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고려 시대문화불교 사상과 신앙

연등회와 팔관회

현종 원년(1010) 윤2월 연등회(燃燈會)를 다시 열었다. 나라 풍속에 왕궁과 도성부터 향(鄕)⋅읍(邑)에 이르기까지 정월 보름에는 이틀 밤에 걸쳐 연등하였다. 성종이 이를 번잡하고 소란하며 온당치 못하다 하여 폐지하였던 것을 이때 다시 열었던 것이다. 2년(1011년) 2월 청주 행궁에서 연등회를 다시 열었다. 그 이후에는 2월 보름에 연등하는 것이 관례로 되었다.

문종 2년(1058) 2월 갑신일에 연등하였는데 보름날인 계미일이 한식(寒食)이었으므로 이날에 연등하였다.

공민왕 23년(1374) 정월 임오일에 연등하였다. 처음 태조는 정월에 연등하였고 현종은 2월에 연등하였는데 이번에 해당 기관에서 공주의 기일(忌日)에 해당한다 하여 다시 정월로 고칠 것을 청하였던 것이다.

『고려사』권69 「지」23 [예11] 상원연등회

태조 원년(918년) 11월에 담당 관청에서 “전 임금은 매번 중동(仲冬)팔관회(八關會)를 크게 열어 복을 빌었으니 그 제도를 따르기를 바랍니다.”라고 하니 왕이 그 말을 따랐다. 그리하여 구정(毬庭) 한 곳에 윤등(輪燈)을 설치하고 향등(香燈)을 그 사방에 달았으며, 또 2개의 채붕(綵棚)을 각 5장 정도의 높이로 설치해 각종 유희와 노래와 춤을 그 앞에서 벌였다. 그 중 사선악부(四仙樂部)와 용⋅봉⋅코끼리⋅말⋅차⋅배 등은 다 신라에서 행하던 것들이다. 백관들은 예복을 입고 홀을 가지고 예식을 거행했으며 구경하는 사람들이 도성을 메웠다. 왕은 의봉루(儀鳳樓) 위에 앉아 이것을 관람하였으며 이것을 매년의 관례로 하였다.

성종 6년(987년) 10월에 담당 기관에 명해 개경서경팔관회를 정지시켰다.

현종 원년(1010년) 11월에 팔관회를 다시 열었다.

덕종 3년(정종 즉위년, 1034년) 10월에 가까운 신하를 보내 서경에서 팔관회를 베풀고 2일간 연회를 하게 하였다. 서경에서는 10월에 팔관회를 개최하는 것이 관례였다. 개경에서는 11월에 팔관회를 열어 왕이 신봉루(神鳳樓)에 행차하여 백관들에게 큰 연회를 베풀고 이튿날 대회에도 큰 연회를 베풀고 풍악을 관람하였다. 동경서경, 동계와 북계병마사, 4도호 8목에서 각각 표를 올려 축하하였고, 송나라 상인들과 여진, 거란, 일본, 탐라국에서도 방물을 헌납했는데, 그들에게 자리를 주어 풍악을 관람하게 하고 이후부터는 이것을 관례로 삼았다.

문종 5년(1051년) 11월 경신일에 팔관회를 시작하였는데 15일에는 월식이 있어 13일을 초회(初會)로 하였다.

충렬왕 원년(1275년) 11월 경신일에 궁궐에 행차하여 팔관회를 시작하였는데 금오산(金鼇山) 편액에 쓰인 ‘성수 만년(聖壽萬年)’이라는 네 글자를 ‘경력 천추(慶曆千秋)’로 고쳤다. 그리고 한 사람에게 기쁜 일이 생기면 8방의 표문이 조정에 이르고 천하가 태평하다는 등의 문자도 다 고쳤다. ‘만세’라 부르던 것을 ‘천세’로 부르게 하고, 행차 길에 황토를 펴는 것을 금지하였다.

