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왕(眞智王) 대에 흥륜사(興輪寺)에 진자(眞慈)
【혹은 정자(貞慈)라고도 한다.】
라는 승려가 있었다. [그는] 항상 당주(堂主) 미륵상(彌勒像) 앞에 나아가 맹세하기를, “원컨대 우리 대성(大聖)
석가모니를 말하나 여기서는 미륵불을 가리킴
께서는 화랑(花郞)으로 변해 세상에 출현하셔서 저희가 항상 [거룩하신] 모습을 가까이 뵙고 받들어 일이 잘되도록 도와주소서.”라고 하였다. 그의 정성스럽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마음은 날이 갈수록 더욱 독실해졌다. 어느 날 밤 꿈에 한 스님이 나타나 말하기를, “네가 웅천(熊川)
【지금의 공주(公州)】
의 수원사(水源寺)에 가면 미륵선화(彌勒仙花)를 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진자가 잠을 깨자 놀라고 기뻐하며 그 절을 찾아 10일 정도 다녔는데, 한 걸음마다 한 번씩을 절하며 그 절에 이르렀다. 문 밖에는 한 소년이 있었는데, 가냘프면서도 앳되었고 예쁘게 진자를 맞이하였으며 작은 문으로 인도하여 객실(賓軒)로 영접하였다. 진자는 그를 따라 올라가면서 또한 인사하며 “그대는 본래 평소에 나를 몰랐는데 어찌하여 이와 같이 성심을 다해 나를 대접하는가?”라고 하였다. 소년이 말하기를, “저 또한 서울 사람입니다. 스님께서 먼 곳에서 오시는 것을 보고 위로를 드릴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잠시 뒤 소년이 문 밖으로 나갔는데, 간 곳은 알지 못하였다.
진자는 우연이라 생각하고 그다지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다만 그 절의 승려들에게 지난밤의 꿈과 자신이 여기에 온 뜻을 이야기하였고 또 말하기를, “잠시 말석에서라도 몸을 붙여 미륵선화를 기다리고 싶은데 어떻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절의 승려들은 그 사정이 허황되다고 업신여기면서도 그의 정성을 보고 말하기를, “여기서 남쪽으로 가면 천산(千山)이 있는데, 예로부터 어질고 사리에 밝은 사람이 살고 있어 명감(冥感)
그윽한 가운데 감응함을 의미
이 많다고 합니다. 어찌 그곳으로 가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진자가 그 말을 좇아 산 아래에 이르니, 산신령이 노인으로 변하여 마중 나와서는 “여기에는 무슨 일로 왔소?”라고 말하였다. 진자가 대답하기를, “미륵선화를 뵙고자 할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노인이 말하기를, “지난번 수원사의 문 밖에서 이미 미륵선화를 뵈었는데, 다시 와서 무엇을 구한다는 말이오?”라고 하였다. 진자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 곧장 달려서 본사(本寺)로 돌아왔다. 한 달 남짓 지나 진지왕이 그 소식을 듣고 진자를 불러 그 연유를 묻고 말하기를, “소년은 이미 스스로 서울 사람임을 밝혔고 성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데, 어찌 도성 안에서는 찾아보지 않는가?”라고 하였다.
진자는 임금의 뜻을 받들어 무리를 모아 두루 마을을 다니면서 그를 물색하였다. 한 소년이 있었는데, 화장을 단정하게 하고 용모가 수려하였으며 영묘사(靈妙寺)의 동북쪽 길가 나무 밑에서 이리 저리 돌아다니면서 놀고 있었다. 진자는 그를 만나자 놀라면서 “이분이 미륵선화다.”라고 하였다. 이에 다가가서 묻기를, “낭(郎)의 집은 어디에 있으며, 성은 무엇인지 알고 싶소.”라고 하였다. 소년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제 이름은 미시(未尸)이고, 어릴 때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셔서 성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소년을 가마에 태우고 들어가서 왕께 보여 드리니, 왕은 그를 공경하고 사랑하여 받들어 국선(國仙)
화랑을 가리킴
으로 삼았다. 그는 여러 집의 자제들과 화목하게 지냈는데 예의와 풍교(風敎)가 보통 사람들과는 달랐다. 그의 풍류가 세상에 드러난 지 거의 7년 만에 갑자기 그가 있는 곳을 알지 못하게 되자 진자는 몹시 슬퍼하고 괴로워하였다. 그러나 그의 자비로운 은덕에 흠뻑 젖었고, 맑은 교화를 직접 접했으므로 능히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고 고쳐서 정성으로 도를 닦아 만년에는 진자 또한 삶을 마친 곳을 알지 못한다. 설명하는 이가 말하기를, “미(未)는 미(彌)와 음이 서로 가깝고, 시(尸)는 력(力)과 [글자] 모양이 서로 비슷하므로, 그 비슷함을 가지고서 헷갈리게 한 것이다. 대성(大聖)이 다만 진자의 정성에만 감동한 것이 아니라 또한 이 땅에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심심찮게 나타났다.”라고 하였다. 지금도 나라 사람들이 신선을 일컬어 미륵선화라고 하고 무릇 남에게 중매하는 사람을 미시(未尸)라고 하는 것은 모두 진자의 유풍(遺風)이다. 길옆의 나무는 지금도 견랑(見郞)이라고 이름하고, 또 속된 말로는 사여수(似如樹)
【혹은 인여수(印如樹)라고도 한다.】
라고 한다.
『삼국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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