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삼국 시대정치신라의 체제 정비와 영토 확장

지증왕의 정치 개혁

(지증마립간) 4년(503) 겨울 10월에 여러 신하들이 아뢰었다. “시조(始祖)께서 나라를 세우신 이래 나라 이름을 정하지 않아 혹은 사라(斯羅)라고도 칭하고, 혹은 사로(斯盧) 또는 신라(新羅)라고도 칭하였습니다. 신(臣) 등의 생각으로는 신(新)은 ‘덕업(德業)이 날로 새로워진다.’는 뜻이고, 라(羅)는 ‘사방(四方)을 망라한다.’는 뜻이므로 이를 나라 이름으로 삼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겨집니다. 또한 살펴보건대 옛날부터 국가를 가진 이는 모두 제(帝)나 왕(王)을 칭하였는데, 우리 시조께서 나라를 세운 지 지금 22대에 이르기까지 단지 방언(方言)만을 칭하고 높이는 호칭을 정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제 여러 신하들이 한 마음으로 삼가 ‘신라 국왕(新羅國王)’이라는 칭호를 올립니다.” 왕이 이를 따랐다.

삼국사기』권4, 「신라본기」4 지증왕 4년

四年冬十月, 羣臣上言. 始祖創業已來國名未定, 或稱斯羅, 或稱斯盧, 或言新羅. 臣等以爲新者德業日新, 羅者網羅四方之義, 則其爲國號宜矣. 又觀自古有國家者, 皆稱帝稱王, 自我始祖立國, 至今二十二丗伹, 稱方言未正尊號. 今羣臣一意, 謹上號新羅國王. 王從之.

『三國史記』卷4, 「新羅本紀」4 智證王 4年

이 사료는 『삼국사기』 「신라본기」 지증왕 4년조로, 신라의 국호 및 존호(尊號) 제정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지증왕(智證王, 재위 500~514) 대 신라는 여러 방면에서 주목할 만한 일련의 국가 체제 정비가 이루어졌다.

502년(지증왕 3)에 지증왕은 순장(殉葬)을 금지하는 법령을 내렸고, 주군(州郡)에 명해 농업을 권장하도록 하였으며, 이와 함께 우경(牛耕)을 시행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지증왕의 조치는 농업 생산력의 증대를 기대한 것으로, 이로부터 신라는 한층 안정적인 농업 수취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또한 505년(지증왕 6)에는 국내의 주(州)⋅군(郡)⋅현(縣)을 정했고, 514년(지증왕 15)에는 아시촌(阿尸村)에 소경(小京)을 설치하였다. 이러한 정책은 모두 지방 제도를 정비한 것이다. 물론 이때 신라가 전국의 지방을 모두 주⋅군⋅현으로 구분하고, 그러한 행정 단위마다 지방관을 파견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 아직까지 현은 설치되지 않았고, 주⋅군 역시 주요 거점을 중심으로 설치된 군사적 성격의 기구였다고 파악된다. 다만 위와 같은 지증왕 대의 지방 제도 정비로 신라의 중앙 정부는 지방에 대한 체계적인 통치를 실시하는 데 중요한 토대를 마련하였던 것이다.

위 시기 국호 및 존호의 제정 역시 국가 체제 정비의 일면을 보여 준다. 이 사료에 기술된 것처럼 신라는 ‘사라(斯羅)’라고도 칭하고 혹은 ‘사로(斯盧)’라고 칭하였다. 이 밖에도 신라의 국호는 『삼국유사』를 비롯한 여러 사서에 ‘서나벌(徐那伐)⋅서야벌(徐耶伐)⋅서라벌(徐羅伐)⋅서벌(徐伐)⋅계림(鷄林)⋅계귀(鷄貴)⋅구구타예설라(矩矩吒䃜說羅)⋅시라(尸羅)’ 등으로 나오는데, 이렇듯 다양한 신라의 국호가 지증왕 대에 ‘신라’로 공식화된 것이다. 신라는 한식(漢式), 즉 중국의 한자어를 써서 의미를 새로 부여한 명칭으로, ‘신(新)은 ‘덕업(德業)이 날로 새로워진다’는 뜻이고, 라(羅)는 ‘사방(四方)을 망라한다’라는 뜻을 가졌다.

신라에서는 국왕의 호칭 역시 다양하였다. 지증왕 대까지 신라의 왕호는 ‘거서간(居西干)차차웅(次次雄)마립간(麻立干)’ 등의 호칭이 사용되었는데, 이러한 국왕에 관한 여러 호칭에는 국왕의 성격과 위상이 반영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것이 지증왕 대에 ‘왕’으로 공식화된 것은 신라라는 국호와 마찬가지로 한식(漢式), 즉 중국식으로 정리한 것이었다.

이상과 같이 중국식 국호와 왕호의 제정은 단순한 명칭의 변화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중국식 국호와 왕호의 사용은 신라의 국가 체제가 한자(漢子)를 바탕으로 한 문서 행정(文書行政) 체계를 정비한 것과 무관하지 않았다. 그리고 문서 행정 체계는 국왕을 중심으로 한 중앙 집권적 국가 체제의 운용을 의미했다. 그러므로 국호 및 존호 제정은 앞서 언급한 농업 생산력의 증대와 지방 제도의 정비와 아울러 지증왕 대 신라가 중앙 집권적 국가 체제를 마련해 간 사실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저서
『역주 삼국사기』3, 정구복 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7.
편저
「정치체제의 정비」, 이우태, 국사편찬위원회, 1997.

관련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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