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도경에 나타난 민생

사료로 본 한국사 고려시대 사회 백성들의 생활 모습 고려도경에 나타난 민생

고려도경에 나타난 민생

신이 듣기에 고려는 땅이 넓지 않으나 백성은 매우 많다.사민(四民)의 업(業) 중에 유학자를 귀하게 여기므로, 고려에서는 글을 알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

산림이 매우 많고 넓고 평탄한 땅이 적기 때문에, 경작하는 농민이 장인에 미치지 못한다. 주군(州郡)의 토산물이 모두 관아에 들어가므로 상인은 멀리 다니지 않는다. 다만 대낮에 도성의 시장에 가서 각각 자기가 가진 것과 자신에게 없는 물건으로 바꾸는 정도에 만족하는 듯하다.

그러나 고려 사람들은 은혜를 베푸는 일이 적고 여색을 좋아하며, 분별없이 사랑하고 재물을 중히 여긴다. 남녀 간의 혼인에도 경솔히 합치고 쉽게 헤어져 전례(典禮)를 따르지 않으니 진실로 비웃을 만하다. 지금 그 나라의 백성을 그림으로 그리되 진사(進士)를 이 편(篇)의 첫머리에 둔다.

선화봉사고려도경』권19, 민서

고려도경에 나타난 민생

臣聞高麗, 地封未廣, 生齒已衆. 四民之業, 以儒爲貴, 故其國, 以不知書, 爲恥.

山林至多, 地鮮平曠, 故耕作之農, 不迨工技. 州郡土產, 悉歸公上, 商賈不遠行. 唯日中, 則赴都市, 各以其所有, 易其所無, 煕煕如也.

然其爲人, 寡恩好色,泛愛重財. 男女婚娶, 輕合易離, 不法典禮, 良可哂也. 今繪其國民庶, 而以進士, 冠于篇.

『宣和奉使高麗圖經』卷19, 民庶 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