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삼국 시대문화삼국의 불교 유물

건흥5년명 금동불

건흥(建興) 5년 병진(丙辰)에 불제자(佛弟子) 청신녀(淸信女) 상부(上部) 아엄(兒奄)이 석가문상■(釋迦文像■)을 만드니, 바라건대 나고 나는 세상마다 불(佛)을 만나 법(法)을 듣게 되고, 일체 중생(一切衆生)이 이 소원을 같이하게 하소서.

「건흥오년명 금동불」

建興五年歲在丙辰, 佛弟子淸信女上部兒奄, 造釋迦文像□, 願生生世世値佛聞法, 一切衆生同此願.

「建興五年銘 金銅佛」

이 사료는 「건흥5년명 금동불(建興五年銘金銅佛)」의 명문(銘文)이다. 「건흥5년명 금동불」은 1915년 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에서 발견되었는데, 현재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높이 12.4cm의 주형 광배(舟形光背)이며, 본존불상(本尊佛像)은 없어졌지만 좌우의 협시보살상(挾侍菩薩像)은 광배(光背)와 함께 주조(鑄繰)되어 현전하고 있다.

명문은 광배의 뒷면에 해서체(楷書體)로 새겨져 있다. 글자는 5행으로 모두 39자이다. 명문의 내용은 아엄(兒奄)이라는 여성이 내세(來世)에도 불교에 귀의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석가불상(釋迦佛像)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불상의 제작 시기는 명문의 ‘건흥’이라는 연호를 통해 파악해야 하는데, 해당 연호는 중국에서 역사상 4세기 이전에 3차례 사용되었을 뿐 이후에는 사용된 적이 없으며 또한 ‘건흥 5년’이 병진년(丙辰年)인 경우도 없다. 따라서 이 연호를 한국 고대 국가 중 하나의 연호로 보는 견해가 제시되었고, 최근에는 596년(고구려 영양왕 7년) 또는 536년(안원왕 6년)으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일찍이 「건흥5년명 금동불」은 백제의 불상으로 여겨졌다. 불상의 발견 장소가 충청북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앞서 언급했듯이 고구려의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왜냐하면 백제의 경우 연대를 표기할 때 연호를 사용하지 않고 6갑간지(六甲干支)만 사용한 데 반해, 이 명문은 연호와 연간지(年干支)가 나오는데, 이러한 형식은 고구려의 다른 조상기(造像記) 명문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광배의 불꽃무늬와 화불의 형태가 고구려의 「금동신묘명삼존불입상(金銅辛卯銘三尊佛立像)」과 흡사한 데다 협시보살의 옷 주름 조각이 강건한 양식인 점도 고구려의 것으로 보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충주 고구려비(忠州高句麗碑)」를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현재의 충청북도 충주시 지역은 5~6세기 중반 고구려의 영역이었다. 따라서 「건흥5년명 금동불」이 고구려의 불상이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고구려의 불교가 한반도 남부 지역으로 확산되는 경로를 유추해 볼 수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저서
『삼국신라시대불교금석문고증』, 김영태, 민족사, 1992.
『고구려 불교사 연구』, 정선여, 경인문화사, 2007.
편저
『역주 한국고대금석문』Ⅰ, 한국고대사회연구소 편,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1992.

관련 사이트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링크연결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