공민왕 6년(1357년) 11월 갑인일에 팔관 대회(大會)가 있었다. 대체로 팔관 대회는 11월 15일에 하여 왔는데 금번 14일을 대회로 한 것은 사천대(司天臺)에서 자묘일(子卯日)은 좋지 않다고 말한 때문이었다. 7년(1358년) 11월 기유일에 팔관 소회(小會)를, 경술일에 대회를 시작하였는데 이는 3일이 동짓날인 까닭이었다.

『고려사』권69 「지」23 [예11] 중동팔관회

〇 顯宗元年閏二月, 復燃燈會. 國俗自王宮國都以及鄕邑以正月, 望燃燈二夜. 成宗以煩擾不經罷之, 至是復之. 二年二月, 設燃燈會, 于淸州行宮. 是後例以二月, 望行之.

〇 文宗二年二月甲申, 燃燈以望日. 癸未, 寒食至是日行之.

〇 恭愍王二十三年正月壬午, 燃燈. 初太祖以正月燃燈, 顯宗以二月, 爲之至是有司以公主忌日, 請復用正月.

『高麗史』卷69 「志」23 [禮11] 上元燃燈會儀

〇 太祖元年十一月, 有司言, 前主每歲仲冬, 大設八關會, 以祈福, 乞遵其制, 王從之. 遂於毬庭, 置輪燈一座, 列香燈於四旁, 又結二綵棚, 各高五丈餘, 呈百戱歌舞於前. 其四仙樂部, 龍鳳象馬車船, 皆新羅故事. 百官袍笏行禮, 觀者傾都. 王御威鳳樓觀之, 歲以爲常.

〇 成宗六年十月, 命有司停兩京八關會.

〇 顯宗元年十一月, 復八關會.

〇 德宗三年十月, 遣輔臣賜西京八關會酺二日. 西京例以孟冬設此會. 十一月, 設八關會, 御神鳳樓, 賜百官酺, 翌日大會, 又賜酺觀樂. 東西二京, 東北兩路兵馬使, 四都護八牧, 各上表陳賀, 宋商客⋅東西蕃⋅耽羅國, 亦獻方物, 賜坐觀樂, 後以爲常.

〇 文宗五年十一月庚申, 設八關會, 月食在望, 以十三日爲初會.

〇 忠烈王元年十一月庚辰, 幸本闕, 設八關會, 改金鼇山額, 聖壽萬年四字, 爲慶曆千秋. 其一人有慶, 八表來庭, 天下太平等字, 皆改之呼. 萬歲爲呼千歲, 輦路禁鋪黃土.

〇 恭愍王六年十一月甲寅, 八關大會, 凡八關大會, 以十一月十五日, 爲之, 今以十四日, 爲大會者, 以司天臺言, 子卯不樂故也. 七年十一月己酉, 八關小會. 庚戌, 大會, 以十三日, 冬至故也.

『高麗史』卷69 「志」23 [禮11] 仲冬八關會儀

이 사료는 고려의 대표적 불교 행사이자 축제인 연등회팔관회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고려 시대는 왕실에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모든 계층에서 불교를 믿었기 때문에 다양한 불교 행사가 많이 열렸다. 그 중 연등회팔관회태조(太祖,재위 918~943)가「훈요십조(訓要十條)」를 통해 후대 왕들에게 계속 잘 시행할 것을 당부할 만큼 고려 시대 내내 중요하게 개최되었다. 또한 여기에는 고려 불교의 특징인 호국적⋅현세 구복적 성격과 더불어 토속 신앙의 요소들이 반영되어 나타나고 있다.

우선 연등회를 보면, 태조는「훈요십조」에서 연등회를 ‘부처를 섬기는’ 행사라고 하였다. 원래 연등은 등불을 밝힘으로써 번뇌와 무지로 가득 찬 어두운 세계를 밝혀 주는 부처의 공덕을 기리는 고대 인도의 불교 의식이었으나, 중국에 전래되는 과정에서 연중행사로 정착했는데, 이 과정에서 신에 대한 제사를 지내는 등 성격에도 변화가 생겼다.

