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삼국 시대사회법률과 사회 풍속

고구려의 사냥 대회

고구려에서는 매년 봄 3월 3일마다 낙랑의 언덕에 모여 사냥하였는데, 잡은 돼지와 사슴으로 하늘과 산천(山川)에 제사를 지냈다. 그날이 되자, 왕이 사냥을 나갔고, 여러 신료와 5부(五部)의 병사가 모두 (왕을) 따랐다. 이때 온달(溫達)도 그동안 기른 말을 가지고 따라갔다. (온달은) 말을 타고 달리는 데 항상 앞에 있었고, 사냥으로 잡은 동물 또한 많아서 비견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왕이 불러와 성명을 묻고는 놀라면서도 기이하게 생각하였다.

삼국사기』권45, 「열전」5 온달

髙句麗常以春三月三日, 㑹獵樂浪之丘, 以所獲猪鹿, 祭天及山川神. 至其日, 王出獵, 羣臣及五部兵士皆從. 於是温逹以所養之馬随行. 其馳騁常在前, 所獲亦多, 他無若者. 王召来, 問姓名, 驚且異之.

『三國史記』卷45, 「列傳」5 溫達

이 사료는 고구려에서 매년 3월 3일 낙랑 언덕에서 사냥과 제의를 하였고 온달이 사냥 대회에 참석하여 두각을 나타낸 사실을 전하고 있다. 온달전은 설화적 색채가 강하다고 하지만, 이 사료는 역사적 사실성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사료에 보이는 낙랑 언덕의 사냥과 제의는 『삼국사기』 「제사지(祭祀志)」에도 나온다. 이를 보면 그 내용은 『고기(古記)』의 기록이라 하였고, 또한 『수서(隋書)』 「고려전」에서도 매년 봄가을에 국왕이 참여하여 교외에서 사냥을 했다고 기록하였다. 이처럼 다른 문헌 기록과 비교해 볼 때 이 사료의 내용은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낙랑 언덕의 사냥과 제의는 상호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사냥을 통해 얻은 돼지와 사슴으로 제사를 지냈기 때문이다. 두 행사는 모두 국가적 행사였다. 사냥의 경우 왕과 여러 신료, 대표적인 중앙군인 5부 병이 나섰다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는데, 이와 같은 사냥은 정기적인 군사 훈련의 하나였다. 사냥을 통해 군사적 능력을 함양하고 국왕의 군사 통수권을 확인하였던 것이다. 제의 역시 그와 유사한 의미가 있었다. 국왕이 하늘과 산천에 제사 지내며 왕권의 신성성(神聖性)을 널리 보였고, 이를 통해 국가적인 통합력을 높이고자 하였던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저서
『한국고대사회의 군사와 정치』, 김영하,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02.
『한국고대사회연구』, 김철준, 지식산업사, 1975.
『한국고대정치사회사연구』, 이기백, 일조각,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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