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고려 시대사회혼인과 여성의 지위

고려 시대의 호적

원통(元統) 원년 계유년【순제 원년이자 고려 충숙왕 2년】남부 덕산리 호주 낙랑군부인(樂浪郡夫人) 최씨(崔氏)는 나이 60세로 갑술년 생이다.【인본에는 갑술이 없다.】본관【등본에는 적(籍)으로 썼다.】경주이다.

아버지는 증광정(贈匡正)【등본에는 정(靖)으로 쓰였다.】대부 첨의평리 판민부사 상호군 행전중내급사 선(墠)인데, 옛 이름은 심(諶)이었다. 할아버지는 검교군기감 인지(仁祉)인데, 옛 이름은 석류(奭柳)였다. 증조할아버지는 검교【인본에는 검교가 없다.】태자태부 백유(白楡)인데, 옛 이름은 열(說)【등본에는 열(悅)로 되어 있다.】이었다. 외할아버지는 조의대부 국자 좨주 보문각 직학사 오극정(吳克正)【등본에는 옛 이름이 자유(子由)였다.】이며, 본관은 해주이다.

남편은 검교 군기감 이겸(李謙)인데, 옛 본관은 황려(黃麗)이다. 아버지는 호부 주사(戶部主事)【등본에는 상의직장으로 되어 있다.】수해(秀海)이다. ……(중략)……

첫째 아들은 사온령동정(司醞令同正)【인본에는 동정(同正)이 없다.】윤배(允培)이며, 나이는 32세이다. 둘째 아들은 사온령동정【인본에는 동정이 없다.】윤성(允成)으로, 나이 28세이다. 셋째 아들은 사온령동정【인본에서는 동정이 없다.】윤방(允芳)으로, 나이 24세이다. 넷째 아들은 혜근(惠根)으로, 나이 19세이다【인본에는 현주(懸註)로 천태종 대선사 굉인(宏印)에게 출가하였다.】.

『여주 이씨 세보』, 여주 이씨 준호구

○元統元年癸酉【順帝元年, 麗忠肅王後二年】, 南部德山里戶, 樂浪郡夫人崔氏, 年六十甲戌生【印本無甲戌】. 本【謄本作籍】慶州. 父, 贈匡正【謄本作靖】大夫僉議評理判民部事, 上護軍行殿中內給事墠, 古名諶. 祖, 檢校軍器監仁祉, 古名奭卿. 曾祖, 檢校【印本無檢校】太子太傅白楡, 古名說【謄本作悅】. 外祖, 朝議大夫國子祭酒寶文閣直學士吳克正【謄本古名子由】, 本海州. 夫, 檢校軍器監李謙, 故本黃驪. 父, 戶部主事【謄本尙衣直長】秀海. ……(中略)…… 一男, 司醞令同正【印本無同正】允培, 年三十二. 二男, 司醞令同正【印本無同正】允成, 年二十八. 三男, 司醞令同正【印本無同正】允芳, 年二十四. 四男惠根, 年十九【印本懸註, 出家天台宗大禪師宏印.】.

『麗州李氏世譜』, 麗州李氏准戶口

이 사료는 고려 시대 여성의 지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준호구(准戶口) 문서로, 여성인 낙랑군부인 최씨가 호주로 기재되어 있다. 이 문서는 『여주 이씨 세보(麗州李氏世譜)』에 실려 있다. 준호구란 호적 대장 원본에 따라 관청에서 발급한 문서로, 오늘날의 호적 등본이나 주민 등록 등본의 성격을 가졌다.

고려 시대 호적 관련 정보는 『고려사』 식화지 호구조에 정리되어 있다. 호적은 양반과 일반 백성으로 나눠져 있었다. 일반 백성의 경우 매년 주군(州郡)에서 호구를 헤아려 호적을 정리한 후 호부에 보고하면, 호부에서는 호적에 따라 징병과 조역(調役)을 분담시켰다. 징병과 조역을 감당하는 연령대는 16세 이상 60세 미만으로 전정(田丁)으로 분류되었다. 20세 이상이 되면 군정(軍丁)으로 군무에도 임해야 했다. 면역이 되는 연령은 60세였다. 따라서 일반 백성의 호적은 징세, 징병, 부역을 부과하는 기초 문서였다고 할 수 있다.

이와 달리 양반의 호적은 3년마다 조사 개편되었다. 이 때 1건은 관에 바치고 1건은 호주가 보관하도록 하였다. 조사 기록하는 항목은 다음과 같았다. 호주의 세계(世系)를 밝히고 같이 사는 자식, 형제, 조카 등을 기록하였다. 노비에 대해서도 전래되어 온 계통, 소생 노비 이름과 나이, 노비의 처 혹은 남편의 신분 등을 기록하였다.

