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고려 시대정치관리 등용 제도

장양수와 장계의 홍패

○ 장양수홍패(급제첩)

위 사람 장양수(張良守) 공원(貢院) (이하 해석 불가) 병과 급제가 가(可)하다고 교(敎)하셨다. 첩이 이르렀으므로 교에 준하여 첩한다. 태화 5년(1205, 희종 1) 을축 4월 일 첩

금자광록대부 참지정사 태자소부 왕

문하시랑평장사 보문각태학사 동수국사 주국 판호부사 임

문하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 이부상서 상주국 상장군 판병부어사대사 최

문하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 상주국 상장군 감수국사 판예부사 기

문하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 수문전태학사 감수국사 상주국 판이부사 최 (초압)

○ 장계(張桂) 홍패

왕명에 준하여 국학진사 권지도평의녹사 장계에게 동진사 급제를 내린다. 대덕 9년(1305, 충렬왕 31) 5월 일.

동지공거 정헌대부 밀직사지신사 국학대사성 문한사학 충사관수찬관 지내지 송 (초압)

지공거 광정대부 도첨의찬성사 연영전대사학 사제수사 정 (초압)

『한국상대고문서자료집성』(이기백, 일지사, 1987), 「장양수 홍패」(58~59쪽)와 「장계 홍패」(115쪽)

○ 張良守 紅牌(及第牒)

右人張良守

貢院所

判乙以點

敎可丙科

及第牒至准

敎故牒

泰和五年乙丑四月日牒

金紫光祿大夫參知政事太子少傅王

門下侍郞平章事寶文閣太學士同修國史柱國判戶部事任

門下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吏部尙書上柱國上將軍判兵部御史臺事崔

門下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上柱國上將軍監修國史判禮部事奇

門下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修文殿太學士監修國史上柱國判吏部事崔 (草押)

○ 張桂 紅牌

   准 國學進士權知都評議錄事 張桂

王命 賜 同進士及第者

                 大德九年五月 日

      同知貢擧正獻□□(大夫)密直司知申事國學大司成文翰司學□(充)史館修

        撰官知□(內)□(旨)宋 (草押)

     知貢擧匡□(靖)大夫都僉議贊□□(成事)延英殿大司學司提修□(史)鄭 (草押)

『韓國上代古文書資料集成』(이기백, 일지사, 1987), 「張良守 紅牌」(58~59쪽)와 「張桂 紅牌」(115쪽)

이 사료는 고려 시대 과거 급제자에게 내린 문서로 조선 시대 과거에 급제한 사람들에게 내린 홍패(紅牌), 백패(白牌)와 같은 성격의 급제첩이다.

첫 번째 문서는 1205년(희종 1년)에 진사시에 급제한 장양수에게 중서문하성이 발급한 급제첩이다. 1975년 10월 13일에 국보 제181호로 지정되었다. 크기는 가로 90㎝, 세로 45㎝인데, 황색 마지 두루마리에 쓰여 있다. 현재 보관처는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 가원동 월계서원(月溪書院) 안 경덕사(景德祠)이다. 한편 이 문서에는 1738년(영조 14년)에 기록한 주기(註記)가 있다.

장양수(張良守)는 봉익대부 추밀원부사, 전리판서 상호군으로 치사한 인물로 고려 개국공신 장정필(張貞弼, 888~?)의 12세손이다. 앞부분이 없어져 완전한 내용을 파악할 수 없으나, 고시에 관여했던 사람의 관직과 성이 기록되어 있다. 태자소부는 왕규(王珪, 1142~1228), 판호부사는 임유(任儒, 1149~1212), 판병부어사대사는 최충헌(崔忠獻, 1149~1219), 판예부사는 기홍수(奇洪壽, 1148~1209), 판이부사는 최선(崔詵, ?~ 1209)이다.

이 문서에 대해 종래에는 중국 송나라 제도에서 받아들인 홍패 형식으로 보았으며, 지금까지 전해지는 패지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고려 시대 과거 제도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왕명에 준하여 급제를 준다는 기록이 없고, 서명에도 고시관인 지공거동지공거가 없는 대신 재신(宰臣)이 있으며, 본문 양식도 완전히 다른 것으로 보아 『고려사(高麗史)』 선거지에 보이는 1205년 4월 판소부감사 이이(李頤)가 주관한 국자감시의 급제첩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 문서를 장양수 홍패, 혹은 장양수 급제첩으로 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일단은 고려 시대 과거 제도 이해와 관련 문서의 형식을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는 점에서 큰 가치가 있다.

두 번째는 1305년(충렬왕 31) 전리사(典理司)에서 예부시에 급제한 장계(張桂)에게 발급한 예부시 홍패이다. 이 문서는 경상북도 영주시 장수면 화지리 장덕필 씨가 소장하고 있으며, 보물 제501호로 지정되었다.

문서의 형식을 보면, 왕명에 준하여 패를 내린다는 ‘준왕명사’, 연호, 지공거동지공거 등 고시관 등 구성 형식이 완전하게 보인다는 점에서 고려 시대 홍패 양식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여기에 보이는 지공거는 송린(宋璘, ?~1307), 동지공거는 정해(鄭瑎, ?~?)이다. 장계 홍패는 원 간섭기인 1305년에 내려진 것으로, 가장 오래된 고려 시대 예부시 홍패 양식이라 할 수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고려시대의 홍패에 관한 일고찰」,『벽사이우성교수정년퇴직기념논총-민족사의 전개와 그 문화(상)-』,박용운,창작과비평사,1990.
「안동지방에 전래된 고려 고문서 7열(七列) 검토」,『경북대학교 논문집』33,한상준⋅장동익,경북대학교,1982.
저서
『고려시대 음서제와 과거제 연구』, 박용운, 일지사, 1990.
『한국상대고문서자료집성』, 이기백, 일지사, 1987.
『한국의 고문서』, 허흥식, 민음사, 1988.
『고려과거제도사연구』, 허흥식, 일조각, 1981.
편저
『한국고대중세고문서연구(상)』, 노명호⋅박재우 등,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0.

관련 이미지

장양수 홍패

관련 사이트

문화재청
링크연결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