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이] 중국의 태화지(太和池) 근처를 지날 때 갑자기 신인(神人)이 나타나 묻기를, “어찌 이곳에 오게 되었는가?”라고 하였다. 자장이 답하기를, “보리(菩提)
불교에서 수행 결과 얻어지는 깨달음의 지혜를 가리킴
를 구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 신인이 공손한 마음으로 절을 하고 또 묻기를, “너희 나라는 어떤 어려움이 있는가?”라고 하였다. 자장이 말하기를, “우리나라는 북쪽으로는 말갈(靺鞨)과 닿아 있고 남쪽으로는 왜국을 접하고 있고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가 번갈아 변경을 침범하여 이웃 나라의 침략이 그칠 줄 모르니, 이것이 백성의 근심거리입니다.”라고 하였다. 신인이 말하기를, “지금 그대의 나라는 여자가 왕이 되어 덕은 있으나 위엄은 없소. 그러므로 이웃 나라가 침략을 꾀하는 것이니, 마땅히 속히 본국으로 돌아가시오.”라고 하였다. 자장이 묻기를, “귀향(歸鄕)하면 장차 무엇이 이익이 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신인이 말하였다. “황룡사
의 호법룡(護法龍)이 내 큰아들인데, 범왕(梵王)의 명을 받아 이 절에 와서 호위하고 있으니 본국으로 돌아가 9층탑을 절 안에 세우면 이웃 나라가 항복하고 9한(九韓)이 와서 조공하여 왕조(王祚)가 길이길이 편안할 것이오. 탑을 세운 후에 팔관회(八關會)
를 열고 죄인을 풀어 주면 외적이 해를 주지 못할 것이오. 그 뒤 다시 나를 위하여 경기(京畿) 남쪽 해안에 정려(精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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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사찰을 가리킴
하나를 세워 함께 나의 복을 빌어 주면 나 또한 덕을 갚겠소.”라고 하였다. 말이 끝나자 드디어 옥을 받들어 바치고 홀연히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사중기(寺中記)에 이르기를, “종남산(終南山) 원향(圓香) 선사가 계신 곳에서 탑을 세우게 된 유래를 받았다.”라고 한다.】
자장은 정관(貞觀) 17년(643) 계묘(癸卯) 16일에 당나라 황제가 하사한 불경⋅불상⋅가사⋅폐백을 가지고 귀국하여 탑을 세우는 일을 임금께 아뢰었다. 선덕왕(善德王)이 여러 신하와 논의하였는데, 신하들이 말하기를 “백제에서 장인을 청한 연후에야 장차 가능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보물과 비단을 가지고서 백제에게 장인을 보내 줄 것을 청하니, 장인 아비지(阿非知)가 명을 받고 와서 목재⋅석재와 관련된 일을 맡았고 이간(伊干) 용춘(龍春)
【혹은 용수(龍樹)라고도 한다.】
이 그 일을 주관하였는데, 거느린 소장(小匠)이 200명이나 되었다. 처음 찰주(刹柱)를 세우는 날 장인이 본국인 백제가 멸망하는 형상을 꿈꾸었다. 장인은 이에 마음으로 의심이 들어 일손을 멈추었는데, 갑자기 크게 땅이 흔들리면서 캄캄한 어둠 속에서 노스님 한 분과 장사(壯士) 한 사람이 금전문(金殿門)에서 나와 그 기둥을 세우고는 모두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장인은 이에 잘못을 뉘우치고 고쳐 그 탑을 완성하였다.
찰주기(刹柱記)에는 “철반(鐵盤) 이상의 높이가 42척이요 그 아래는 183척이다.”라고 되어 있다. 자장이 오대(五䑓)에서 받은 사리 100알은 탑의 기둥 속과 아울러 통도사(通度寺) 계단(戒壇) 및 태화사(太和寺) 탑에 나누어 안치하였는데, 못에 있는 용의 청을 따른 것이다.
【태화사는 아곡현(阿曲縣) 남쪽에 있는데, 지금의 울주(蔚州)이니 또한 자장법사가 창건한 곳이다.】
탑을 세운 후 천지가 태평해지고 삼한(三韓)이 하나가 되었으니 어찌 탑의 영험이 아니겠는가?
후에 고구려왕이 장차 신라를 치려다가 “신라에는 3보(三寶)가 있어서 침범할 수 없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하였다. 신하들이 “바로 황룡사
의 장육상과 9층탑, 그리고 진평왕(眞平王)
의 천사옥대(天賜玉帶)입니다.”라고 하니, 고구려 왕은 마침내 그 계획을 포기하였다. 주(周)나라에 9정(九鼎)이 있어서 초(楚)나라 사람이 감히 북방을 엿보지 못하였다고 하는데, 이와 비슷한 것이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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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해동의 명현(名賢) 안홍(安弘)이 지은 『동도성립기(東都成立記)』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신라 제27대에 여왕이 임금이 되니 비록 도(道)는 있으나 위엄이 없었으므로 9한(九韓)이 침범하였다. 만약 용궁(龍宮) 남쪽 황룡사
에 9층탑을 세우면 곧 이웃 나라의 재앙을 진압할 수 있으니, 제1층은 일본(日本), 제2층은 중화(中華), 제3층은 오월(吳越), 제4층은 탁라(托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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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耽羅)
, 제5층은 응유(鷹遊)
백제(百濟)
, 제6층은 말갈(靺鞨), 제7층은 거란(丹國), 제8층은 여적(女狄)
여진(女眞)
, 제9층은 예맥(穢貊)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