란군이 송악에서 물러나지 않으므로 군신이 무상의 대원을 발하여 대장경판을 새기기로 서원한 뒤 거란군이 물러갔다는 기록이 있다.' 라고 나와있어 3번과 유사한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1번을 보면 대장경을 판각하기 시작하자 거란이 철수 2번은 대장경 판본을 판각해 완성하자 거란이 물러남
으로 의미가 완전히 다릅니다. 특히 2번은 판본을 판각해 완성하자라고 써저였어 대장경이 완성된 것으로 오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출처가 같은 사료임에도 내용이 너무 상반되는 것 같아 확인 후 정확한 해설을 부탁드립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ㆍ등록일 : 2021-03-11
ㆍ처리 현황 : 완료
ㆍ처리 내용 : 해당 내용은 한국사 연대기의 내용을 기준으로 통일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