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관직 명칭은 때에 따라 바뀌어 그 이름이 같지 않았으며, 당나라의 것과 우리나라[夷]의 것이 서로 섞여 있었다. 그 중 시중(侍中)
⋅낭중(郞中) 등으로 부르는 것은 모두 당나라의 관명이라 그 의미를 살펴볼 수 있지만, 이벌찬(伊伐湌)⋅이찬(伊湌) 등으로 부르는 것은 모두 우리나라 말[夷言]이어서 그렇게 불리게 된 까닭은 알지 못한다. 처음 설치하였을 때는 반드시 관직마다 일정한 임무가 있고 직위마다 정해진 인원이 있어서 그것의 높고 낮음을 분별하고 인재(人才)의 우열에 따라 대우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오래되고 기록들이 없어져서 고증하여 밝히고 두루 상세히 할 수가 없었다. 살펴보니 제2대 남해왕(南解王)은 나라 일을 대신(大臣)에게 위임하고 이를 대보(大輔)라 하였다. 제3대 유리왕(儒理王)은 17등급의 관위
를 설치하였고, 이후로부터 그 명목이 번거롭고 많아졌다. 지금(고려) 그 중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만 모아 이 편목에 기록하였다.
'시중(侍中)' 관련자료
'17등급의 관위' 관련자료
대보는 남해왕 7년(10)에 탈해(脫解)를 그 자리에 임명하였다. 유리왕 9년(32)에 17관등
을 설치하였다. 1등은 이벌찬(伊伐湌)
【혹은 이벌간(伊罰干)이라고도 하고 혹은 우벌찬(于伐湌)이라고도 하고, 혹은 각간(角干)이라고도 하고, 혹은 각찬(角粲)이라고도 하고, 혹은 서발한(舒發翰)이라고도 하고, 혹은 서불한(舒弗邯)이라고도 한다】
이다. 2등은 이척찬(伊尺湌)
【혹은 이찬(伊湌)이라고도 한다】
이다. 3등은 잡찬(迊湌)
【혹은 잡판(迊判)이라고도 하고, 혹은 소판(蘇判)이라고도 한다】
이다. 제4등은 파진찬(波珍湌)
【혹은 해간(海干)이라고도 하고, 혹은 파미간(破彌干)이라고도 한다】
이다. 제5등은 대아찬(大阿湌)인데, 여기서부터 이벌찬까지는 오직 진골(眞骨)만 받았고 다른 신분(他宗)은 받을 수 없었다. 6등은 아찬(阿湌)
【혹은 아척간(阿尺干)이라고도 하고, 혹은 아찬(阿粲)이라고도 한다】
인데, 중아찬(重阿湌)부터 사중아찬(四重阿湌)까지 있다. 7등은 일길찬(一吉湌)
【혹은 을길간(乙吉干)이라고도 한다】
이다. 8등은 사찬(沙湌)
【혹은 살찬(薩湌)이라고도 하고, 혹은 사돌간(沙咄干)이라고도 한다】
이다. 9등은 급벌찬(級伐湌)
【혹은 급찬(級湌)이라고도 하고, 혹은 급복간(及伏干)이라고도 한다】
이다. 10등은 대나마(大奈麻)
【혹은 대나말(大奈末)이라고도 한다】
인데, 중[대]나마(重奈麻)부터 구중[대]나마(九重奈麻)까지 있다. 11등은 나마(奈麻)
【혹은 나말(奈末)이라고도 한다】
인데, 중나마(重奈麻)부터 칠중나마(七重奈麻)까지 있다. 12등은 대사(大舍)
【혹은 한사(韓舍)라고도 한다】
이다. 13등은 사지(舍知)
【혹은 소사(小舍)라고도 한다】
이다. 14등은 길사(吉士)
【혹은 계지(稽知)라고도 하고, 혹은 길차(吉次)라고도 한다】
이다. 15등은 대오(大烏)
【혹은 대오지(大烏知)라고도 한다】
이다. 16등은 소오(小烏)
【혹은 소오지(小烏知)라고도 한다】
이다. 17등은 조위(造位)
【혹은 선저지(先沮知)라고도 한다】
이다.
'17관등' 관련자료
『삼국사기
'삼국사기' 관련자료
법흥왕 때 제도는 태대각간(太大角干)부터 대아찬(大阿湌)까지는 자색 옷[紫衣]을 입고, 아찬(阿湌)부터 급찬(級湌)까지는 비색 옷[緋衣]을 입고, 모두 아홀(牙笏)을 쥐었다. 대나마(大奈麻)⋅나마(奈麻)는 청색 옷[靑衣]을, 대사(大舍)부터 선저지(先沮知)까지는 황색 옷[黃衣]을 입었다. 이찬(伊湌)과 잡찬(迊湌)은 비단 관[錦冠]을 쓰고 파진찬(波珍湌)과 대아찬, 금하(衿荷)는 비색 관[緋冠]을 쓰며, 상당대나마(上堂大奈麻)와 적위대사(赤位大舍)는 갓끈[組纓]을 매었다.
『삼국사기
'삼국사기' 관련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