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보(李奎報, 1168~1241)
는 자가 춘경(春卿)
이며 처음 이름이 이인저(李仁氐)
로 황려현(黃驪縣)
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민첩하여 9세에 벌써 글을 잘 지었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신동이라 불렀다. 성장하면서 경전⋅사서⋅백가(百家)⋅불경⋅노자 등의 책을 한 번 읽으면 모두 기억하였다.감시(監試)
20년(1190) 진사시(進士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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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경기도 여주군
사람이다. 아버지 이윤수(李允綏, 1130~1191)는 호부낭중(戶部郞中)
상서 6부 중 호부에 소속된 정5품 관직
을 지냈다. 이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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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국자감
에서 진사를 뽑던 진사시로 과거의 예비시험
에 응시했을 때 꿈에 규성(奎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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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호 7수 가운데 첫째 별자리로, 서쪽에 있으면서 문운을 맡은 별
이 나타나 장원으로 급제할 것임을 알려 주었는데, 과연 그 꿈이 들어맞았으므로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 명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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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과거의 본시험
에 급제하였으나, 말석으로 급제한 것이 싫어 사퇴하려 했지만, 아버지가 절실히 꾸짖는 데다가 그런 전례가 없어 사퇴하지 못했다. 이 일로 술을 마시고 취해 축하하러 온 손님들에게, “과거에는 말석으로 급제했지만 앞으로 서너 차례 과거를 주관해 문생을 만들어 낼 사람인 줄 누가 알겠는가?” 하니, 좌중의 손님이 입을 가리고 몰래 웃었다. 당시 이인로(李仁老, 1152~1220)
, 오세재(吳世才, ?~?), 임춘(林椿, ?~?), 조통(趙通,1143~?), 황보항(皇甫抗, ?~?), 함순(咸淳, ?~1204), 이담지(李湛之, ?~?) 등이 당대의 빼어난 준재로 자인하면서 서로 벗을 맺어 하여 칠현(七賢)1)
이라 자칭하면서, 매양 모여서 술을 마시고 시를 지을 때 자기들 외에는 재사가 없는 듯이 놀았다. 오세재가 죽은 후 이담지가 이규보
에게 “자네가 빈자리를 보충하겠는가?”라고 물었더니 이규보
가 “칠현이 무슨 조정의 벼슬자리라고 그 빈자리를 보충한단 말입니까? 옛날 중국의 칠현인 해강(稽康, 223~262)과 완적(阮籍, 210~283)이 죽은 뒤 후임을 보충하였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해, 듣는 사람이 모두 다 크게 웃었다. 또 시를 지으라 하니, 이규보
가 즉석에서 시 한 구를 읊조리기를 “알지 못하겠노라. 칠현 중에 누가 송곳으로 오얏씨를 뚫을 사람인지?2)
”라고 하니, 좌중이 모두 다 노한 기색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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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국 서진의 죽림칠현인 계강⋅완적⋅완함⋅산도⋅향수⋅유령⋅왕융 등 7명이 교유했던 것을 모방한 모임으로 죽고칠현, 죽림고회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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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옛 중국의 죽림칠현 중 성격이 탐욕스럽고 인색했던 왕융(王戎, 234~305)에 대한 고사이다. 왕융은 자신의 집에 좋은 자두가 있었는데, 그것을 팔면 다른 사람이 그 씨앗을 얻을까 봐 씨앗에 구멍을 뚫었다고 전한다.
『고려사』권102, 「열전」15 [제신] 이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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