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축(丁丑)에 탐라 안무사(耽羅安撫使) 조동희(趙冬曦)가 조정에 들어왔다. 탐라는 멀고 험한 곳이어서 공전(攻戰)
공격하여 싸움
이 미치지 못하는 바이지만 토지가 기름져서 경비가 나오는 곳이었다. 이보다 앞서서는 나라에 바치던 공물이나 세금이 번거롭지 않고 백성들이 생업을 즐길 수 있었다. 최근 들어 관리들이 불법을 저지르므로 도적의 우두머리 양수(良守) 등이 모반을 하여 수령을 축출하였다. 왕이 조동희에게 명하여 부절(符節)을 가지고 가서 왕의 뜻을 전하도록 하였더니, 적들이 스스로 항복하였다. 양수 등 2인과 그 무리 5인을 베고, 나머지는 모두 곡식과 비단을 주어 위로하였다.『고려사』권18, 「세가」18 의종
'의종' 관련자료
탐라(耽羅)의 이러한 노래는 아주 비루하지만, 백성의 풍속이 담겨 있어 세태의 변화를 알 수 있다.
거꾸러진 보리 이삭 그대로 두고
가지 생긴 삼도 내버려 두었네.
청자와 백미를 가득 싣고서
북풍에 오는 배만 기다리고 있구나.
탐라는 지역이 좁고 백성들은 가난하였다. 과거에는 전라도에서 자기(瓷器)와 쌀을 팔러 오는 장사꾼이 때때로 왔으나 숫자가 적었다. 지금은 관가와 사가(私家)의 소와 말만 들에 가득하고 개간은 없는 데다가 오가는 관개(冠蓋)
벼슬아치를 뜻함
가 북[梭]같이 드나들어서 전송과 영접에 시달리게 되었으니, 그 백성의 불행이었다. 그래서 여러 번 변(變)이 생긴 것이다.『익재난고』권4, 「시」 작견곽충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