사료에서 “나라 풍속에 왕궁과 수도로부터 향⋅읍에 이르기까지 정월 보름에는 이틀 밤 동안 연등하였다.”라고 한 점으로 미루어, 연등회는 삼국 시대에 전래되어 고려 전기 연중행사로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연등회 날짜는 처음에는 상원일(上元日)인 1월 15일이었으나 거란의 침입으로 현종(顯宗, 재위 1010~1031)이 피난길에서 돌아오는 도중 청주의 별궁에서 2월 15일에 개설한 이후로 이 날짜로 바뀌었고, 이후 상황에 따라 1월 15일이나 2월 15일에 열리는 등 날짜가 일정하지는 않았다.

고려의 연등회는 기본적으로 불교 행사였지만 태조 왕건을 기리는 정치적 행사이기도 하였다. 1038년(정종 4년) 연등회 때 왕이 태조의 원당(願堂)인 봉은사(奉恩寺)에 가서 예불하고 태조의 사당에 참배한 이후 이것이 관례화되어 연등회의 주요 절차로 자리 잡게 되었다. 또한 연등회는 왕과 신하, 백성이 함께 즐기는 고려의 대표적 축제였다. 낮 시간에는 각종 의식이 엄숙하게 진행되는 가운데 온갖 놀이와 춤, 공연이 거행되어 축제 분위기를 달구었고, 의식이 끝난 밤에는 대궐에 등불을 밝히고 잔치를 베풀어 음악과 술, 가무가 벌어지는 가운데 군신이 국가와 왕실의 태평을 빌며 함께 즐겼다. 궁궐과 개경 시내 곳곳에는 붉은 연꽃을 뿌린 것처럼 연등이 붉게 밝혀 구경 나온 사람들로 붐볐으며, 백성들은 법회에 참석하고 연등을 하면서 부처와 천지신명께 복을 빌었다.

다음으로 팔관회를 보면, 태조는「훈요십조」에서 팔관회에 대해 ‘천령(天靈) 및 오악(五嶽)⋅명산(名山)⋅대천(大川)⋅용신(龍神)을 섬기는 대회’라고 했지만, 원래 팔관회는 하루 낮 하룻밤 동안 살생하지 말고, 도둑질을 하지 말며, 간음하지 말며, 헛된 말을 하지 말며, 음주하지 말며, 사치하지 말고, 높은 곳에 앉지 말며, 오후에는 금식해야 한다는 8계(戒)를 지키는 불교 의식에서 기원하였다.

그러나 고려 태조 때부터 이미 부처뿐 아니라 산신, 물의 신, 용의 신 등 토속 신에 대한 제례를 지내고, 각종 오락을 통해 나라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는 축제로 성격이 변하였다. 팔관회개경서경에서 열렸는데 개경에서는 매년 중동(仲冬)인 11월 15일에, 서경에서는 이보다 한 달 전인 10월 15일에 성대히 개최되었다.

팔관회의 성격을 살펴보면 첫째, 호국적 성향의 종합적 종교 행사였다. 팔관회는 궁궐과 법왕사(法王寺)에서 열렸는데, 법왕사는 태조가 즉위 다음 해에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며 건립한 사찰이었다. 팔관회에 앞서 왕은 법왕사에 가서 왕실과 나라의 태평을 기원하는 예불을 올렸으며, 국토를 수호하는 여러 산천의 신, 하늘과 바다의 신 등에 대한 제의를 지내고, 음악과 무용을 비롯한 각종 형식의 오락을 통해 나라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였다.

둘째, 팔관회는 국왕과 관리, 백성이 모두 함께하는 추수 감사제 내지 국가 전체의 축제였다. 팔관회는 공식적인 국가 의례였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엄숙히 이루어졌다. 의봉루 앞마당에는 태자를 기준으로 관등에 따라 자리가 배치되었고, 왕은 의봉루에서 이들을 내려다보며 의례를 진행하였다. 이어서 연회가 시작되면 각종 음악이 연주되었으며, 군신이 함께 어우러져 술을 마시며 노래와 춤, 다채로운 공연과 놀이를 즐겼다.

