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왕후 오씨(莊和王后吳氏)는 나주(羅州) 출신이다. 할아버지는 오부돈(吳富伅)이고 아버지는 오다련군(吳多憐君)이며 대대로 목포에 살았다. 다련군은 사간(沙干)
신라의 17 관등 중 8관등으로 지방민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관등
연위(連位)의 딸 덕교(德交)와 혼인해 왕후를 낳았다. 일찍이 왕후가 포구의 용이 뱃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놀라 깨어 부모에게 꿈 이야기를 하였는데 부모도 (이를) 기이하게 여겼다. 얼마 뒤 태조(太祖, 877~943)가 수군장군(水軍將軍)으로 나주에 출진하여 배를 목포에 정박시키고 시냇물 위를 바라보니 오색구름이 서려 있었다. 그곳으로 가 보니 왕후가 빨래를 하고 있었는데 태조
가 그녀를 불러 잠자리를 같이하였다. 그러나 (태조
는) 왕후의 가문이 미천한 탓에 임신시키지 않으려고 돗자리에 사정하였는데, 왕후가 즉시 이를 자신의 몸에 집어넣어 마침내 임신하고 아들을 낳으니 그가 바로 혜종(惠宗, 912~945)
이다.
'태조' 관련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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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종(惠宗, 912~945)' 관련자료
혜종
은 얼굴에 돗자리 무늬가 새겨져 있었는데 세상 사람들은 혜종
을 ‘주름살 임금’이라 불렀다. 항상 잠자리에 물을 가져다 두었고 또 큰 병에 물을 담아 두고 팔 씻기를 즐겨 참으로 용의 아들이라 할 만하였다. (혜종
이) 나이 7세가 되자 태조
는 그가 왕위를 계승할 덕성을 가졌음을 알았지만, 어머니의 출신이 미천해 왕위를 계승하지 못할까 염려하여, 낡은 상자에 자황포(柘黃袍)
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그를 태자로 세우자고 건의하였다. 왕후가 죽자 시호를 장화왕후라고 하였다.
'혜종' 관련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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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나 국왕을 상징하는 옷
를 넣어 왕후에게 내려 주었다. 왕후가 이를 대광(大匡)
고려 초 종1품 관직이자 16관계 중 제3위에 해당, 실질적 최고위직
박술희(朴述熙, ?~945)에게 보이자 박술희가 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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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권88, 「열전」1 [후비1] 장화왕후 오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