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악(新羅樂)은 삼죽(三竹), 삼현(三絃), 박판(拍板), 대고(大鼓), 가무(歌舞)였다. 춤은 두 사람이 추었는데, 그들은 뿔 모양의 복두(放角幞頭)를 쓰고, 자주색의 큰 소매가 달린 공란(公襴)을 입고, 붉은 가죽 띠와 도금한 띠 고리가 있는 허리띠를 두르고, 검은 가죽신을 신었다. 삼현은 첫째는 거문고(玄琴), 둘째는 가야금(加耶琴), 셋째는 비파(琵琶)였다. 삼죽은 첫째는 대금(大笒), 둘째는 중금(中笒), 셋째는 소금(小笒)이었다. ……(중략)……
회악(會樂)과 신열악(辛熱樂)은 유리왕(儒理王, 재위 24~57) 때 지었다. 돌아악(突阿樂)은 탈해왕(脫解王, 재위 57~80) 때 지었다. 지아악(枝兒樂)은 파사왕(婆娑王, 재위 80~112) 때 지었다. 사내(思內)[혹은 시뇌(詩惱)라고 한다.]악(樂)은 나해왕(奈解王, 재위 196~230) 때 지었다. 가무(笳舞)는 나밀왕(奈密王, 내물왕, 재위 356~402)
때 지었다. 우식악(憂息樂)은 눌지왕(訥祗王, 재위 417~458) 때 지었다. 대악(碓樂)은 자비왕(慈悲王, 재위 458~479) 때의 사람인 백결(百結) 선생이 지었다. 우인(竽引)은 지대로왕
때 지었다. 날현인(捺絃引)은 진평왕(眞平王, 재위 579~632)
때의 사람인 담수(淡水)가 지었다. 사내 기물악(思內奇物樂)은 원랑도(原郞徒)가 지었다. 내지(內知)는 일상군(日上郡)의 음악이다. 백실(白實)은 압량군(押梁郡)의 음악이다. 덕사내(德思內)는 하서군(河西郡)의 음악이다. 석남 사내(石南思內)는 도동벌군(道同伐郡)의 음악이다. 사중(祀中)은 북외군(北隈郡)의 음악이다. 이는 모두 우리 사람들이 기쁘고 즐거운 까닭으로 지은 것이다. 그러나 악기의 수와 가무의 모습은 후세에 전하지 않는다.
'나밀왕(奈密王, 내물왕, 재위 356~402)' 관련자료
지증왕(智證王)
(智大路王, 재위 500~514) 때의 사람인 천상욱개자(川上郁皆子)가 지었다. 미지악(美知樂)은 법흥왕(法興王, 재위 514~540) 때 지었다. 도령가(徒領歌)는 진흥왕(眞興王, 재위 540~576)
'진흥왕(眞興王, 재위 540~576)' 관련자료
'진평왕(眞平王, 재위 579~632)' 관련자료
다만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정명왕
신문왕(神文王)
(政明王, 재위 681~692) 9년(689)에 신촌(新村)에 행차하여 잔치를 베풀고 음악을 연주케 하였다. 가무(笳舞)에는 감(監)이 6명, 가척(笳尺)이 2명, 무척(舞尺)이 1명이다. 하신열무(下辛熱舞)에는 감이 4명, 금척(琴尺)이 1명, 무척이 2명이고 가척(歌尺)이 3명이다. ……(중략)…… ”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전할 뿐 상세한 것을 말할 수 없다. 신라 때에는 악공(樂工)을 모두 척(尺)이라고 불렀다.『삼국사기
'삼국사기' 관련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