호주를 중심으로 한 세계와 관련해서는 조상을 어느 범주까지 기재하는가에 따라 사조 호구(四祖戶口)와 팔조 호구(八祖戶口)로 나뉘었다. 범주가 넓은 팔조 호구의 경우를 보면 다음과 같았다. ① 호주 및 그의 4조와 어머니, ② 호주의 처 및 그의 사조와 어머니, ③ 호주의 아들과 그 처, 딸과 그 남편, ④ 조부모의 사조와 어머니, ⑤ 증조부모의 사조와 어머니, ⑥ 외조부모의 사조와 어머니, ⑦ 처부모의 사조와 어머니, ⑧ 친형제와 그의 처 및 친자매와 그의 남편, ⑨ 이부(모) 형제와 그의 처 및 이부(모) 자매와 그의 남편 등이 이에 해당하였다. 사조 호구의 경우는 ① 호주 및 그의 4조와 어머니, ② 호주의 처 및 그의 사조와 어머니, ③ 호주의 아들과 그 처, 딸과 그 남편, ④ 친형제와 그의 처 및 친자매와 그의 남편, ⑤ 이부(모) 형제와 그의 처 및 이부(모) 자매와 그의 남편 등이 범주에 속하였다.

『여주 이씨 세보』에 실린 낙랑군부인 최씨 준호구는 이 같은 기준으로 볼 때 사조 호구에 속한다. 호주인 낙랑군부인, 호주의 아버지⋅할아버지⋅증조할아버지⋅외할아버지가 순서대로 기재되어 있고, 다음은 남편 이겸(李謙)과 그의 아버지⋅할아버지⋅증조할아버지⋅외할아버지가 기록되어 있다. 마지막으로는 아들 4형제를 기록하였다.

이 사료에서 특이한 점은 앞서도 언급했듯이 낙랑군부인 최씨가 호주로 등재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호적에서 여성이 호주로 기재되어 있다는 것은 여성도 호주의 자격이 있음을 뜻하였다. 남편인 이겸이 사망하였기 때문에 낙랑군부인이 호주가 되었지만, 그에게는 장성한 32세의 아들이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이 호주가 되었다는 것은 여성 호주를 중심으로 한 가족⋅친족 관계가 사회적으로도 인정받고 있었음을 뜻한다.

이는 고려 시대 여성에 대한 인식과 이를 바탕으로 하는 혼인 풍속이나 재산 상속, 그리고 재산 경영의 참여 등과도 관련이 깊었다. 이러한 면은 다양한 기록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고려 시대의 호적 관련 문서는 출생 순서에 따라 자녀를 기재하였다. 조선 시대 중기 이후 호적 관련 문서들이 출생 순서와 상관 없이 남성을 먼저 기재하고 여성을 기재한 것과 차이가 있다. 고려 시대 여성의 경우 호적에는 아니더라도 묘지명 등에는 이름을 쓰기도 하였다. 인종(仁宗, 1109~1146, 재위 1122~1146) 대 활약한 최누백(崔婁伯)의 처 염경애(廉慶愛)와 그 두 딸인 최귀강(崔貴姜)과 최순강(崔順姜)이 이에 해당하였다. 이 또한 조선 중기 이후 호적이 여성을 ‘누구의 처’로만 기재한 것과 다른 부분이다. 부모나 조상의 제사도 장손이 제사를 모시는 조선 시대와 달리 절에서 모시면서 제사 비용을 부인과 함께 혹은 자녀들이 돌아가며 부담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이 외에도 여성은 혼인 후 친정에서 살다가 자녀들이 성장한 후에야 시집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

이 같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극명하게 드러난 것은 음서제(蔭敍制)였다. 음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이 아들과 손자를 비롯하여 사위와 외손자까지로 되어 있었다. 음서를 받는 경우에는 처음에는 실무와 관계가 없는 동정직(同正職)을 받았다가 후에 실직으로 진출하였다. 위의 사료에서 보듯이 18세 이상인 첫째나 둘째, 셋째가 모두 동정직인 사온령동정으로 임용된 것은 이 세 아들이 음서의 혜택을 받은 결과였다.

낙랑군부인 최씨의 준호구는 고려 시대 친족 및 가족 제도의 구성 형식과 내용을 잘 보여 준다. 아울러 여성 호주로 상징되는 여성의 사회적⋅경제적 지위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혼인의 다원성과 국제성」,『혼인과 연애의 풍속도』,권순형,두산동아,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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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팔조호구식의 성립 시기와 성립 원인」,『한국중세사연구』25,이종서,한국중세사학회,2008.
「호구단자⋅준호구에 대하여」,『규장각』7,최승희,서울대학교 도서관,1983.
저서
『고려의 혼인제와 여성의 삶』, 권순형, 혜안, 2006.
『고려 금석문 연구 -돌에 새겨진 사회사』, 김용선, 일조각, 2004.
편저
『한국 고대중세 고문서연구 상』, 노명호 외 지음,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0.
『한국 고대중세 고문서연구 하』, 노명호 외 지음,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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