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통일 신라와 발해문화통일 신라의 문학과 예술

통일신라시대의 향가

여러 사람이 「해가(海歌)」를 불렀는데, 가사는 “거북아 거북아 수로(水路)를 내놓아라. 남의 부녀를 빼앗아 간 죄가 얼마나 큰가. 네가 만일 거역하고 내놓지 않으면 그물로 잡아 구워 먹으리라.”라고 하였다. 노인의 「헌화가(獻花歌)」는 “자줏빛 바위 가에 잡은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라고 하였다.

삼국유사』권2, 「기이」2 수로부인

안민가(安民歌)는 “임금은 아버지요 신하는 사랑스런 어머니요 백성은 어리석은 아이라 하실지면 백성이 그 사랑을 알리라. 꾸물거리며 사는 물생(物生)들에게 이를 먹여 다스린다. 이 땅을 버리고 어디로 가려고 한다면, 나라 안이 유지됨을 알리다. 아아,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한다면 나라 안이 태평하리다.”라고 하였다.

기파랑(耆婆郞)을 찬미한 노래는 “열치고 나타난 달이 흰 구름 쫓아 떠가는 것이 아닌가. 새파란 시내에 파랑의 모습이 있도다. 일오천(逸烏川) 조약돌에서 낭(郎)이 지니신 마음가를 쫓으려 하노라. 아아! 잣나무 가지 드높아 서리 모를 화판(花判)이여!”라고 하였다.

삼국유사』권2, 「기이」2 경덕왕 충담사 표훈대덕

처용(處容)이 밖에서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두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곧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며 물러났다. 노래에 이르기를, “동경(東京) 밝은 달에 밤들도록 노닐다가 집에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구나. 둘은 내 것이고 둘은 뉘 것인고. 본디 내 것이지만 뺏겼으니 어찌 할꼬.”라고 하였다.

삼국유사』권2, 「기이」2 처용랑 망해사

월명(月明)은 이에 「도솔가(兜率歌)」를 지어 읊었다. 그 가사는 이러하다. “오늘 이에 산화가[散花]를 불러 뿌린 꽃이여, 너는 곧은 마음이 명하시니 미륵좌주(彌勒座主)를 모시어라.”라고 하였다. 이를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용루(龍樓)에서 오늘 「산화가(散花歌)」를 불러, 청운(靑雲)에 한 조각 꽃을 뿌려 보낸다. 은중한 곧은 마음이 시키는 바이니, 멀리 도솔천[兜率]의 부처님 맞으시라”라고 하였다. 지금 세속에서는 이것을 「산화가」라고 하나 잘못이다. 마땅히 「도솔가」라고 해야 할 것이다. 「산화가」는 따로 있는데, 글이 번다하여 싣지 않는다. ……(중략)……

월명은 또한 일찍이 죽은 누이동생을 위하여 재(齋)를 올리고 향가(鄕歌)를 지어 제사를 지냈더니, 문득 회오리바람이 일어나 지전(紙錢)이 날려 서쪽 방향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 노래는 다음과 같다. “생사의 길은 예 있으매 저어하고 나는 간다 말도 못다 이르고 갑니까.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이에 저에 떨어질 잎인 양 한 가지에 나고 가는 곳 모르온져. 아아! 미타찰(彌陀刹)에서 만날 나 도 닦아 기다리겠노라.”

삼국유사』권5, 「감통」7 월명사도솔가

이때에 융천(融天) 스님이 노래를 지어 불렀더니 별의 괴변이 곧 멸하고 일본 군병이 제 나라로 돌아가 도리어 복된 경사가 되었다. 대왕(大王)은 기뻐하여 낭도들을 풍악(楓岳)에 보내 놀게 하였다. 그 노래는 “옛날 동쪽 물가의 건달바(乾達婆)의 놀았던 성을 바라보고 ‘왜군도 왔다’고 홰를 사룬 변방의 숲이라. 세 화랑의 산행(山行) 감을 듣고 달도 밝게 불을 켜는 터에 길 쓸 별 바라보고 ‘혜성이여’ 사뢰는 사람이 있다. 아으, 달은 저 아래로 떠가고 있더라. 어와, 그 무슨 혜성이 있을꼬.”라고 하였다.

삼국유사』권5, 「감통」7 융천사혜성가 진평왕

衆人唱海歌詞曰, 龜乎龜乎出水路, 掠人婦女罪何極. 汝若㥬逆不出獻, 入網捕掠燔之喫. 老人獻花歌曰, 紫布岩乎过希執音乎手母牛放教遣, 吾肹不喩慚肹伊賜等, 花肹折叱可獻乎理音如.

『三國遺事』卷2, 「紀異」2 水路夫人

安民歌曰, 君隱父也, 臣隠愛賜尸母史也, 支民焉狂尸恨阿孩古爲賜尸知民是愛尸知古如, 窟理叱大肹生以支所音物生此肹喰惡支治良羅. 此地肹捨遣只扵冬是去扵丁, 爲尸知國惡攴持以, 支知古如. 後句, 君如臣多支民隠如, 爲內尸等焉國惡太平恨音叱如.

讃耆婆郞歌曰, 咽嗚爾處米, 露曉邪隠月羅理, 白雲音逐于浮去隠安攴下. 沙是八陵隠汀理也中, 耆郞矣皃史是史藪邪. 逸烏川理叱磧惡希, 郎也持以攴如賜烏隠, 心未際叱肹逐內良齊. 阿耶, 栢史叱枝次髙攴好, 雪是毛冬乃乎尸花判也.

『三國遺事』卷2, 「紀異」2 景德王 忠談師 表訓大德

處容自外至其家, 見寢有二人, 乃唱歌作舞而退. 歌曰, 東京明期月良, 夜入伊逰行如可, 入良沙寢矣見昆, 脚烏伊四是良羅. 二肹隠吾下扵叱古, 二肹隠誰支下焉古.

