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관산(五冠山) 서운사(瑞雲寺) 화상은 앙산(仰山) 혜적선사(慧寂禪師)를 계승하였다. 스님의 휘(諱)는 순지(順之)요, 속성은 박씨(朴氏)이며, 패강(浿江) 사람이다. 할아버지 때부터 가업이 무용(武勇)이 있어 대대로 변경을 지키는 장수를 지냈는데, 충성스럽고 부지런하다는 명성과 남긴 업적이 그 지역에 자자하다. 어머니 소씨(昭氏)는 유범(柔範)
여성이 지켜야 할 규범
과 모의(母儀)
어머니로서 지켜야 하는 도리
로 부덕(婦德)에 대한 칭송이 고을에 가득하였다. 스님을 잉태할 때에는 여러 차례 상서로운 태몽을 꾸었고, 분만하는 날에는 많은 기이한 징조가 나타났다. ……(중략)……
건부(乾符)
당나라 희종 대 연호, 874~879
연초에 송악군(松岳郡)의 여단월(女檀越)
단월은 사찰이나 승려에게 물건을 베푸는 불교 신자를 뜻하므로, 여단월은 곧 여성 신자를 의미
인 원창왕후(元昌王后)
왕건의 조모
와 그의 아들 위무대왕(威武大王)
고려 태조의 아버지
이 함께 오관산(五冠山) 용엄사(龍嚴寺)를 헌납하므로, 그 뜻을 받아들여 가서 머무르게 되었다. 지금은 서운사(瑞雲寺)로 개칭하였다. ……(중략)……『조당집』권20, 오관산서운사화상
건부(乾符) 연간(874~879)에 절을 확장하고 중수하려 하였으나, 지대가 궁벽하고 비좁기에 그곳에서 1리쯤 떨어진 곳에 길상지지(吉祥之地)를 잡고 둔덕을 평평하게 만들었다. (결락) 경문대왕(景文大王)이 여러 차례에 걸쳐 어서(御書)를 내려 공경하는 마음으로 우러러 받들었다. (결락) 헌강대왕(獻康大王)도 친히 법화(法化)를 받고 항상 존숭하였으니, 마치 가섭마등(迦葉摩登)1)
이 낙양(洛陽)에 들어오던 때와 강승회(康僧會)2)
가 오(吳)나라에 가던 날과 같았다. 스님의 왕과의 만남은 실로 저들마저도 부끄러워할 정도였다. 밝게 빛나기는 해와 달과 빛을 다툴 정도로 크게 은광(恩光)을 베풀었으니, 이처럼 임금의 추앙을 받음이 고금을 통해 필적할 만한 스님이 없었다.중화(中和)
1)
가섭마등(迦葉摩登)은 1세기 중인도의 승려로 『금광명경(金光明經)』을 강설하여 이름을 떨쳤으며 중국에 최초로 불법을 전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후한(後漢) 영평(永平) 10년(67년)에 승려이자 역경가(譯經家)인 축법란(竺法蘭)과 함께 낙양(洛陽)에 왔는데, 명제(明帝)는 낙양에 백마사(白馬寺)를 지어 이들이 머물면서 포교할 수 있게 하였다.
2)
강승회(康僧會, ?~280)는 중국 삼국 시대 역경승(譯經僧)으로서 본래 강거국(康居國 : 지금의 동 투르키스탄) 출신이다. 오(吳)나라에 불교를 전파하여 오나라 왕 손권(孫權)을 불법에 귀의하게 하고, 『육도집경(六度集經)』을 번역하였다.
당나라 희종 대 연호, 881~884
연간의 어느 날 홀연히 이전 상왕(上王)인 헌강왕의 천화재(遷化齋)를 지낸다는 소식을 듣고 곧 문인(門人)을 보내 금옥(金玉)을 가지고 가서 선령전(仙靈前)에 독경하고 법은(法恩)을 입혀 왕생극락하도록 하였다. 경복(景福) 2년(893년) 3월에, (결락) 임금의 초빙으로 개경(開京)으로 가서 왕을 대하여 경전의 말씀인 금언(金言)을 설법하였다.「서운사요오화상비」
- 가섭마등(迦葉摩登)은 1세기 중인도의 승려로 『금광명경(金光明經)』을 강설하여 이름을 떨쳤으며 중국에 최초로 불법을 전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후한(後漢) 영평(永平) 10년(67년)에 승려이자 역경가(譯經家)인 축법란(竺法蘭)과 함께 낙양(洛陽)에 왔는데, 명제(明帝)는 낙양에 백마사(白馬寺)를 지어 이들이 머물면서 포교할 수 있게 하였다.
- 강승회(康僧會, ?~280)는 중국 삼국 시대 역경승(譯經僧)으로서 본래 강거국(康居國 : 지금의 동 투르키스탄) 출신이다. 오(吳)나라에 불교를 전파하여 오나라 왕 손권(孫權)을 불법에 귀의하게 하고, 『육도집경(六度集經)』을 번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