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통일 신라와 발해문화발해의 문화

함화4년명 불상 명문

함화(咸和) 4년(대이진 4년, 834년) 윤 5월 8일에 과거 허왕부(許王府)의 참군(參軍) 기도위(騎都尉)였던 조문휴(趙文休)의 어머니 이씨(李氏)가 삼가 아미타불(阿彌陀佛)과 관음(觀音)⋅대세지(大勢至) 등의 보살존상(菩薩尊像)을 조성하였으니, 불문(佛門)의 권속이 모두 6바라밀(六波羅蜜)을 실천하고, 불가(佛家)의 창생이 함께 8정(正)을 뛰어넘기를 바라노라. 이에 기리는 글을 짓는다.

크도다! 불법의 진리여, 지극하도다! 올바른 깨달음이여. 4생(生)의 장애를 뚫고 지났으며, 5탁(濁)의 세계를 배를 타고 건넜도다. 이는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 사라지지도 않고 생겨나지도 않는 것이니, 자비로운 구름이 영원히 드리우고, 지혜로운 태양이 항상 밝으리라.

함화4년명 불상

(前面)

咸和四年閏五月八

日前許王府參軍騎

都尉趙文休母李氏

敬造阿弥㢮佛及觀

音勢至等菩薩尊像

庶俱門眷屬咸濟六

波法界蒼生同超八

正乃爲頌曰大矣

眞如至哉正覺開鑿

四生舟航五濁不垢

不淨非滅非生慈雲

永蔭惠日常明

(左側面)

文殊師利菩薩

(右側面)

地藏菩薩

咸和 4年 銘佛像

이 사료는 발해 시대에 사암(砂岩)으로 제작된 높이 64㎝ 불상에 새겨진 명문이다. 이 명문을 통해 불상의 제작 연대와 발해가 황제국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발해의 관료 체계 일부 등을 알 수 있다.

불상의 앞면 아랫부분 명문 가운데 ‘함화(咸和)’라는 연호가 보인다. 함화는 발해 제11대 왕인 대이진(大彛震) 때인 831년부터 857년까지 27년간 사용된 연호이다. 따라서 함화 4년은 834년이 된다. 발해는 무왕(武王, 재위 719~737) 대에 인안(仁安)이란 연호를 사용한 이래 거의 전 기간에 걸쳐 독자적으로 연호를 사용하였다. 황제만 연호를 사용할 수 있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독자적인 연호 사용은 발해가 대외적으로 황제국을 표방하면서 자주성과 독립성을 추구하였음을 말해 준다. 이는 내부적으로 왕권의 절대성을 추구하였던 점과 연관되어 있다. 이와 함께 「정혜공주묘지(貞惠公主墓誌)」와 「정효공주묘지(貞孝公主墓誌)」에서도 발해 문왕(文王, 재위 737~793)을 ‘황상(皇上)’이라 호칭하고 있어 발해에서 황제 칭호가 사용되었음을 증명해 준다.

또한 명문에는 허왕부(許王府)의 참군(參軍) 기도위(騎都尉)였던 조문휴(趙文休)가 등장한다. 그런데 허왕부의 ‘허왕’은 황제에 의해 책봉된 제후왕(諸侯王)일 것이므로, 이 또한 발해가 제후왕을 거느리는 황제 체제였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준다.

그러므로 「함화4년명 불상」의 명문은 발해가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발해 황제 밑에 제후왕까지 두는 명실상부한 황제국이었음을 알려 주는 소중한 자료이다. 이 불상은 현재 일본 오하라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데, 출토지는 알 수 없으나 일본에 있는 것으로 보아 발해와 일본이 교류하던 시기에 발해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추정된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발해 불상조각의 유파와 양식 연구」,『강좌 미술사』14,문명대,한국미술사연구소,1999.
「발해불교의 전개과정과 몇 가지 특징」,『가산이지관스님화갑기념논총』상,송기호,논총간행위원회편,1992.
「발해의 불교자료에 대한 검토」,『최영희선생화갑기념한국사학논총』,송기호,탐구당,1987.
「함화 4년명 발해 비상 검토」,『서암조항래교수화갑기념한국사학논총』,송기호⋅전호태,아세아문화사,1992.
「발해의 불교와 불상」,『고구려발해연구』6,정영호,고구려발해학회,1999.
「발해(698~926)의 보살상 양식에 대한 고찰」,『강좌 미술사』14,최성은,한국미술사연구소,1999.
저서
『발해 불교와 그 유적 유물』, 방학봉, 신성출판사, 2006.
『발해의 불교유적과 유물』, 방학봉 저⋅박상일 역, 서경문화사, 1998.
편저
『역주 한국고대금석문』Ⅲ, 한국고대사회연구회 편,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1992.

관련 사이트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링크연결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