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개화라 하는 것은 인간의 온갖 사물이 지극히 선하고도 아름다운 경지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중략)…… 오륜의 행실을 독실하게 하여 사람이 도리를 알면 이는 행실의 개화이며, 사람이 학문을 궁구하여 만물의 이치를 밝힌다면 이는 학술의 개화이며, 국가의 정치를 바르고 크게 하여 백성이 태평한 즐거움이 있으면 이는 정치의 개화이며, 법률을 공평히 하여 백성이 억울한 일이 없으면 법률의 개화이며, 기계의 제도를 편리하게 하여 사람이 사용하기 이롭게 한다면 기계의 개화이며, ……(중략)…… 이 여러 가지 개화를 합한 뒤에야 개화를 고루 갖춘 것이라 비로소 말할지라. ……(중략)…… 대강 그 등급을 구별해 보면 세 가지에 지나지 않으니, 개화한 자, 반쯤 개화한 자, 아직 개화하지 않은 자이다.
개화한 자는 천만 가지 사물을 궁구하고 경영하여, 날마다 새롭고 또 날마다 새로워지기를 기약한다. 이와 같으므로 그 진취적인 기상이 웅장하여 사소한 게으름이 없고, 또 사람을 대하는 방법에 이르러서는 언어를 공손히 하고 행동거지를 단정히 하여, 능한 자를 본받고 능치 못한 자를 불쌍하게 여기고 ……(중략)…… 반쯤 개화한 자는 사물을 궁구하지도 않고 경영하지도 않아 구차한 계획과 고식적인 의사로 조금 성공한 경지에 안주하고, 장구한 대책이 없고 ……(중략)…… 사람을 접대하기는 능한 자를 칭찬함이 적고, 능치 못한 자를 깔보며 ……(중략)…… 그러므로 나라의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의 영화와 욕심을 위해 애쓸 뿐이지, 여러 가지 개화를 위해서 마음을 쓰지 않는다. 아직 개화하지 않은 자는, 즉 야만스러운 종족이니 천만 가지 사물에 규모와 제도가 없을 뿐만 아니라 애당초 경영하지도 않고 ……(중략)……
개화하는 일을 주장하여 힘써 행하는 자는 개화의 주인이고, 개화하는 자를 부러워하여 배우기를 기뻐하고 취하기를 즐겨하는 자는 개화의 손님이며, 개화하는 자를 두려워하고 미워하는데 부득이 따르는 자는 개화의 노예이다. ……(중략)…… 만약 노예가 되면 항상 타인의 지휘에 따를 수밖에 없으므로 부끄러운 일이 적지 않을뿐더러, 조금이라도 실수하는 일이 있으면 그 토지와 인민도 보전할 수 없어 개화한 자의 더부살이가 되기 쉬우니 ……(중략)…… 개화를 좋아하면서도 본받지 않고 부러워하면서도 배우지 않으며 두려워하면서도 깨닫지 못하면 타인의 노예가 되어 개화하는 지휘에 복종할 수밖에 없다. 나라의 사람들이 마음을 같이하여 경계하고 삼가야 할 것이 여기에 있다.
또 무릇 개화는 실상과 허명의 분별이 있으니 실상개화라 하는 것은 사물의 이치와 근본을 궁구하고 고증하여 그 나라의 처지와 시세에 합당케 하는 것이다. 허명개화라 하는 것은 사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면서도 타인이 잘된 모습을 보고 부러워서 그러든지 두려워서 그러든지, 앞뒤를 헤아릴 지식도 없이 시행할 것을 주장하여 재물을 쓰는 것이 적지 않으면서도 실용은 그 분수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중략)…… 그러므로 타인의 장기를 취하려는 자는 결코 외국의 기계를 구매하거나 장인을 고용하지 말고, 반드시 먼저 자기 나라 인민으로 하여금 그 재주를 배우게 하여 그 사람으로 하여금 그 일을 행하게 함이 옳으니 ……(중략)……
……(중략)…… 지나친 자는 털끝만큼의 분별도 없이 외국이면 모두 좋다하고 자기 나라는 어떠한 사물이든지 좋지 않다하며 심지어는 외국의 모습을 칭찬하고 자기 나라를 업신여기는 해로운 습관도 있으니 이들을 개화당이라 말하나 이들이 어찌 개화당이리오. 사실은 개화의 죄인이다. 미치지 못한(不及) 자는 완고한 성품으로 사물을 분별하지 못하여, 외국인이면 오랑캐라 하고 외국 물건이면 쓸데없는 물건이라 하며, 외국 문자는 천주학이라고 하여 감히 가까이하지 않고 자기 자신이 천하의 제일인 듯 자처한다. 심지어는 피해 사는 자도 있으니 이들을 수구당이라 말하나 이들이 어찌 수구당이리오. 사실은 개화의 원수이니 ……(중략)…… 개화하는 길에 이르러서는 지나친 자의 폐해가 미치지 못한 자보다 심하니 ……(중략)…… 만약 입에는 외국 담배를 물고, 가슴에는 외국 시계를 차며, 걸상이나 의자에 걸터앉아 외국 풍속을 이야기하면서 그 말을 대강 풀어내는 자가 어찌 개화인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오. 이는 개화의 죄인도 아니고 개화의 원수도 아니고 개화의 허풍에 빠져 마음속에 주견도 없는 한낱 개화의 병신이다.
……(중략)…… “후세 사람이 옛날 사람에게 미치지 못한다”라고 말하지만 이는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다. ……(중략)…… 사람의 지식은 세대를 거듭할수록 신기한 것과 신묘한 것들이 쏟아져 나오니, 지금 이것을 증명해보자. 옛사람들은 육지를 오가면서 걷는 대신 말이나 수레를 탔고 천 리 먼 길을 열흘이나 보름의 여행으로 간신히 이를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화륜차가 신속하므로 반나절의 수고도 들지 않는다. ……(중략)…… 이처럼 신기하고 신묘한 이치는 옛날에 없었다가 요즘에야 비로소 있는 것이 아니다. 천지 간의 자연스러운 근본은 예나 이제나 차이가 없지만, 옛사람들은 그 이치를 다 밝혀 내지 못했고 요즘 사람들은 궁구하여 터득한 것이다. 이를 통해 본다면 요즘 사람의 재주와 학식이 옛사람에 비하여 훨씬 나은 듯하지만, 그러나 실상은 옛사람이 처음 만들어 낸 것에다 윤색한 것일 뿐이다. ……(중략 )…… 우리나라의 고려청자는 천하에 유명한 것이고, 이충무공
의 거북선도 철갑선으로 천하에서 가장 먼저 만든 것이다. 교서관의 금속활자도 세계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 낸 것이다. ……(중략 )…… 그러나 후배들이 앞사람들의 옛 제도를 윤색치 못하였다.
'이충무공' 관련자료
「第十四編 - 開化의 等級」, 俞吉濬, 『西遊見聞』, 交詢社, 18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