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통일 신라와 발해정치새로운 세력의 성장과 후삼국의 성립

지방 호족의 성장-선필의 예

선필(善弼)은 신라의 재암성(載岩城) 장군이었다. 이때에 도적의 무리가 다투어 일어나 이르는 곳마다 약탈하였다.태조(太祖)가 신라와 우호를 맺으려 하였으나 길이 막혀서 근심하였다. 선필은 태조의 위엄과 덕행을 보고 드디어 귀순을 표시하여 신라와 우호를 맺을 수 있도록 힘을 썼고, 적을 막아 여러 번 공이 있었다. 후에 그 성을 들어 귀부하자 태조가 후하게 대우를 더하였으며, 나이가 많았으므로 상부(尙父)로 삼았다.

『고려사』권92, 「열전」5 [제신] 왕순식 부 선필

善弼爲新羅載巖城將軍, 時群盜競起所至奪掠. 太祖欲通好新羅以路梗患之, 弼觀太祖威德遂歸款, 以計使通好新羅, 因捍賊屢有功. 後以其城內附, 太祖厚加待遇, 以年老稱爲尙父.

『高麗史』卷92, 「列傳」5 [諸臣] 王順式 附 善弼

이 사료는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신라와 우호 관계를 맺는 데 크게 기여한 재암성(載岩城) 장군 선필(善弼, ?~?)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후삼국 시대 지방 호족의 존립 및 귀부(歸附) 등의 양상이 잘 드러난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자료이다.

선필은 재암성 장군으로 독자적인 세력을 이루고 있었다. 선필은 고려 태조 왕건(王建, 877~943)의 위엄과 덕행을 보고 고려에 귀부하기로 작정하고, 고려가 신라와 우호 관계를 맺는 데 힘을 써서 공을 세웠다. 그리고 후에 재암성을 들어 고려에 귀부하자 왕건이 후하게 대우하였다고 한다. 우리가 이 기록에서 주목해 할 것은 선필과 같이 신라 말에 장군 등으로 불리며 지방에서 독자적으로 활동한 세력, 즉 호족의 등장과 활동이다.

호족은 신라 말⋅고려 초에 지방에서 대두한 새로운 사회 세력으로서, 신라 말⋅고려 초의 사회 변동을 주도한 중심 세력이었다. 이들은 지방 사회에서 일정한 지역에 대한 독자적으로 행정⋅경제⋅군사적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었으며, 중앙 정부의 지배로부터 독립하려는 성향이 강하였다. 호족 중에는 중앙에서 몰락해 지방으로 내려간 중앙 귀족 출신도 있었지만 촌주(村主) 출신도 있었다. 이들은 자기 세력이 미치는 지방의 민중을 직접 지배하며 군사력을 토대로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였다. 문헌 기록에 호족은 장군(將軍)⋅성주(城主)⋅성수(城帥)⋅수(帥)⋅적수(賊帥)⋅적(賊)⋅웅호(雄豪)⋅호걸(豪傑)⋅호족(豪族) 등으로 표현되어 있다.

호족은 중앙 정부의 통치력이 크게 약화되는 진성여왕(眞聖女王, 재위 887~897) 대부터 지방 사회의 실질적인 지배자로 등장하였다. 이 시기에 호족이 등장하게 된 배경으로는 무엇보다도 중앙에서 진골 귀족끼리 극심한 왕위 쟁탈전을 벌이면서 지배 체제가 이완되었다는 데에 있다. 신라 하대에 중앙에서는 진골 귀족의 각 가계(家系) 사이에 왕위를 둘러싼 정권 쟁탈전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자연히 중앙 정부의 지방 통제력은 약해졌고, 동시에 중앙의 왕위 계승전에서 패해 지방으로 낙향하는 진골 귀족이 증가하면서 신라의 지배로부터 독립적인 위치에 있는 세력의 수는 더욱 늘어났다.

한편, 신라 골품제 사회에서 지방인의 중앙 진출은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었다. 지방민은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촌주로서 촌정(村政)에 참여하거나 군현의 말단 관리가 되는 것 외에는 다른 사회적 진출로가 없었다. 그러나 이들은 재지 기반을 바탕으로 지방 사회에서 점차 세력을 확대해 나가 정치⋅군사적 실력자로 성장하였다. 또한 왕건의 집안처럼 해상무역에 종사하여 경제적 실력을 바탕으로 지방 사회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게 된 경우도 있었다.

중앙 권력으로부터 배제된 이들은 기회가 오면 언제든지 신라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독립할 수 있는 세력이었다. 드디어 진성여왕 대에 이르러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되고 농민들의 반란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면서 전국이 내란 상태에 놓이자 이들은 전국 각지에서 대두하여 이른바 ‘호족의 시대’를 열게 되었다. 그리고 재암성 장군 선필의 예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신라를 멸망시키고 고려 왕조를 성립시키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고려 태조대 귀부호족과 본읍장군」,『진단학보』92,김아네스,진단학회,2001.
「신라하대의 성주⋅장군-진보성주 홍술과 재암성장군 선필을 중심으로-」,『한국사연구』39,윤희면,한국사연구회,1982.
「라말려초 호족 용어에 대한 연구사적 검토」,『(성심여대)논문집』19,이순근,성심여자대학,1987.
「나말여초 지방세력의 구성형태에 관한 일연구」,『한국사연구』67,이순근,한국사연구회,1989.
「8~10세기 신라 지방세력 형성의 실제와 그 성격」,『사학지』22,최근영,단국대학교 사학회,1989.
저서
『나말여초의 호족과 사회변동연구』, 김갑동,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90.
『후삼국시대 호족연구』, 신호철, 개신, 2002.
『신라말고려초 호족연구』, 정청주, 일조각, 1996.
『통일신라시대의 지방세력연구』, 최근영, 신서원, 1990.

관련 사이트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링크연결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