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장왕(寶藏王) 27년(668) 가을 9월에 이적(李勣)
이세적
이 평양을 함락시켰다. 이적이 이미 대행성(大行城)에서 이기자, 다른 길로 나왔던 여러 군대가 모두 이적과 합쳐 진격하여 압록책(鴨淥柵)에 다다랐다. 우리 군사가 맞서 싸웠으나 이적 등이 이를 패배시키고, 200여 리를 쫓아와서 욕이성(辱夷城)을 함락시키니, 여러 성에서 도망하고 항복하는 자들이 이어졌다. 글필하력(契苾何力)이 먼저 군사를 이끌고 평양성 밑에 이르니, 이적의 군대가 뒤를 이어 와서 한 달이 넘도록 평양을 포위하였다. 보장왕은 천남산(泉男産)
연남산(淵男産)
을 보내 수령 98명을 거느리고 흰 기를 들고 이적에게 나아가 항복하였다. 이적이 예로써 접대하였다. 천남건(泉男建)
연남건(淵男建)
은 오히려 문을 닫고 항거하여 지키면서, 자주 군사를 내보내 싸웠으나 모두 패하였다. 남건은 군사의 일을 승려 신성(信誠)에게 맡겼는데, 신성은 소장(小將) 오사(烏沙)와 요묘(饒苗) 등과 함께 몰래 이적에게 사람을 보내 내응하기를 청하였다. 5일이 지난 후 신성이 성문을 여니, 이적이 군사를 놓아 성에 올라가 북치고 소리 지르며 성을 불 질렀다. 남건은 스스로 찔렀으나 죽지 않았다. 당나라 군사가 왕과 남건 등을 사로잡았다.『삼국사기
'삼국사기' 관련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