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국은 본래 고려(高驪)
고구려
와 더불어 요동(遼東)의 동쪽 1000여 리 밖에 있었다. 그 후 고려는 요동을, 백제는 요서(遼西)를 경략하여 차지하였다. 백제가 통치한 곳은 진평군(晋平郡) 진평현(晋平縣)이라 한다.『송서』권97, 「열전」57, 백제전
이 해에 위(魏)
북위(北魏)
오랑캐가 또다시 기병(騎兵) 수십만을 동원하여 백제를 공격하여 그 경계에 들어가니, 모대(牟大)가 장군 사법명(沙法名)⋅찬수류(賛首流)⋅해례곤(解禮昆)⋅목간나(木干那)를 파견하여 무리를 거느리고 오랑캐군을 기습 공격하여 그들을 크게 무찔렀다. 건무(建武) 2년(495, 백제 동성왕 17년)에 모대가 사신을 보내 표문을 올려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신(臣)은 봉작(封爵)을 받은 이래 대대로 조정의 영예를 입었고, 더욱이 절부(節符)와 부월(斧鉞)을 받아 모든 변방을 평정하였습니다. 앞서 저근(姐瑾) 등이 모두 영광스러운 관작을 제수받아 신민이 함께 기뻐하였습니다. 지난 경오년(庚午年)에는 험윤(獫狁)이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군사를 일으켜 깊숙이 쳐들어 왔습니다. 신이 사법명 등을 파견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역습하게 하여 밤에 번개처럼 기습 공격하니, 흉리(匈梨)가 당황하여 마치 바닷물이 들끓듯 붕괴되었습니다. 이 기회를 타서 쫓아가 베니 시체가 들을 붉게 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그 예기(銳氣)가 꺾여 고래처럼 사납던 것이 그 흉포함을 감추었습니다. 지금 천하가 조용해진 것은 실상 (사법)명 등의 꾀이오니 그 공훈을 찾아 마땅히 표창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사법명을 가행정로장군(假行征虜將軍) 매라왕(邁羅王)으로, 찬수류를 가행안국장군(假行安國將軍) 벽중왕(辟中王)으로, 해례곤을 가행무위장군(假行武威將軍) 불중후(弗中侯)로 삼고, 목간나는 과거에 군공(軍功)이 있는 데다 또 성문과 선박을 때려 부수었으므로 행광위장군(行廣威將軍) 면중후(面中侯)로 삼았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천은(天恩)을 베푸시어 특별히 관작을 제수하여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남제서』권58, 「열전」39, 백제전
그 나라는 본래 구려(句驪)
고구려
와 더불어 요동(遼東)의 동쪽에 있었다. 진(晉)나라 때에 이르러 (고)구려가 이미 요동을 경략하자, 백제 역시 요서(遼西)⋅진평(晉平) 두 군(郡)의 땅을 점거하여 스스로 백제군(百濟郡)을 설치하였다.『양서』권54, 「열전」48 백제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