한편 팔관회에서 이루어진 각종 공연과 놀이들은 왕실과 관료들만이 아닌 일반 백성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였다. 백성들은 궁궐 안팎에서 벌어진 각종 공연과 놀이들을 구경하고 춤과 노래를 추며 함께 즐겼다. 이러한 축제의 모습은 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계절 축제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으로, 팔관회를 통해 왕으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같은 문화를 공유하고 즐기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일체감이 형성되는데 기여하였다.

셋째, 팔관회는 고려 황제의 위상을 대내외에 과시하는 국제적 행사였다. 팔관회에서는 11월 14일에 지방관들이 팔관회를 축하하면서 국왕에게 하례의 표문을 올리는 것과, 15일에 송나라 상인이나 여진과 탐라의 사신 등 외국인들이 고려 국왕에게 축하의 선물을 올리는 중요한 의식이 있었다. 행사 기간 중 왕은 이들에게 음식⋅약⋅술⋅꽃 등을 하사하는 등 황제로서의 위상을 갖추었고, 팔관회는 왕을 위해 만세를 부르고 왕이 행차하는 길에 황토(黃土)를 까는 등 황제의 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를 통해 대내적으로는 강력한 국왕권을, 대외적으로는 고려의 위상을 주변국에 과시하고자 하였다. 또한 지방관들은 팔관회 행사를 통해 국왕에 대한 충성심을 강화하는 한편 중앙 정세를 파악하고 새로운 문물을 접하는 기회를 가졌다. 외국인들은 고려의 정세를 파악하고, 행사 기간 중 그들이 가져온 물건을 판매하거나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는 등 무역 활동을 하였다. 개경벽란도가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한 데에는 이와 같이 팔관회 행사도 일정 부분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원 간섭기인 1275년(충렬왕 1년)부터 ‘성수만년’이라는 글자는 ‘경력천추’로 고쳤으며, ‘만세’ 대신 ‘천세’를 불렀고, 왕의 행차에서도 황토를 까는 것을 금지하는 등 국가 의례에서 황제국이 아닌 제후국의 격식을 사용하게 되었고, 이는 팔관회의 위상에도 영향을 미쳐 이전에 비해 그 자주성이 훼손되었다.

연등회팔관회는 고려의 전 시기에 걸쳐 거의 매년 중요하게 거행되었지만, 성종(成宗, 재위 981~997) 때 잠시 중단되기도 하였다. 이상적 유교 정치를 추구했던 성종최승로(崔承老, 927~989) 등의 건의를 받아들여 팔관회연등회를 중지하고 유교적 의례로 대신하게 하였다. 그러나 성종의 이러한 정책은 백성의 호응을 얻지 못했을 뿐 아니라 많은 관리의 반발을 샀고, 결국 현종이 즉위하자마자 연등회팔관회는 다시 개설되었다. 심지어 몽골의 침입으로 수도를 강화도로 옮긴 상황에서도 가장 먼저 연등회를 위한 봉은사와 팔관회를 위한 법왕사를 창건해 행사를 진행했으며, 이후 개경으로 다시 환도한 뒤에도 제일 먼저 봉은사와 법왕사를 수리해 연등회팔관회를 개설했을 만큼 고려 시대 연등회팔관회는 국가 의례로 중요하게 여겨졌다. 연등회팔관회는 불교문화와 토속 신앙, 예술과 문화, 전통 풍속 등 고려의 모든 문화적 역량의 총집결체였다고 할 수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고려시대 연등회 연구-설행실태를 중심으로-」,『국사관논총』55,김형우,국사편찬위원회,1994.
「고려 팔관회의 내용과 기능」,『역사민속학』9,김혜숙,민속원,2000.
「팔관회와 풍류도」,『한국학보』79,도광순,일지사,1995.
「고려조 팔관회와 예악사상」,『대동문화연구』30,이민홍,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1995.
저서
『한국 중세의 불교의례』, 김종명, 문학과 지성사, 2001.
『고려의 국가 불교의례와 문화』, 안지원,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5.
편저
「불교행사의 유형과 전개」, 홍윤식, 국사편찬위원회, 1994.

관련 사이트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링크연결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