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삼국 시대정치백제의 체제 정비와 영토 확장

백제 근초고왕의 영토 확장

(근초고왕) 24년(369) 가을 9월에 고구려 왕 사유(斯由)가 보병과 기병 2만 명을 거느리고 치양(雉壤)에 와서 진을 치고 군사를 나누어 민가를 약탈하였다. 왕이 태자를 보내어 군사를 (거느리고) 지름길로 가서 치양에 이르렀다. 불시에 공격하여 그들을 격파하고 적병 5000여 명의 머리를 베었다. 사로잡은 적들은 장병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26년(371)에 고구려가 군사를 동원하여 공격해 왔다. 왕이 이를 듣고 패하(浿河)에 복병을 배치하고 (그들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불시에 공격하였다. 고구려 군사가 패배하였다. 겨울에 왕이 태자와 함께 정예군 3만 명을 거느리고 고구려에 침입하여 평양성을 공격하였다. 고구려 왕 사유가 힘을 다해 싸워 이를 막았으나 날아오는 화살에 맞아 죽었다. 왕이 군사를 이끌고 물러났다.

30년(375) 가을 7월에 고구려가 북쪽 변방의 수곡성(水谷城)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왕이 장수를 보내 방어하게 하였으나 승리하지 못했다. 왕이 다시 군사를 크게 동원하여 보복하려 했으나, 흉년이 들었기 때문에 실행하지 못했다.

삼국사기』권24, 「백제본기」2 근초고왕 24⋅26⋅30년

二十四年秋九月, 髙句麗王斯由, 帥歩騎二萬來屯雉壤, 分兵侵奪民戸. 王遣太子以兵徑至雉壤. 急擊破之獲五千餘級. 其虜獲分賜將士.

二十六年, 髙句麗舉兵來. 王聞之伏兵於浿河上, 俟其至, 急擊之. 髙句麗兵敗北. 冬王與太子帥精兵三萬, 侵髙句麗攻平壤城. 麗王斯由力戰拒之, 中流矢死. 王引軍退.

三十年秋七月, 髙句麗來攻北鄙水谷城, 陷之. 王遣將拒之不克. 王又將大舉兵 報之, 以年荒不果.

『三國史記』卷24, 「百濟本紀」2 近肖古王 24⋅26⋅30年

이 사료는 4세기 중후반 백제의 영토 확장 과정을 보여준다. 백제는 고이왕(古爾王, 재위 234~286) 대 체제를 정비한 후 마한(馬韓)과 목지국(目支國)을 병합하여 한반도 중부에서 중심 세력으로 부상하고, 이후 근초고왕(近肖古王, 재위 346~375) 대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주변 지역으로 세력을 확대해 갔다.

백제는 건국 직후부터 말갈(靺鞨), 낙랑(樂浪) 등 북방 세력의 침략을 계속해서 받았는데, 이들 지역을 고구려가 병합하면서 서로 마주하게 되었다. 백제의 고구려에 대한 대응은 이 기사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근초고왕 대에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이는 고구려의 남진을 막는 한편, 더 나아가 적극적인 북방 진출의 시도라는 형태로 이뤄졌다. 양국의 전쟁이 본격화된 것은 「백제본기」에 따르면 고구려의 선제공격에서 비롯되었다. 근초고왕 24년(369) 백제의 세력이 점차 커지는 것을 우려한 고구려 왕 사유(斯由)가 치양(雉壤)을 공격하였다.

한편, 『일본서기(日本書紀)』 「신공기(神功紀)」 49년조에 따르면, 백제 왕 부자(근초고왕과 근구수(近仇首))가 남만 침미다례(南蠻忱彌多禮)를 평정하자, 비리(比利)⋅벽중(辟中)⋅포미지(布彌支)⋅반고(半古) 등 4읍이 항복을 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실제 근초고왕 대에 이 지역을 백제가 직접 통치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으나, 백제의 영향력이 미쳤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백제의 남방 진출이 활발해지자 고구려는 백제가 주변국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남쪽으로 진출할 필요가 있었다.

백제가 고구려에 가장 우세했던 시기는 근초고왕 26년(371)이었다. 근초고왕은 태자 근구수와 함께 고구려 평양성을 공격하여 고국원왕을 전사시켰다. 이후 백제가 도읍을 한산(漢山)으로 옮겼다는 기사가 「백제본기」 근초고왕 26년조에 전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도읍을 옮겼다기보다 고구려와의 전쟁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운영된 일종의 군사령부와 같은 부서를 두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후 백제는 북방 지역으로의 진출이 여의치 않아 보인다. 근초고왕 30년(375)의 기사에 따르면 백제가 차지하고 있던 최북단은 예성강 일대로 추정되는 수곡성(水谷城)이었던 듯하다. 백제는 평양성까지 공격하였으나 그곳에 군사를 주둔시키는 등 실질적인 지배권을 행사하지는 못한 것 같다. 다만 수곡성에 진출하였고, 이 지역까지 영향력을 미쳤을 뿐이다. 백제는 수곡성을 상실할 때까지 이곳을 경계로 고구려와 맞섰던 것이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저서
『백제와 근초고왕』, 김기섭, 학연문화사, 2000.
『백제정치사연구』, 노중국, 일조각, 1988.
편저
「한성백제의 영역확장」, 김두진,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편,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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