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조판서 정인지(鄭麟趾, 1396~1478)
의 서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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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자연의 소리가 있으면 반드시 천지자연의 글이 있게 되니, 옛날 사람이 소리로 인하여 글자를 만들어 만물의 정(情)을 통하여서, 삼재(三才)
천⋅지⋅인
의 도리를 기재하여 뒷세상에서 변경할 수 없게 한 것이다. 그러나 사방의 풍토가 구별되매 성기(聲氣)
목소리와 기운을 아울러 이르는 말
도 또한 따라 다르게 된다. 대개 외국의 말은 그 소리는 있어도 그 글자는 없으므로, 중국의 글자를 빌려서 그 일용(日用)에 통하게 하니, 이것이 둥근 장부가 네모진 구멍에 들어가 서로 어긋남과 같은데, 어찌 능히 통하여 막힘이 없겠는가. 요컨대 모두 각기 처지에 따라 편안하게 해야만 되고, 억지로 같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 동방의 예악 문물이 중국에 견주어졌으나 다만 방언(方言)과 이어(俚語)
국어 속에 나타나는 사투리. 곧 표준말이 될 수 없는 말과 속된 말
만이 같지 않으므로, 글을 배우는 사람은 그 글이 가리키는 뜻을 이해하기 어려움을 근심하고, 옥사(獄事)를 다스리는 사람은 그 곡절의 통하기 어려움을 괴로워하였다. 옛날에 신라의 설총(薛聰, 655~?)이 처음으로 이두(吏讀)를 만들어 관부(官府)와 민간에서 지금까지 이를 행하고 있지만, 그러나 모두 글자를 빌려서 쓰기 때문에 혹은 어려워서 막히고 혹은 질색하여, 다만 비루하여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언어의 사이에서도 그 만분의 일도 통할 수가 없었다.
계해년(1443, 세종
25) 겨울에 우리 전하께서 정음(正音) 28자를 처음으로 만들어 예의(例義)를 간략하게 들어 보이고 명칭을 ‘훈민정음
’이라 하였다. 물건의 형상을 본떠서 글자는 고전(古篆)을 모방하고, 소리에 인하여 음(音)은 칠조(七調)1)
에 합하여 삼극(三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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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칠음(七音). 곧 궁(宮)⋅상(商)⋅각(角)⋅치(徵)⋅우(羽)의 다섯 음(音)과 반치(半徵)⋅반상(半商)과의 일곱 음계(音階)을 말한다.
천⋅지⋅인
의 뜻과 이기(二氣)
음⋅양
의 정묘함이 구비되어 포괄되지 않은 것이 없어서, 28자로써 전환하면 무궁하고 간략하면서도 요령이 있으며 자세하면서도 통달하게 되었다. 그런 까닭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아침나절이 되기 전에 이를 이해하고, 어리석은 사람도 열흘 만에 배울 수 있게 된다. 이로써 글을 해석하면 그 뜻을 알 수가 있으며, 이로써 송사(訟事)를 청단(聽斷)하면 그 실정을 알아낼 수 있게 된다. 자운(字韻)은 청탁(淸濁)을 능히 분별할 수 있고, 악가(樂歌)는 율려(律呂)가 능히 화합할 수 있으므로 사용하여 구비하지 않은 적이 없으며 어디를 가더라도 통하지 않는 곳이 없어서, 비록 바람 소리와 학의 울음이든지, 닭 울음소리나 개 짖는 소리까지도 모두 표현해 쓸 수 있게 되었다.
마침내 해석을 상세히 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이해하라고 명하시니, 이에 신이 집현전
응교 최항(崔恒), 부교리 박팽년(朴彭年)
과 신숙주(申叔舟)
, 수찬 성삼문(成三問)
, 돈녕부 주부 강희안(姜希顔)
, 행 집현전
부수찬 이개(李塏)⋅이선로(李善老) 등과 더불어 삼가 모든 해석과 범례를 지어 그 경개(梗槪)를 서술하여, 이를 본 사람으로 하여금 스승이 없어도 스스로 깨닫게 하였다. 그 연원(淵源)의 정밀한 뜻의 오묘(奧妙)한 것은 신 등이 능히 발휘할 수 없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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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생각하옵건대, 우리 전하께서는 하늘에서 낳으신 성인(聖人)으로 제도와 시설(施設)이 백대(百代)의 제왕보다 뛰어나시어, 정음의 제작은 전대의 것을 본받은 바도 없이 자연적으로 이루어졌으니, 그 지극한 이치가 있지 않은 곳이 없으므로 인간 행위의 사심(私心)으로 된 것이 아니다. 대체로 동방에 나라가 있은 지가 오래되지 않은 것이 아니나, 만물의 이치를 깨달아 일을 이루는 큰 지혜는 아마도 오늘을 기다린 것이구나!” 하였다.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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