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립대학기성회 발기 취지서
운명을 어떻게 개척할까. 정치냐 외교냐 산업이냐. 물론 이러한 일들 모두 다 필요하다. 그러나 그 기초가 되고 요건이 되며 가장 급무가 되고 가장 선결의 필요가 있으며 가장 힘 있고 가장 필요한 수단은 교육이 아니면 할 수 없다. 무슨 까닭이냐 하면 알면 움직일 것이요 알면 일할 것이며 안 이후에야 정치나 외교도 능히 그것으로 행할 것이요, 안 이후에야 산업도 능히 그것으로 발달할 것이다. 알지 못하고 어찌 사업의 작위와 성공을 기대하리요. 다시 말하면 정치나 외교도 교육에 기대어 비로소 그 효능을 다할 것이오 산업도 교육에 기대여서 비로소 일어남을 기대할 수 있으니, 교육은 우리의 진로를 개척함에 있어 유일한 방편이요 수단임이 명료하다. 그런데 교육에도 계급과 종류가 있어 민중의 보편적 지식은 이를 보통교육으로써 능히 수여할 수 있다. 그러나 깊은 지식과 오묘한 학문의 이론은 이를 고등교육에 기대하지 않으면 불가할 것은 설명할 필요도 없거니와 사회 최고의 비판을 구하며 유능·유위의 인물을 양성하려면 최고 학부의 존재가 가장 필요하다. 그뿐만 아니라 대학은 인류의 진화에 실로 막대한 관계가 있으니 문화의 발달과 생활의 향상은 대학에 기대여 비로소 꾀할 수 있고 획득할 수 있다. 살펴보라. 저 구미의 문화와 구미인의 생활도 그 발달과 향상의 원동력은 완전히 대학에 묶여 있으니, 아아! 저들의 광명과 저들의 운명은 진실로 12~13세기 경에 파리대학을 위시하여 이탈리아·영국·독일 여러 나라에 발연히 성립된 각처의 대학설립으로부터 빛나고 개척되었다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문예부흥도 대학에서 발흥되고, 종교개혁도 대학에서 생기고, 영국과 프랑스의 정치개혁도 대학에서 빚어냈고, 산업혁명도 대학에서 재촉하였으며, 교통도 법률도 의약도 상공업도 모두 다 대학에서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에 우리 조선인도 세계의 한 모퉁이에서 문화 민족의 일원으로 다른 사람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우리의 생존을 유지하며 문화의 창조와 향상을 꾀하려면 대학의 설립을 포기하고는 다시는 다른 방법이 없다.
그런데 근래 3년 이래로 각지에 향학열이 무성하게 발흥되여 학교의 설립과 교육의 시설이 상당히 볼만한 것이 많음은 아, 실로 우리의 고귀한 자각으로서 일어난 것이라 하나가 되어 서로 치하할 일이다. 그러나 유감인 것은 우리에게 아직도 대학이 없는 일이다. 물론 관립대학도 조만간 개교될 것이기에 대학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학문 발전의 장래는 결코 1개의 대학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요, 또한 그처럼 중대한 사업을 우리 민중이 직접으로 영위하는 것은 차라리 우리의 의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에 느낀 바 있어 감히 만천하 동포에게 향하여 민립대학의 설립을 제창하니 자매형제는 와서 돕고 나아가 이루어라.
「開會된 民大總會」, 『동아일보』, 1923년 3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