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통일 신라와 발해문화통일 신라의 문학과 예술

신라의 한시선

가을밤 빗속에서[추야우중(秋夜雨中)]

최치원(崔致遠)

가을바람 속에서 처량한 이 읊조림만

온 세상에 알아 주는 이 드무니

창 밖에는 삼경(三更)의 비가 오는데

등불 앞에 아물아물 만리(萬里)의 마음이여.

『동문선』권19, 오언절구

분원시(憤怨詩)

왕거인(王巨仁)

우공(于公)이 통곡하자 3년 동안 가물었고

추연(鄒衍)이 슬픔을 머금자 5월에 서리가 내렸네.

지금의 내 시름이 도리어 옛사람과 같은데

하늘은 말이 없고 다만 푸르기만 하구나.

삼국사기』권11, 「신라본기」11 진성왕 2년

秋夜雨中

秋風唯苦吟

擧世少知音

䆫外三更雨

燈前萬里心

崔致遠

『東文選』卷19 「五言絶句」

憤怨詩

于公慟哭三年旱

鄒衍含悲五月霜

今我幽愁還似古

皇天無語但蒼蒼

王巨仁

『三國史記』卷11, 「新羅本紀」11 眞聖王 2년

이 시는 최치원(崔致遠, 857~?)의 「추야우중(秋夜雨中)」과 왕거인(王巨仁, ?~?)의 「분원시(憤怨詩)」로, 신라 문학이 상당한 수준에 도달하였음을 말해 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시기의 작품들 가운데 김지장(金地藏, ?~?)⋅최치원⋅김입지(金立之, ?~?)⋅김가기(金可紀, ?~859)⋅김운경(金雲卿, ?~?) 등의 시는 중국에까지 알려져 『전당시(全唐詩)』에 수록되어 전한다. 또 『동문선(東文選)』에는 최치원과 박인범(朴寅範, ?~?), 최광유(崔匡裕, ?~?), 최승우(崔承祐, ?~?)의 작품이 실려 있는데, 최치원의 「우흥(寓興)」 「장안 여사 이웃에 우신미 장관이 살기에 시를 지어 부친다[長安旅舍與于愼微長官接隣有寄]」 「도중작(途中作)」을 비롯하여 최광유의 「어구(御溝)」, 박인범의 「건축국으로 돌아가는 엄상인을 보내며[送儼上人歸乾竺國]」 등이 그것이다. 박인범⋅최광유⋅최승우의 시는 모두 이국에서의 외롭고 가난한 삶, 중국 문사와의 교유, 정치에 대한 참여 욕구와 당대 현실에 대한 비판 등이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다. 도당(渡唐) 유학생 출신인 이들은 당(唐)나라에 유학하여 학문을 연마하며 문학에서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으나 여전히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정치에 참여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이상을 펼치고자 하는 욕망이 이 시들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최치원의 「추야우중」 또한 이와 같은 경향을 보여 주는 시로, 깊어 가는 가을밤의 비바람 속에서 괴로워하는 작자의 심정을 읊고 있다. 이 시는 최치원이 당나라에서 귀국한 후에 지은 것으로 추측되는데, 탁월한 능력을 지녔음에도 혼란한 세상에서 뜻을 펼치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지식인의 고뇌가 잘 묘사되어 있다. 곧 자신의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당대 현실 상황 속에서 겪는 정치적⋅정신적 갈등이 이 시에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치원의 현실 인식은 어지러운 사회 현실을 바로잡으려는 정치적 포부로 발전하지 못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비판하기보다는 오히려 초월하려는 움직임으로 전개되었다.

한편 왕거인의 「분원시」는 여러 문헌에 실려 전한다. 대부분의 내용이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실린 것과 같은데, 『전당시』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실려 있는 작품은 주제는 일치하나 약간의 차이가 있다. 진성왕(眞聖王, 재위 887~897) 때에 어떤 사람이 정치를 비방하는 글을 지어 큰 길에 걸어 놓은 일이 발생하였는데, 그 범인으로 왕거인이 몰려서 투옥되어 형벌을 받게 되었다. 이에 왕거인은 자신의 억울한 심정을 「분원시」로 지어 감옥 벽에 써서 자기의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그러자 갑자기 벼락이 치고 우박이 쏟아져서 이를 두려워한 진성여왕이 그를 석방했다고 한다.

왕거인 사건은 골품 체제의 모순에 대한 6두품 출신의 비판적 태도와 진골 귀족들에게 탄압받는 정치적 상황을 짐작하게 해 준다. 왕거인의 시에는 진성여왕 때의 어지러운 현실과 은일(隱逸) 문사로서 겪어야 했던 울분이 생생하게 표출되어 있다. 왕거인이 도당 유학생 출신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 사건에서도 암시하듯 유학생들은 귀국 후에도 그 입지가 평탄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이 시는 당대의 역사적 현실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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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운 문학의 문학사적 의의」,『고운학보』2,송준호,고운학회,2004.
「최고운 시의 위상」,『동방학지』36⋅37,송준호,연세대학교 출판부,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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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신라와 발해 한시의 당시론적 고찰』, 류성준, 푸른사상, 2009.
『최고운의 삶과 문학』, 이구의, 새문사, 1981.
『신라 한문학 연구』, 이구의, 아세아문화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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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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