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방은 비록 해외에 떨어져 있어도 대대로 중화(中華)를 흠모하여 문학에 종사하는 유자(儒者)들이 앞뒤로 줄을 이었다. 그 중 고구려에서는 을지문덕(乙支文德), 신라에서는 최치원(崔致遠), 그리고 본국(本國)인 고려에서는 시중(侍中) 김부식(金富軾)
과 학사(學士) 이규보(李奎報)
가 특히 뛰어났다. 그러다가 근세에 이르러서는 계림(雞林)
과 같은 뛰어난 유학자가 나와서 처음으로 고문(古文)의 학설을 제창하였는데, 한산(韓山)의 가정(稼亭) 이곡(李穀)과 경산(京山)의 초은(樵隱) 이인복(李仁復)이 이에 따르며 화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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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의 옛 지명
의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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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는 목은(牧隱) 이색(李穡)
선생이 일찍이 가정의 교훈을 이어받고 북으로 가서 중국 중원에서 유학하여 바른 사우(師友)의 연원(淵源)을 얻고서는 성명(性命)과 도덕의 설을 깊게 연구하였다. 그리고 동방, 즉 고려로 돌아와서는 여러 학생을 교육하였다. 이 선생의 가르침을 접하고서 크게 실력을 꽃피운 사람으로는 오천(烏川)의 정공 달가(鄭公達可)[정몽주(鄭夢周)]
와 경산의 이공 자안(李公子安)[이숭인(李崇仁)], 진양(晉陽)의 하공 대림(河公大臨)[하륜(河崙)], 반양(潘陽)의 박공 성부(朴公誠夫)[박상충(朴尙衷)], 영가(永嘉)의 김공 경지(金公敬之)[김구용(金九容)], 밀양(密陽)의 박공 자허(朴公子虛)[박의중(朴宜中)], 영가의 권공 가원(權公可遠)[권근(權近)], 무송(茂松)의 윤공 소종(尹公紹宗)[윤소종(尹紹宗)] 등이 있다. 또 나 정도전(鄭道傳)
처럼 불초한 자도 몇 분 군자의 대열에 끼이는 영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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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집』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