『三國遺事』卷2, 「紀異」2 處容郞 望海寺

明乃作兠率歌賦之. 其詞曰. 今日此矣散花唱良巴, 寳白乎隠花良汝隐, 直等隠心音矣命叱使以惡只, 弥勒座主陪立羅良. 解曰. 龍樓此日散花歌, 挑送青雲一片花. 殷重直心之所使, 逺邀兠卛大僊家. 今俗謂此爲散花歌, 誤矣. 冝云兠卛歌. 别有散花歌, 文多不載. ……(中略)……

明又嘗爲亡妹營齋, 作郷歌祭之, 忽有驚颷吹紙錢, 飛舉向西而没. 歌曰. 生死路隠, 此矣有阿米次肹伊遣, 吾隐去內如辝叱都, 毛如云遣去內尼叱古. 於內秋察早隠風未, 此矣彼矣浮良落尸葉如一等隠枝良出古, 去奴隠處毛冬乎丁. 阿也, 彌陁刹良逢乎, 吾道修良待是古如.

『三國遺事』卷5, 「感通」7 月明師兜率歌

時天師作歌歌之, 星恠即滅, 日夲兵還國, 反成福慶. 大王歡喜, 遣郎逰岳焉. 歌曰, 舊理東尸汀叱, 乹逹婆矣逰烏隐城叱肹良望良古, 倭理叱軍置來叱多烽燒邪隠邊也藪耶. 三花矣岳音見賜烏尸聞古, 月置八切爾數於将来尸波衣, 道尸掃尸星利望良古, 彗星也白反也人是有叱多. 後句, 逹阿羅浮去伊叱等邪, 此也友物比所音叱彗叱只有叱故.

『三國遺事』卷5, 「感通」7 融天師彗星歌 眞平王代

이 자료는 신라 향가(鄕歌)에 대해 전하는 『삼국유사(三國遺事)』의 기록이다. 향가는 신라인이 애송한 신라의 가요로 향찰(鄕札)로 표기되어 있다. 향가라는 명칭은 중국 시가에 대한 우리나라 고유의 시가를 지칭하기도 하며, 신라 가요⋅신라 시가라고도 부른다.

현전하는 향가는 총 25수로, 신라 향가 14수가 『삼국유사』에, 고려 향가 11수가 『균여전(均如傳)』에 수록되어 있다. 진성여왕(眞聖女王, 재위 887~897) 때의 대구화상(大矩和尙)과 각간(角干) 위홍(魏弘, ?~888)이 향가집 『삼대목(三代目)』을 편찬했다고 하나 안타깝게도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신라 말기의 가요 집성이라는 점에서 『삼대목』에는 신라 전대에 걸친 향가가 고루 망라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 전하는 신라 향가로는 광덕(廣德)의 「원왕생가(願往生歌)」, 득오(得烏)의 「모죽지랑가(慕竹旨郞歌)」, 견우옹의 「헌화가(獻花歌)」, 신충(信忠)의 「원가(怨歌)」, 월명사(月明師)의 「도솔가(兜率歌)」와 「제망매가(祭亡妹歌)」, 충담사(忠談師)의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와 「안민가(安民歌)」, 희명(希明)의 「천수대비가(千手大悲歌)」, 영재(永才)의 「우적가(遇賊歌)」, 처용(處容)의 「처용가(處容歌)」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월명사의 「제망매가」와 충담사의 「찬기파랑가」는 이 시기 향가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으며, 특히 「처용가」는 고려 시대에 윤색 첨가되어 조선 시대에는 궁중음악으로 연주되었다.

여기에서 소개하는 「해가(海歌)」 는 『삼국유사』 수로부인(水路夫人)조에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는 「헌화가」 와 「해가」가 기록되어 있는데, 「헌화가」는 향찰로 표기된 향가이고 「해가」는 한역(漢譯)된 노래이다. 「안민가」는 경덕왕(景德王, 재위 742~765) 때 충담사(忠談師)가 지은 10구체 향가로, 왕을 아버지, 신하를 어머니, 백성을 어린아이에 비유하여 각자 본분을 다하면 나라와 백성이 편안해질 것이라는 내용이다. 여기에는 유교 사상과 불교의 정법 사상(正法思想)이 섞여 있다. 또 「처용가」는 헌강왕(憲康王, 재위 875~886) 때 처용이 지은 8구체 향가로, 처용이 역신(疫神)에게 아내를 빼앗긴 후 그 고민을 노래로 표현한 것이다. 「도솔가」는 월명사가 지은 4구체 향가로, 신라를 미륵(彌勒) 하생(下生)의 불국토(佛國土)로 간주하여 일체의 재앙이 범접하지 못한다는 종교적 신심을 노래하고 있다. 「혜성가」는 진평왕(眞平王, 재위 579~632) 때 융천사(融天師)가 지은 10구체 향가로, 혜성의 변괴를 없애고 때마침 침략한 왜구도 물러가게 했다는 주술적 내용이다.

이와 같이 향가는 신라인 누구나 즐긴 노래이지만, 남녀상열지사와 같은 세속적인 감정을 노래한 고려 속요와는 달리 숭고한 이상, 종교적 신심, 질박한 인간 감정 등을 노래하거나 주가적(呪歌的)인 작품도 있다. 내용 전개에서는 솔직 담백하며, 우울이나 절망과 같은 부정적 정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향가의 내용이 다양하듯이 향가의 작자도 그 구성이 다양하여, 위로는 국왕에서부터 아래로 승려와 평민, 일반 부녀자에 이르기까지 신라 사회의 각계각층을 망라하였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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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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