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삼국 시대사회법률과 사회 풍속

백제의 법률

[고이왕] 29년(262) 봄 정월에 영(令)을 내려 무릇 관리로서 뇌물을 받거나 도적질한 자는 그 세 배를 배상하며, 평생토록 금고형(禁錮刑)에 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삼국사기』권24, 「백제본기」2 고이왕 29년

[古爾王] 二十九年, 春正月, 下令, 凡官人受財及盗者, 三倍徴贓, 禁錮終身.

『三國史記』卷24, 「百濟本紀」2 古爾王 29年

이 사료는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일부로, 백제의 형법과 관련한 내용을 전하고 있다. 이 사료에 따르면 백제는 고이왕(古爾王, 재위 234~286) 대 왕명으로 형벌 제도의 일부를 정비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삼국사기』에서는 고이왕 대 여러 국가 체제가 정비된 것으로 나오는데, 이때 율령도 함께 반포되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견해가 있다.

먼저 고이왕 대의 기록을 그대로 인정하여 이 시기에 율령이 반포되었고, 그에 입각한 국가 체제 정비가 일단락되었다고 본 견해가 있다. 이와 달리 고이왕 대의 기록은 후대의 사실을 고이왕 대에 맞추어 정리한 것이라고 본 입장도 있다. 다만 후자의 경우에도 고이왕 대 국가 체제의 정비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사료에 나타난 형법 제도의 정비가 이루어진 시점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해도, 적어도 후대에는 이와 같은 형법이 운용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 사료에서는 뇌물죄와 절도죄에 대한 형벌 규정을 담고 있는데, 이 중에서 절도죄에 대한 규정은 『주서(周書)』와 『구당서(舊唐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다만 『주서』에는 두 배를 징수하였다고 하였다. 뇌물죄와 절도죄는 배상뿐만 아니라 금고형(禁錮刑)에 처한다고 하였는데, 금고는 관직 임명을 금지하는 형벌의 일종이었다. 백제에서는 한 번 뇌물죄나 절도죄를 저지르면 평생 관직에 나아가지 못하도록 막았던 것이다.

『주서』와 『구당서』를 비롯한 중국 측 백제 관련 기록을 보면, 백제의 형법은 뇌물죄와 절도죄 이 외에도 모반죄, 군진(軍陣) 이탈죄, 살인죄가 있어서 참수(斬首)에 처했다고 하였고, 또한 간통죄가 있었다고 한다. 이 중에서 참수, 즉 사형죄에 해당하는 법률과 관련해서는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다루왕(多婁王) 2년조(29)를 참고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백제의 사형죄는 모두 도성의 감옥으로 옮겨서 일을 다 살핀 다음에 국왕의 결재를 얻는다고 하였고, 다섯 번 아뢰게 하여 결정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증보문헌비고』의 기사는 『삼국사기』 등에 보이지 않고 시기도 고이왕 대보다 앞서 있어 그대로 믿기 어렵지만, 백제의 형법 적용이 일정한 절차를 거쳤을 가능성을 보여 준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저서
『백제사회사상사연구』, 노중국, 지식산업사, 2010.
『역주 삼국사기』3, 정구복 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7.

관련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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