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충주부사 우종주(于宗柱)가 문서를 처리하는 데 매번 판관(判官) 유홍익(庾洪翼)과 의견이 충돌하곤 하였다. 몽골군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성을 수비하는 문제를 논의할 때도 의견이 달랐다. 그래서 우종주는 양반 별초를 이끌고 유홍익은 노군(奴軍)과 잡류(雜類)로 편성된 별초를 통솔하면서 서로 시기하였다.
몽골군들이 침공하자 우종주⋅유홍익과 양반 별초들은 모두 성을 버리고 도망쳤으나 오직 노군과 잡류 별초들은 합력하여 적을 격퇴하였다. 몽골군이 물러간 뒤에 우종주 등이 돌아와 관아와 사저에서 사용하던 은그릇을 검사하였다. 노군들은 은그릇이 부족한 것은 몽골군이 가져간 것이라고 말하였으나 호장(戶長)
광립(光立) 등은 비밀리에 노군의 두목을 암살하고자 하였다.
'호장(戶長)' 관련자료
노군들이 이를 알고 말하기를, “몽골군이 오면 모두 도망쳐 숨고 성을 지키지 않던 자들이 이제 와서 그들이 약탈하여 간 것을 도리어 우리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죽이려 하는가? 이렇게 될 바에야 어찌 먼저 손을 쓰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그리고 장례를 지내는 데 참여한다고 속이고 나각(螺角)
소라의 껍데기로 만든 옛 군악기
을 불어 무리들을 소집하였다. 먼저 주모자의 집으로 몰려가서 집에 불을 질러 태워 버리고 권세가 가운데 평소에 불만이 있었던 사람들을 남김없이 잡아 죽였다. 한편으로 고을 안에 명령하기를 “만일 이들을 숨기는 자가 있으면 그 가족도 모두 죽이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혹 숨겨 둔 흔적이 발각되면 부인과 어린아이까지 모두 죽였다. 왕이 이자성(李子晟, ?~1251) 등에게 3군을 이끌고 가서 (노군들을) 토벌토록 했다. 3군이 달천(達川)
충북 보은군 속리산에서 발원하여 괴산군을 거쳐 충주시로 흘러드는 하천
에 이르렀으나 물이 깊어 건너지 못하였다. 그래서 다리를 만들려 하는데 노군 괴수 몇 사람이 개울 건너편에서 말하기를 “우리가 주모자를 죽이고 항복하려 한다”고 하였다. 이자성이 대답하기를 “그렇게 한다면 너희를 다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적의 괴수들이 성 안으로 돌아가서 주모자인 승려 우본(牛本)의 머리를 베어 왔다. 관군이 이틀간 (달천 건너편에서) 머물렀는데 노군 중에서 건장하고 용맹한 자들은 모두 도망쳐 숨었다. 이후 관군이 성 안으로 들어와 그 잔당을 모조리 잡아 죽이고 노획한 재물과 우마(牛馬) 등을 가져다 바쳤다.『고려사』권103, 「열전」16 [제신] 이자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