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삼국 시대사회법률과 사회 풍속

고구려의 법률

그 나라의 형법(刑法)은 모반한 사람과 반역자는 먼저 불로 지진 다음 목을 베고, 그 집안의 재산은 몰수하고 가족은 관아의 노비로 만들었다. 도둑질한 사람에게는 [도둑질한 물건의] 10여 배를 징수하였다. 만약 가난하여 징수할 것이 없거나 공적⋅사적으로 빚을 진 사람에게는 모두 그의 아들이나 딸을 노비로 주어 보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

『주서』권49, 「이역열전」41 고려

其刑法, 謀反及叛者, 先以火焚爇, 然後斬首, 籍沒其家. 盜者, 十餘倍徵贓. 若貧不能備, 及負公私債者, 皆聽評其子女爲奴婢以償之.

『周書』卷49, 「異域列傳」41 高麗

이 사료는 『주서(周書)』 「고려전(高麗傳)」의 일부로, 6세기 중반~7세기 전반 고구려의 형법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사료에서 보이는 것처럼 고구려는 모반죄 및 반역죄에 대해 엄격한 형벌을 가하였다. 죄에 대한 처벌을 “먼저 불로 지진 다음 목을 베고, 그 집안의 재산은 몰수하고 가족은 관아의 노비로 만들었다.”라고 한 사실에서 이를 잘 알 수 있다. 이러한 엄격한 형벌은 국가에 대한 충성(忠誠)이 강조되었던 면모를 보여 준다.

또한 절도죄에 대해서는 10여 배를 징수하였다고 하였는데, 이는 고조선과 부여의 법률에서도 찾아지듯 사유 재산의 존재와 그에 대한 국가의 보호를 알려 준다. 이와 함께 이 사료에는 “공적⋅사적으로 빚을 진 사람에게는 모두 그의 아들이나 딸을 노비로 준다.”고 하였는데, 이 중에서 공적 부채는 각종 부세(賦稅)의 미납뿐만 아니라 2세기 후반부터 빈민 구휼 제도로 시행된 진대법(賑貸法)과 같은 제도에 의한 부채를 떠올려 볼 수 있다. 이때 공적 부채로 인해 발생한 노비는 국가의 소유가 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이는 고구려에 공노비(公奴婢)가 존재하였을 가능성을 말해 준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 기술된 것처럼 고구려는 373년(소수림왕 3) 율령(律令)을 반포하였다. 율령은 고구려의 관습적인 법률을 중국식의 성문법(成文法) 체계를 적용해 정리한 것으로 짐작되는데, 이 사료에 보이는 고구려의 형법은 그 일면을 보여 준다고 생각된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저서
『고구려사 연구』, 노태돈, 사계절, 1999.
편저
「사회구조」, 김기흥, 국사편찬위원회,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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