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삼국 시대사회관등제와 신분제

고구려의 관등과 관직

『고려기(高麗記)』에서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그 나라에서는 관직을 설치했는데, 관직은 9등급이 있었다. 그 첫 번째 관등은 토졸(吐捽)이라고 하는데, (당나라의) 1품에 비견되며, 옛 명칭은 대대로(大對盧)로 국사를 총괄한다. 3년마다 1번 교대하였는데, 만약 직책을 잘 수행한 자는 연한에 구애되지 않는다. 교체하는 날 만약 승복하지 않으면, 모두 군사를 이끌고 서로 공격해 이긴 자가 대대로가 된다. 그 왕은 단지 궁문을 닫고 스스로 지킬 뿐이며 (서로 공격하는 것을) 제어할 수 없었다. 그 다음은 태대형(太大兄)이라고 하는데, (당나라의) 2품에 비견되며, 일명 막하하리지(莫何何羅支)라고 한다. 다음은 울절(鬱折)이라고 하는데, (당나라의) 종2품에 비견되며, 중국어로 주부(主簿)라고 한다. 다음은 대부사자(大夫使者)라고 하는데, (당나라의) 정3품에 비견되며, 또한 알사(謁奢)라고 한다. 다음은 조의두대형(皂衣頭大兄)이라고 하는데, (당나라의) 종3품에 비견되며, 일명 중리조의두대형(中裏皂衣頭大兄)이라고 한다. 동이(東夷)에서 전해 오는 이른바 조의선인(皂衣先人)이다. 이상 5개의 관등이 중요한 정무를 관장하고 정사(政事)와 군사의 징발(徵發)을 논의하며, 관작(官爵)을 선발해 수여한다.

다음은 대사자(大使者)라고 하는데, (당나라의) 정4품에 비견되며, 일명 대사(大奢)라고 한다. 다음은 대형가(大兄加)라고 하는데, (당나라의) 정5품에 비견되며, 일명 힐지(纈支)라고 한다. 다음은 발위사자(拔位使者)라고 하는데, (당나라의) 종5품에 비견되며, 일명 유사(儒奢)라고 한다. 다음은 상위사자(上位使者)라고 하는데, (당나라의) 정6품에 비견되며 계달사자자(契達奢使者), 을기(乙耆)라고도 한다. 다음은 소형(小兄)이라고 하는데, (당나라의) 정7품에 비견되며, 일명 실지(失支)라고 한다. 다음은 제형(諸兄)이라고 하는데, (당나라의) 종7품에 비견되며, 예속(翳屬), 이소(伊紹), 하소환(河紹還)이라고 한다. 다음은 과절(過節)이라고 하는데, (당나라의) 정8품에 비견된다. 다음은 불절(不節)이라고 하는데, (당나라의) 종8품에 비견된다. 다음은 선인(先人)이라고 하는데, (당나라의) 정9품에 비견되며, 실원(失元), 서인(庶人)이라고도 한다.

또한 발고추대가(拔古鄒大加)가 있어서 빈객(賓客)을 관장하는데, (당나라의) 홍려경(鴻臚卿)에 비견되며, 대부사(大夫使)로서 이를 삼는다. 또한 국자박사(國子博士)⋅대학사(大學士)⋅사인(舍人)⋅통사(通事)⋅전객(典容)이 있는데, 모두 소형(小兄) 이상으로 이를 삼는다. 또한 여러 대성(大城)에는 욕살(傉蕯)을 두는데, (당나라의) 도독(都督)에 비견된다. 여러 성(城)에는 처려필자사(處閭匹刺史)를 두는데, 또한 이를 도사(道使)라고 하며, 도사의 치소(治所)는 비(備)라고 한다. 여러 소성(小城)에는 가라달(可邏達)을 두는데, (당나라의) 장사(長史)에 비견된다. 또한 성마다 누초(婁肖)를 두는데, (당나라의) 현령(縣令)에 비견된다.

고구려의 무관으로 대모달(大模達)이 있는데, (당나라의) 위장군(衛將軍)에 비견되며 일명 막하라수지(莫何邏繡支)라고 하고, 일명 대당주(大幢主)라고 하는데, 조의두대형 이상으로 이를 삼는다. 다음으로 말약(末若)이 있는데, (당나라의) 중랑장(中郞將)에 비견되며, 일명 군두(郡頭)라고 한다. 대형 이상으로 임명하며 1000명을 거느리도록 한다. 이하의 무관 역시 각기 등급이 있다.

『한원』, 「번이부」 고려

高麗記曰. 其國建官有九等. 其一曰吐捽, 比一品, 舊名大對盧, 惣知國事. 三年一伐[代], 若稱職者, 不拘年限. 交替之日, 或不相祗服, 皆勒兵相政[攻], 勝者爲之. 其王但閉宮自守, 不能制禦. 次曰太大兄. 比二品, 一名莫何何羅支. 次鬱折, 比從二品, 華言主簿. 次大夫使者, 比正三品, 亦名謂謁奢. 次皂衣頭大兄, 比從三品, 一名中裏皂衣頭大兄, 東夷相傳, 所謂皂衣先人者也. 以前五官, 掌機密謀政事徵發兵, 選授官爵.

