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32) 5월에 최이(崔怡,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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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
가 종실의 사공(司空) 이상과 재추들을 위해 자신의 집에서 연회를 베풀었다. 이때 산처럼 높게 채붕(綵棚)
갖가지 채색으로 아름답게 꾸민 무대
을 세워 비단 휘장을 두르고 가운데는 그네를 매어 문수채화(文繡綵花)
그리거나 수놓아 만든 조화
로 장식하고, 8면(八面)을 은단추와 자개로 장식한 4개의 큰 동이에 각각 얼음을 산더미처럼 담고, 또 4개의 큰 물통에 붉은 작약과 자줏빛 작약 10여 종을 가득히 꽂았는데, 얼음과 꽃이 서로 비춰 겉과 속에서 찬란한 빛을 발하였다. 그리고 기악과 온갖 잡희를 베풀고, 팔방상(八坊廂)
고려 시대 음악을 담당하던 관청의 하나
의 공인(工人) 1350여 명이 모두 호화롭게 단장하고 뜰에 들어와 풍악을 연주하니, 거문고와 노래와 북과 피리 소리들이 천지를 진동하였다. 팔방상에게는 각각 백은(白銀) 3근씩을 주고, 영관(伶官)
고려 시대 음악을 담당하던 악관을 달리 일컫는 말
과 양부(兩部)
음악 연주에서 좌부(左部)와 입부(立部)
의 기녀(伎女)와 광대에게도 각각 금과 비단을 주니, 그 비용이 엄청났다. 사신(史臣)이 말하기를, “팔방상(八坊廂)이란 것은 나라가 태평하였을 때나 있을 법한 성대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몽골군이 침략하여 해도(海島)
강화도
로 숨어 들어가 사직을 겨우 보전하고 있는 상태로, 진실로 군신이 걱정을 같이하여 마치 연못 위의 엷은 얼음을 밟고 지나가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최이가 나라의 권력을 도둑질하여 망녕스럽게 사치하고 과장하며 조금도 두렵게 생각하거나 거리낌이 없었으니, 그 죄가 진실로 죽어도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고려사절요』권16, 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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