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고려 시대정치원의 간섭

고려 왕실의 격하

경술일에 원나라에서 악탈연(岳脫衍), 강수형(康守衡)을 파견하였는데 왕(王, 충렬왕)이 선의문 밖에 나가서 맞이하였다.

조서에 이르기를 “고려에서는 여러 왕씨들이 동성 간에 결혼하는데 이것은 무슨 도리인가? 이미 우리와 더불어 한 집안이 되었으니 우리와 서로 통혼해야 한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어찌 일가로 된 의리라고 하겠는가? 그리고 또 우리 태조 황제가 13개국을 정복할 때 그 나라 왕들이 앞을 다투어 아름다운 여인들과 좋은 말과 희귀한 보배들을 바치었다는 것은 당신도 들은 바 있을 것이다. 왕이 아직 왕으로 되기 전에는 태자라고 하지 않고 세자라고 부르며 국왕의 명령을 그 전에는 성지(聖旨)라고 했던 것을 이제 와서는 선지(宣旨)라고 하니, 관직 칭호로서 우리 조정과 같은 것도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고쳐야 한다.

또 듣건대 왕과 공주가 하루에 쌀 두 되[升]만 먹는다고 하니 이는 재상이 많고 또 그들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릇 이러한 것들을 이야기하는 것은 다 그대에게 알려주기 위한 것이지 구태여 자녀들을 바치라거나 관직명을 고치라거나 재상의 수를 줄이라는 것은 아니다. 흑적(黑的)이 와서 그대 나라가 고쳐야 할 것을 말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짐이 모두 다 허락하지 않았으니 그대는 이를 잘 알도록 하여라” 하였다.

『고려사』권28, 「세가」28 충렬왕 원년 동10월 경술

庚戌, 元遣岳脫衍⋅康守衡來, 王出迎于宣義門外.

詔曰, 爾國諸王氏, 娶同姓, 此何理也. 旣與我爲一家, 自宜與之通婚. 不然, 豈爲一家之義哉. 且我太祖皇帝征十三國, 其王爭獻美女⋅良馬⋅珍寶, 爾所聞也. 王之未爲王也, 不稱太子而稱世子, 國王之命, 舊稱聖旨, 今稱宣旨, 官號之同於朝廷者, 亦其比也.

又聞王與公主, 日食米二升, 此則宰相多而自專故耳. 凡此皆欲令爾知之, 非苟使爾貢子女, 革官名, 减宰相也. 黑的來言, 爾國事非一, 並不聽許, 爾其知之.

『高麗史』卷28, 「世家」28 忠烈王 元年 冬10月 庚戌

이 사료는 고려가 몽골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왕실이 격하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몽골은 고려에 부마국이 될 것을 강요하면서 고려의 관제를 부마국에 맞게 고치도록 강요하였다. 또한 몽골에서 파견한 다루가치의 정치적 간섭과 고려에 주둔한 몽골군 지휘관들의 내정 간섭으로 고려는 몽골의 제후국으로 지위가 격하되고 말았다.

고려 국왕은 조(祖)나 종(宗) 같은 묘호(廟號) 대신 원의 제왕(諸王)이나 재상들이 죽은 후 부여받는 충(忠)이라는 글자를 포함한 묘호를 원으로부터 받았다. 또 자주국 국왕으로서의 위상을 상실해 의식⋅의복⋅용어 등이 모두 제후국의 것으로 격하되었다. 왕실의 호칭 또한 한 단계씩 격이 낮아졌다. 선지(宣旨)는 왕지(王旨)로, 짐(朕)은 고(孤)로, 사(赦)는 유(宥)로, 폐하(陛下)는 전하(殿下)로, 태자(太子)는 세자(世子)로 각각 격을 낮추어 부르게 하였다. 또 의식에서 왕의 행차 때 만세 등을 부를 수 없게 되었고, 황포(黃布) 착용이 금지되었다.

정치 제도도 지위가 격하되어 3성 6부 및 중추원을 중심으로 했던 정치체제는 붕괴되고 6부 조직의 기능이 약화되었다. 중서문하성과 상서성은 합쳐져 첨의부로, 중추원밀직사로, 어사대감찰사로 고치고, 6부는 이부와 예부는 통합하여 전리사(典理司)라 하고, 병부는 군부사(軍簿司), 호부는 판도사(版圖司), 형부는 전법사(典法司)로 고쳤으며, 공부는 폐지하는 등 4사로 통폐합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조치는 그 기능이나 역할에 근본적인 변화를 준 것이라기보다는 단지 원과 대비해 하위로 격하시킴과 동시에 고려에 대한 내정 간섭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기구 간소화를 꾀한 것이었다. 더욱이 정동행성이 설치되면서 고려 왕조는 외견상이긴 하지만 원의 지방 행정구역 중 하나로 변하고 말았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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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원관계의 구조에 대한 연구-소위 "세조구제"의 분석을 중심으로-」,『한국사론』36,이익주,서울대학교 국사학과,1996.
「고려 충렬왕대의 정치상황과 정치세력의 성격」,『한국사론』18,이익주,서울대학교 국사학과,1988.
「고려후기 전주권의 행방」,『대구사학』15⋅16합,장동익,대구사학회,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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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여몽외교사』, 노철현, 갑인출판사, 1993.
『고려후기외교사연구』, 장동익, 일조각, 1994.
편저
『14세기 고려의 정치와 사회』, 14세기 고려사회성격연구반 편, 한국역사연구회, 1994.
「원과의 관계 변천」, 고병익, 국사편찬위원회, 1973.
「고려후기의 권문세족」, 민현구, 국사편찬위원회, 1974.

관련 사이트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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