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삼국 시대정치삼국의 귀족회의

고구려의 제가 회의

뇌옥(牢獄)이 없고, 죄를 지은 자가 있으면 제가(諸加)가 평의(評議)하여 곧바로 그를 죽이고 죄인의 처자(妻子)는 몰입(沒入)하여 노비(奴婢)로 삼는다.

『삼국지』권30, 「위서」30 오환선비동이전

無牢獄, 有罪諸加評議, 便殺之, 沒入妻子爲奴婢.

『三國志』卷30, 「魏書」30 烏丸鮮卑東夷傳

이 사료는 3세기 중반 고구려의 재판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사료에 따르면 고구려에서는 죄인이 있을 때 제가(諸加)가 평의(評議)를 통해 처벌하였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고대 국가에서 죄의 여부를 판결하는 사법은 정치⋅행정과 엄밀히 구분되지는 않았다. 때문에 고구려 초기의 정치도 제가의 평의, 즉 제가 회의를 통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고구려 국가 형성 단계의 제가와 3세기 중반의 제가가 동일했을지는 의문이다. 이 점은 5부[那部]의 성격 및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와 관련해 ‘뇌옥이 없었다.’라고 한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뇌옥은 강제 구금 시설을 의미한다. 하지만 고대의 뇌옥은 근대의 감옥과 동일하지 않았다. 근대의 감옥은 형벌의 일종으로 일정 기간 구금함으로써 죄를 벌하는 시설이지만, 고대와 중세의 뇌옥은 형벌을 받기 전까지 구금해 두는 곳으로 지금의 구치소 같은 시설이었다. 이 점에서 고구려에 뇌옥이 없었다는 사실은 바로 뒤의 문장에 제가가 죄인을 곧바로 처결했다고 한 것과 연결해 생각할 수 있다. 제가 회의를 통한 재판이 즉각적으로 열렸기 때문에 뇌옥이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3세기 중반 제가 회의는 언제든 쉽게 열리는 상설 기구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고 이해된다. 그렇다면 당시 제가란 나부의 지배층이라기보다는 왕경(王京) 혹은 왕기(王畿)의 지배층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2세기 후반~3세기 초반의 고국천왕(故國川王, 재위 179~197) 대부터 방위 명부가 만들어진 사실을 이와 연관해 볼 수 있다. 즉 나부의 지배층 제가가 왕경 혹은 왕도의 방위 명부로 이주해 오며 중앙 귀족으로 변모해 간 것으로 이해된다. 이 점에서 제가 회의는 중앙의 귀족을 중심으로 한 귀족 회의였다고 파악되며, 신라의 화백 회의나 백제의 정사암 회의에 비견할 수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저서
『고구려의 영역지배방식 연구』, 김현숙, 모시는 사람들, 2005.
『고구려사 연구』, 노태돈, 사계절, 1999.
『1∼4세기 고구려 정치체제 연구』, 여호규,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7.
『고구려 정치사 연구』, 임기환, 한나래,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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