次大使者, 比正四品, 一名大奢. 次大兄加, 比正五品, 一名纈支. 次拔位使者, 比從五品, 一名儒奢. 次上位使者, 比正六品, 一名契達奢使者, 一名乙耆. 次小兄, 比正七品, 一名失支, 次諸兄, 比從七品, 一名翳屬, 一名伊紹, 一名河紹還. 次過節, 比正八品. 次不節, 比從八品. 次先人, 比正九品, 一名失元, 一名庶人.

又有拔古鄙鄒大加, 掌賓客, 比鴻臚卿, 以大夫使爲之. 又有國子博士⋅大學士⋅舍人通事⋅典容, 皆以小兄以上爲之. 又其諸大城置傉蕯, 比都督. 諸城置處閭匹刺史, 亦謂之道使, 道使治所名之曰備. 諸小城置可邏達, 比長史. 又城置婁肖, 比縣令.

其武官曰大模達, 比衛將軍, 一名莫何邏繡支, 一名大幢主, 以皂衣頭大兄以上爲之. 次末若, 比中郞將. 一名郡頭, 以大兄以上爲之, 其領千人. 以下各有等級.

『翰苑』, 「蕃夷部」 高麗

이 사료는 『고려기(高麗記)』에서 인용해 『한원(翰苑)』에 기록한 내용으로, 고구려의 여러 관등과 관직의 명칭을 전해 주고 있다. 관등은 관료의 등급을 뜻하며, 관직은 관료의 직책을 뜻한다. 관직뿐 아니라 관등이 마련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여러 분야의 관료가 피라미드 같은 계급 구조 속에서 상하 관계에 놓여 있었음을 의미한다. 물론 그 정점은 국왕이었다. 그러므로 관등과 관직은 국왕을 중심으로 한 고대 통치 체제가 정비되었음을 알려 주는 중요한 지표라고 할 수 있다.

현재 『고려기』는 전하지 않아서 전체적인 내용이나 체제는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한원』에서 인용한 내용으로 미루어 이 책은 7세기 중반 당나라에서 고구려를 직접 견문하고 기록한 것이 아닐까 추정된다. 고구려의 관직에 관한 자료는 『고려기』 외에도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와 『삼국지』 「동이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고구려가 초기부터 관등과 관직을 갖추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초기부터 관등과 관직이 체계적으로 조직된 것은 아니었다. 고구려의 주요 지역은 제가(諸加)가 관할하였는데, 모든 제가가 관등이나 관직을 수여받은 것은 아니었다. 이런 점을 보면 초기에는 관등의 상하 관계나 특정 관직에 취임하는 관등이 명확히 규정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늦어도 4세기 후반 율령이 반포된 이후부터는 국왕을 정점으로 한 일원적인 관등 체계가 성립되었고, 관료를 통한 통치 체제가 정착되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이 사료에서는 7세기 중반 고구려의 관등을 당나라의 관품과 비교해 설명하고 있는데, 이러한 대응 관계가 정확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고구려에서 일원적인 관등 체계가 운영되고 있었음을 알려 준다. 또한 여러 관직이 소개되며 그 취임 자격이 나오는데, 이 역시 관등제가 관료제 운영의 중요한 기준으로 작동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다만 고구려의 관등 제도는 당나라의 관품과 달리 특정한 관직의 취임 자격이 특정한 관등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고, 조의두대형(皂衣頭大兄)-대형(大兄)-소형(小兄)처럼 몇 개의 관등이 하한선으로 제시되고 있다. 적어도 4개의 관등군(官等群)이 형성되어 있었던 셈인데, 이러한 모습은 신라의 관등 제도와 유사하다. 그러므로 신라의 경우에 비추어 생각해 본다면, 관등 제도가 신분 제도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즉 신분마다 오를 수 있는 관등의 범위가 정해져 있었고, 실제로 일정한 관직에 취임하는 데는 관등보다 신분이 우선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사료에는 중앙의 여러 관직뿐 아니라 지방의 관직도 소개되어 있다. 이를 통해 지방 통치 체제를 유추할 수 있지만, 명확한 해석이 어려워 여러 가지 다양한 견해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지방의 성(城)을 중심으로 통치 체제가 마련되었고, 성마다 상하의 행정 관계가 설정되어 있었다는 점에는 대부분 공감한다.

또한 이 사료에 무관 명칭이 전해진다는 점도 흥미롭다. 고구려의 관료 제도가 고려와 조선의 양반처럼 문관 계통과 무관 계통으로 엄밀히 구분되어 있었다고 보이지는 않지만, 무관이 그 나름대로 계통을 갖고 있었던 점으로 보아 지휘 체계와 부대 편제가 그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저서
『고구려의 영역지배방식 연구』, 김현숙, 모시는 사람들, 2005.
『고구려사 연구』, 노태돈, 사계절, 1999.
『고구려 정치사 연구』, 임기환, 한나래, 2004.

관련 사이트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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