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삼국 시대문화삼국의 불교 유물

정지원명 금동불상

정지원(鄭智遠)이 죽은 아내 조사(趙思)를 위하여 금상(金像)을 공경히 만드니, 빨리 삼도(三塗)를 떠나게 해 주소서.

「금동정지원명석가여래삼존입상」

鄭智遠爲亡妻趙思, 敬造金像, 早離三塗.

「金銅鄭智遠銘釋迦如來三尊立像」

이 사료는 「금동정지원명석가여래삼존입상(金銅鄭智遠銘釋迦如來三尊立像)」의 명문으로, 6세기 고구려와 백제 간 문화 교류의 일면을 추정해 볼 수 있다. 1919년 충청남도 부여군 부소산성(扶蘇山城) 내 사비루(泗沘樓)에서 발견된 높이 8.5cm의 금동불상으로, 형태는 주형 광배(舟形光背)에 본존불 입상과 좌우에 협시보살이 한 데 붙어서 주조되었다. 광배 뒷면에는 3행의 명문이 새겨져 있어 불상을 만든 주체와 그 목적을 알 수 있다. 불상은 부소산성에서 출토되었기 때문에 백제의 불상으로 추정되며, 그 양식이 고구려의 것으로 보이는 「금동신묘명삼존불입상」과 유사하여 6세기 후반 단계의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의 조성 주체는 정지원(鄭智遠)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인데, 이름이 순한문식이며 지금까지 백제의 성씨에서 정(鄭)씨나 조(趙)씨가 확인되지 않고 있어 중국계 인물일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불상이 중국에서 제작되어 백제로 들어왔을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삼국사기』나 『일본서기』 등에는 외교를 담당하거나 박사(博士)의 직을 띠고 있는 중국계 혹은 한군현(漢郡縣)계의 인물들에 대한 기록이 전하는 것으로 보아 중국계 인물이 백제에서 거주하고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이 삼존불의 본존은 석가불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6세기 중⋅후반 백제에서는 석가불 신앙이 성행하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성왕(聖王, 재위 523~554)과 위덕왕(威德王, 재위 554~598) 대 왕권을 확립해 가는 과정에서 석가불의 권위를 왕권에 투영하고자 했던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백제사자료역주집-한국편Ⅰ-』,,충남역사문화연구원 편,충남역사문화연구원,2008.
『역주 한국고대금석문』Ⅰ,,한국고대사회연구소 편,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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