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삼국 시대정치신라의 체제 정비와 영토 확장

진평왕의 관제 정비

(진평왕) 3년(581) 봄 정월에 처음으로 위화부(位和府)를 설치하였다. 이는 지금의 이부(吏部)와 같다.

삼국사기』권4, 「신라본기」4 진평왕 3년

(진평왕) 5년(583) 봄 정월에 처음으로 선부(船府)의 관서(官署)를 설치하고, 대감(大監)⋅제감(弟監) 각 1명을 두었다.

삼국사기』권4, 「신라본기」4 진평왕 5년

(진평왕 6년) 3월에 조부(調府)에 영(令) 1명을 두어 공부(貢賦)를 관장하도록 하였고, 승부(乘府)에 영(令) 1명을 두어 수레[車乘]에 대한 일을 관장하도록 하였다.

삼국사기』권4, 「신라본기」4 진평왕 6년

(진평왕) 8년(586) 봄 정월에 예부(禮部)에 영(令) 2명을 두었다.

삼국사기』권4, 「신라본기」4 진평왕 8년

(진평왕) 13년(591) 봄 2월에 영객부(領客府)에 영(令) 2명을 두었다.

삼국사기』권4, 「신라본기」4 진평왕 13년

(진평왕) 44년(622) 2월에 이찬(伊湌) 용수(龍樹)를 내성 사신(內省私臣)으로 삼았다. 처음 (진평)왕 7년에 대궁(大宮)⋅양궁(梁宮)⋅사량궁(沙梁宮) 3곳에 각각 사신(私臣)을 두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내성 사신 1명을 두고, 3궁의 일을 아울러 관장하도록 하였다.

삼국사기』권4, 「신라본기」4 진평왕 44년

(진평왕) 45년(623) 봄 정월에 병부(兵部)에 대감(大監) 2명을 두었다.

삼국사기』권4, 「신라본기」4 진평왕 45년

(진평왕) 46년(624) 봄 정월에 시위부(侍衛府)에 대감(大監) 6명을 두고, 상사서(賞賜署)에 대정(大正) 1명, 대도서(大道署)에 대정(大正) 1명을 두었다.

삼국사기』권4, 「신라본기」4 진평왕 46년

[眞平王] 三年, 春正月, 始置位和府. 如今吏部.

『三國史記』卷4, 「新羅本紀」4 眞平王 3年

[眞平王] 五年, 春正月, 始置船府署, 大監⋅弟監各一員.

『三國史記』卷4, 「新羅本紀」4 眞平王 5年

[眞平王 六年] 三月, 置調府令一員, 掌貢賦, 乘府令一員, 掌車乘.

『三國史記』卷4, 「新羅本紀」4 眞平王 6年

[眞平王] 八年, 春正月, 置禮部令二員.

『三國史記』卷4, 「新羅本紀」4 眞平王 8年

[眞平王] 十三年, 春二月, 置領客府令二員.

『三國史記』卷4, 「新羅本紀」4 眞平王 13年

[眞平王] 四十四年, 二月, 以伊湌龍樹爲內省私臣. 初王七年, 大宮⋅梁宮⋅沙梁宮三所 各置私臣, 至是置內省私臣一人, 兼掌三宮.

『三國史記』卷4, 「新羅本紀」4 眞平王 44年

[眞平王] 四十五年, 春正月, 置兵部大監二員.

『三國史記』卷4, 「新羅本紀」4 眞平王 45年

[眞平王] 四十六年, 春正月, 置侍衛府大監六員, 賞賜署大正一員, 大道署大正一員.

『三國史記』卷4, 「新羅本紀」4 眞平王 46年

이 사료는 『삼국사기』 「신라본기」에서 진평왕(眞平王, 재위 579~632) 대에 이루어진 신라의 관제 정비와 관련한 내용을 뽑은 것이다. 신라의 관제는 6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정비되기 시작했는데, 그 중요한 시점의 하나가 진평왕 대였다.

이 사료에서 보이듯 진평왕 3년(581)에는 위화부(位和府)를 설치하였고, 5년(583)에는 선부(船府)를 설치하였다. 6년(584)에는 조부(調府)와 승부(乘府)에 각각 영(令) 1명을 두었고, 8년(586)에는 예부(禮部)에 영(令) 2명을 두었으며, 13년(591)에는 영객부(領客府)에 영(令) 2명을 두었다고 한다. 또한 44년(622)에는 내성(內省)에 사신(私臣)을 두었고, 45년(623)에는 병부(兵部)에 대감(大監) 2명을 두었으며, 46년(624)에는 시위부(侍衛府)에 대감(大監) 6명을 두었고, 상사서(賞賜署)와 대도서(大道署)에 각각 대정(大正) 1명을 두었다고 한다.

이처럼 진평왕 재위 기간에는 대대적으로 관부가 설치되고, 담당 관리가 배치되었다. 위화부는 『삼국사기』의 편찬자가 지금, 즉 고려 시대의 이부(吏部)와 같다고 한 것처럼 관리의 인사를 담당한 관청이었다. 선부(船府)는 선박 운항을 관장하는 관청으로 보인다. 또한 조부(調府)는 공부(貢賦), 즉 공납과 부세(賦稅)를 맡았고, 승부(乘府)는 수레에 대한 일을 관장하였다고 한다. 그 명칭이나 활동으로 미루어 보아 예부(禮部)는 교육과 의례(儀禮)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였고, 영객부(領客府)는 외국 사신을 접대하던 관청으로 파악된다. 병부(兵部)는 군사 업무를 담당하였고, 시위부(侍衛府)는 국왕과 궁궐의 수비 및 의장(儀仗)을 책임졌다. 상사서(賞賜署)는 창부(倉部) 소속의 관청으로, 공이 있는 자에 대한 포상 업무를 맡았던 것으로 짐작되며, 대도서(大道署)는 예부 소속의 관청이었다.

이상과 같은 관부의 설치 및 담당 관료 배치는 신라의 국가 체제가 확대되고, 그 업무가 증대된 결과였다. 상사서와 대도서처럼 상급 관부에 소속된 하급 관부까지 담당 관리가 배치된 사실이 이를 잘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국가의 업무가 증대됨에 따라 업무의 내용이 세분화되었고, 그러한 업무를 책임질 전문적인 관부 및 관리가 요구되었던 것이다.

한편 내성(內省)은 왕실 업무를 총괄하던 관청이었다. 본래 신라에는 대궁(大宮)⋅양궁(梁宮)⋅사량궁(沙梁宮) 등의 궁궐이 있었고, 궁궐마다 사신(私臣)이 배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진평왕 대에 그러한 왕실 업무를 내성으로 하여금 총괄하도록 하고, 그 업무를 관장할 장관(長官)도 1명을 둔 것이다. 이러한 내성 사신의 설치는 왕실의 업무가 국왕을 중심으로 개편되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저서
『역주 삼국사기』3, 정구복 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7.
편저
「중앙통치조직」, 주보돈, 국사편찬위원회, 1997.

관련 사이트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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