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면)
영동대장군(寧東大將軍) 백제 사마왕(斯麻王)은 나이가 62세가 되는 계묘년(癸卯年, 523년) 5월 (병술일이 초하루인데) 임진일인 7일에 돌아가셨다. 을사년(乙巳年, 525년) 8월 (계유일이 초하루인데) 갑신일인 12일에 안장하여 대묘(大墓)에 올려뫼시며, 기록하기를 이와 같이 한다.
(이면)
「무령왕 지석」
(표면)
병오년(丙午年, 526년) 12월 백제국 왕대비(王大妃)가 천명(天命)대로 살다가 돌아가셨다. 유지(酉地)에서1)
삼년상을 마치고 기유년(己酉年, 529년) 계미(癸未)일이 초하루인 2월의 갑오(甲午)일인 12일에 다시 대묘(大墓)로 옮겨서 정식 장례를 지내며 기록하기를 이와 같이 한다.
1)
유(酉)는 열째 지지(地支)로서 방위로는 서방을 뜻하므로, 유지란 서쪽의 땅을 말한다. 왕후의 시신이 왕릉에 합장되기 전까지 안치된 곳으로 보이나, 구체적인 위치는 알 수 없다.
(이면)
돈 1만매. 이상 1건.
을사년(乙巳年, 525년) 8월 12일 영동대장군(寧東大將軍) 백제 사마왕(斯麻王)은 상기의 금액으로 매주(賣主)인 토왕(土王), 토백(土伯), 토부모(土父母), 상하 2000석 이상의 여러 관리에게 문의하여 신지(申地)2)
를 매입해서 능묘(陵墓)를 만들었기에 문서를 작성하여 명확한 증험으로 삼는다. 부종율령(주문이므로 해석하지 않음. 또는 모든 율령(律令)에 구애 받지 않는다.).
2)
신(申)은 아홉째 지지(地支)로서 방위로는 서남서(西南西)이므로, 신지란 서남서 방향의 땅을 뜻한다.
「무령왕비 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