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통일 신라와 발해문화학문의 발달과 유교 진흥

신라인의 당나라 유학

[원성왕(元聖王) 5년(789)] 9월에 자옥(子玉)을 양근현(陽根縣)의 소수(小守)로 삼으니, 집사사(執事史) 모초(毛肖)가 논박하여 말하기를, “자옥은 문적(文籍)으로 등용되지 않았으니 지방 관직을 맡길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시중(侍中)이 의논하여 말하기를, “비록 문적으로 등용되지는 않았지만 일찍이 당나라에 들어가 학생(學生)이 되었으니 역시 써도 좋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왕은 이에 따랐다.

삼국사기』권10, 「신라본기」10 원성왕 5년 9월

九月, 以子玉爲楊根縣小守. 執事史毛肖駮言, 子玉不以文籍出身, 不可委分憂之職. 侍中議云, 雖不以文籍出身, 曾入大唐爲學生, 不亦可用耶. 王從之.

『三國史記』卷10, 「新羅本紀」10 元聖王 5年 9月

이 사료는 신라 하대인 789년(원성왕 5년)에 자옥(子玉)이라는 사람을 관리에 임명하려고 하자 집사부 관리인 모초(毛肖)가 문적(文籍) 출신이 아니라며 반대한 내용이다. 당시 국학(國學) 출신 인물의 관리 임용 양상을 보여 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자옥의 관리 임용을 둘러싼 문제가 발생한 시점은 788년(원성왕 4년) 국학독서삼품과(讀書三品科)를 시행하는 등 국학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가 취해진 이듬해의 일이다. 당시 자옥을 양근현(楊根縣)의 소수(少守)에 임명하려 하자 집사사(執事史)라는 관직에 있는 모초가 이를 강력하게 비판하였다. “자옥은 문적(文籍)으로 등용되지 않았으니 지방 관직을 맡길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 말에서 당시 지방 관직은 문적 출신을 우선하여 임명하도록 되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여기서의 문적은 국학을 의미한다. 따라서 당시는 태수⋅현령⋅소수 등과 같은 지방의 수령직은 국학에서 유학을 공부하고 독서삼품과를 거친 사람을 임용함을 원칙으로 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모초의 반대에 대하여 “비록 문적으로 등용되지는 않았지만 일찍이 당나라에 들어가 학생이 되었으니 써도 좋지 않겠는가?” 하는 집사부 시중(侍中)의 의견이 있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자옥은 양근현 소수에 임명되었다.

신라가 당나라에 유학생을 보낸 것은 640년(선덕왕 9년)으로, 왕실 자제들을 당나라 국자감(國子監)에 보내 수학하게 한 것이 그 시작이다. 이후 이른바 ‘숙위학생(宿衛學生)’의 명분으로 많은 학생이 당나라로 건너가 수학하였다. 그리하여 첫 유학생을 보낸 시점으로부터 약 200년이 지난 837년(희강왕 2년)에는 유학생 수가 216명에 이르게 되었다. 게다가 821년(헌덕왕 13년) 이래 당나라에서 외국인을 상대로 빈공과(賓貢科)라는 과거시험을 실시하면서 신라인의 유학열은 더욱 고조되었고, 빈공과에 급제하는 유학생도 나타났다. 그리하여 신라가 당나라로 유학생을 처음 파견한 이래 멸망할 때까지 근 300년간 당나라에서 유학한 신라인의 수는 2000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들 유학생은 귀국 후 주로 문한(文翰) 기구나 국왕 측근의 근시(近侍) 기구에서 활동하였다. 이들은 당시 사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으나, 결과적으로는 신라 자체의 국학의 진흥에는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독서삼품과를 시행하는 등 국학을 강화하고자 한 시도가 결국은 당나라 유학생 출신이 증가하면서 소기의 목적을 거두지 못하고 쇠퇴하였기 때문이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신라 관인선발제도의 변화」,『역사와 현실』23,고경석,한국역사연구회,1997.
「신라하대의 도당유학생에 대하여」,『한국사연구』37,김세윤,한국사연구회,1982.
「고대의 교육과 인재양성」,『한국사시민강좌』18,노용필,일조각 편,1996.
「신라와 고구려⋅백제의 인재양성과 선발」,『신라문화제학술발표회논문집』19,노중국,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1998.
「신라 골품체제 하의 유교적 정치이념」,『신라시대의 국가불교와 유교』,이기백,한국연구원,1978.
「신라 중대의 국학과 국학생-『삼국사기』38 국학조 학생관련규정의 재검토-」,『신라문화제학술발표회논문집』19,이희관,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1998.
「신라 경문왕⋅헌강왕대의 ‘능관인’ 등용정책과 국학」,『동아연구』17,전미희,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1989.
「신라 하대 견당국학유학생의 파견과 그 역사적 의미」,『서강인문논총』25,조범환,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2009.
「신라의 교육제도 연구」,『경주문화연구』4,지배선,경주대학교 문화재연구소,2001.
「통일신라의 관인 교육과 선발」,『최숙경교수정년기념사학논총』,차미희,간행위원회 편,2000.
「신라 하대 독서삼품과」,『신라문화제학술발표회논문집』19,홍기자,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1998.
저서
『한국고대사회사상사탐구』, 노용필, 한국사학, 2007.
『한국고대사의 신연구』, 신형식, 일조각, 1984.
『신라사상사연구』, 이기백, 일조각, 1986.

관련 사이트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링크연결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