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합치면 이기고 흩어지면 패한다는 것은 만고의 변하지 않는 이치이다. 지금 세계가 동서로 갈라져 있고 인종도 각기 달라 상호 경쟁하고 있다. 일상생활에 쓰이는 편리한 기계에 대한 연구가 농업과 상업에 대한 연구보다 더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새로운 발명품인 전기포·비행선·잠수정 등은 모두 사람을 해치는 기계이다. 청년들을 훈련시켜 전쟁터로 내몰아 무수한 생명이 희생당하는 일이 날마다 그치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누구든지 살기를 원하고 죽기를 싫어함이 인지상정인데, 밝은 세상에 어찌 이런 광경이 있으리오. 이런 생각에 이르면 뼈가 시리고 마음이 아프다.
그 근본 원인을 궁구해보면, 예로부터 동양 민족은 다만 문학에만 힘쓰고 자기나라만 겨우 지켰을 뿐, 유럽의 땅은 한 치도 침입해 빼앗지 않았음은 전 세계의 사람, 짐승, 풀, 나무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수백 년 전부터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도덕의 마음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나날이 무력을 섬기고 경쟁하는 마음을 기르는 것에 조금도 거리낌이 없다.
그 중에서도 러시아가 가장 심한데, 그 난폭한 행동과 잔인함이 유럽과 동양을 가리지 않고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죄악이 차고 넘쳐 하늘과 사람이 모두 노했다. 그러므로 하늘이 동해 중 작은 섬인 일본에 기회를 주어 이와 같은 강대국 러시아를 만주 대륙에서 일거에 타도하도록 했으니 누가 헤아렸겠는가? 이것은 하늘의 뜻이며 땅의 도움이고 사람의 생각에도 맞는 이치이다.
이 당시에 만얀 한청 양국의 인민이 모두 상하일치하여 전날의 원수를 갚기 위해 일본을 배척하고 러시아를 도왔다면 일본의 승리는 없었을 것이니 어찌 대업을 이루었겠는가. 그러나 한청 양국의 인민은 이와 같이 행동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일본 군대를 환영하였으며, 길을 닦고 짐을 나르며 정보를 알아 내는 등 수고로움을 잊고 전력을 다했다. 이것은 무엇 때문인가?
여기에는 두 가지 큰 이유가 있다. 일본과 러시아가 개전할 때, 일본의 천황은 선전포고문에서 이 전쟁이 동양 평화를 유지하고 대한의 독립을 튼튼히 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이와 같은 대의가 맑게 갠 하늘에서 밝게 비치는 해의 광선보다 밝았기에 한청 양국의 사람들은 지혜롭고 어리석은 이를 막론하고 같은 마음으로 일본을 도왔던 것이 첫 번째 이유이다.
또 다른 이유는 일본과 러시아의 싸움이 황인종과 백인종의 경쟁이라 할 수 있으므로, 지난날 원수같았던 마음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오히려 같은 인종을 사랑하는 마음이 크게 일어났던 것이다. 이 또한 인정의 순리이다.
통쾌하도다. 장하도다. 수백 년동안 악행을 하던 백인종의 선봉을 북소리 한 번에 크게 쳐부수었으니 이것은 참으로 희한한 일이며 세계만방에 기념할 만한 업적이다. 당시 한청 양국의 뜻있는 사람들이 함께 기뻐한 것은 일본의 정략과 행보가 동서양 천지가 열린 이래 가장 뛰어나고 시원스럽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슬프도다. 천만 뜻밖에도 일본이 승리한 이후에 가장 가깝고 친하며 어질고 약한 같은 인종인 한국을 억눌러 강제로 조약을 맺고, 만주의 창춘[長春] 이남을 남의 땅을 빌린다는 핑계로 차지해 버리니,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의 의심이 홀연히 일어났다. 일본의 위대한 명성과 공로는 하루아침에 땅에 떨어져서 만행을 일삼던 러시아보다 더 나쁜 나라로 생각하게 되었다. 슬프다. 용과 범 같은 위엄 있는 기세로 어찌 뱀과 고양이 같은 짓을 한단 말인가. 이와 같이 좋은 기회를 어찌 만날 수 있단 말인가. 애석하고 통탄스러운 일이다.
‘동양 평화’와 ‘한국 독립’에 대한 문제는 이미 세계 모든 나라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이며 당연한 일로 굳게 믿었고, 한국과 청나라 사람들의 마음에 깊게 새겨졌다. 이와 같은 사상은 비록 천신의 능력으로도 없앨 수 없거늘 하물며 한두 명의 꾀로 어찌 없앨 수 있겠는가. 지금 서양세력이 동양으로 침략해 들어오는 환난을 동양인종이 일치단결하여 힘을 다해 방어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인 것은 어린아이도 아는 일이다. 그런데 일본 왜 이러한 순리를 무시하고 같은 인종인 이웃나라를 돌아보지 않고 친구의 정을 끊어버려서 스스로 서양세력이 힘쓰지 않고도 이득을 얻도록 한단 말인가. 그리하여 한청 양국인들의 소망이 크게 꺾이고 말았다.
만약 일본이 정략을 고치지 않고 더욱 심하게 핍박한다면 차라리 다른 인종에게 망할지언정 같은 인종에게 욕을 당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한청 양국 사람들의 마음에서 솟아나오면 상하가 일체로 백인의 앞잡이가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렇다면 몇 억의 황인종 중에 뜻 있고 용기있는 이들이 팔짱을 끼고 있다가 동양 전체가 망해가는 것을 앉아서 보고만 있겠는가?
그러므로 동양 평화를 위한 의로운 싸움을 하얼빈에서 시작했으며, 옳고 그름을 가리는 자리는 여순으로 정했다. 이어 동양 평화 문제에 관한 의견을 제출하니 여러분은 깊이 살펴주기 바란다.
「동양평화론」, 『안중근전기급논설』, [명치43년(1910) 추정], 일본 국회도서관 헌정자료실 시치조 기요미 컬렉션(七条清美関係文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