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고려 시대문화도교와 풍수지리설

선풍을 따르고 숭상하라는 의종의 교서

(의종 22년, 1168) (의종이) 무자일에 관풍전(觀風殿)에 나가서 다음과 같은 교서를 내렸다. “짐이 듣건대 호경(鎬京)은 자손만대가 지나도 지덕이 쇠하지 않을 땅이라 후세 왕들이 이곳에 와서 새로운 교화를 펴면 나라의 풍속이 아름다워지고 백성들이 편안하게 된다고 한다. 짐이 국정을 맡은 이래로 정무에 바빠 이곳에 올 겨를이 없었는데 지금 일관(日官)이 순행할 것을 건의해 이곳에 왔다. 나는 장차 낡은 정치를 새롭게 혁신하고 왕화(王化)를 다시 일으키기 위하여 옛날 성인들의 훈계하던 말씀을 참고하여 지금의 폐단을 바로잡을 대책을 강구하고 다음과 같은 새 명령을 선포하노라.……(중략)……

선풍(仙風)을 준수하고 숭상해야 한다. 옛날 신라에서 선풍이 크게 성행하였으므로 용신(龍神)과 천신(天神)이 기뻐하고 사람과 만물이 안녕하였다. 그러므로 대대로 선풍을 숭상한 지 오래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양경(兩京)팔관회가 날이 갈수록 옛 격식을 잃고 그 전통이 점차 쇠퇴하고 있다. 앞으로 팔관회를 열 때는 양반으로서 가산이 풍부한 자를 미리 선택하여 선가(仙家)로 정하고 옛 풍속에 따라 행하여 사람과 하늘이 함께 즐거워할 수 있도록 하라.”

『고려사』권18, 「세가」18 의종 22년 3월 무자

戊子, 御觀風殿, 下敎曰. 朕聞鎬京, 萬世不衰之地, 後之王者臨御于此, 頒下新敎, 則國風淸明, 小民安泰. 朕卽政以來, 萬機實繁未暇巡御, 今以日官所奏來幸此都. 將欲革舊鼎新復興王化, 採古聖勸戒之遺訓, 及當時救獘之事務, 頒布新令. ……(中略)……

一遵尙仙風. 昔新羅仙風大行, 由是龍天歡悅, 民物安寧. 故祖宗以來, 崇尙其風久矣. 近來兩京八關之會, 日減舊格, 遺風漸衰. 自今八關會, 預擇兩班家産饒足者, 定爲仙家, 依行古風, 致使人天咸悅.

『高麗史』卷18, 「世家」18 毅宗 22年 3月 戊子

이 사료는 의종(毅宗, 재위 1146~1170)서경에서 반포한 개혁 교서 중 일부로, 국가의 안녕을 위해 선풍(仙風)을 준수하고 숭상해야 하며 이를 위해 팔관회를 부흥시켜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선풍이란 외래 사상인 유교⋅불교⋅도교와는 구별되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도교 사상으로, 신라 시대에는 풍류도(風流道)라 불리기도 했으며 청소년 수련 단체인 화랑도로 구체화되었다. 이러한 선풍의 흐름은 고려에도 계승되어 신라의 화랑과 같은 선랑(仙郞)⋅국선(國仙)이 존재했고, 신라의 격식에 따라 천신(天神)과 용신(龍神) 등에게 제사를 지낸 팔관회가 국가적 행사로 거행되었다. 따라서 고려 시대 선풍의 본질을 알기 위해서는 선랑⋅국선⋅선가(仙家)⋅팔관회 등의 요소와 이들이 등장하는 시기의 정치 상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교서가 발표된 1168년(의종 22년)은 의종 집권 말기이자 무신 정변이 일어나기 불과 2년 전이었다. 의종 대는 국내외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였다. 대내적으로는 인종(仁宗, 재위 1122~1146) 때 발생한 이자겸(李資謙, ?~1126)의 난과 묘청(妙淸, ?~1135)의 난으로 왕권이 실추되었고, 대외적으로는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가 더욱 강성해져 남송을 압도하며 고려에 심각한 위협으로 부상하였다. 특히 묘청의 난을 계기로 풍수지리설 등을 기반으로 한 서경 세력이 유교를 기반으로 한 개경의 문신 세력에 의해 진압되면서, 이후의 고려 사회는 유교 사상과 개경의 문신 세력에게 지배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즉위한 의종은 군사력을 강화하여 실추된 왕권을 회복하고 왕조를 중흥시키고자 했지만, 즉위 초부터 개경의 문신 세력들에게 심한 제재를 받았을 뿐 아니라 왕위를 엿보는 여러 차례 반역 음모로 친형제들에게도 신변의 위협을 느껴야 하였다. 그래서 집권 중기부터는 문치(文治)로 전향함으로써 문신 세력과 타협하였고, 환관⋅술사⋅내시(內侍) 및 일부 문신 등으로 측근 세력을 형성하여 음양설⋅풍수설⋅불교⋅도교 등에 심취하고 나들이, 연회, 시 짓기 등의 유희를 통해 왕권을 과시하는 등 관념상으로 왕조의 부흥을 꿈꿨다.

한편 현실 정치에서 왕권 회복에 대한 좌절은 왕위에 대한 불안으로 나타나, 정치적 위기 극복을 위해 음양설을 신봉하고 이에 따라 각지의 별궁⋅사원 등으로 여러 차례 이어(移御)하였다. 이 사료에 보이는 서경 행차도 동생 익양후(翼陽侯, 1131~1202, 후의 명종)와 평량후(平凉侯, 1144~1204, 후의 신종)가 사람들의 마음을 얻자 변란이 있을까 의심해 이를 피해 간 것이었다. 1168년 서경에서 반포된 개혁 교서는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발표된 것이었다.

교서의 내용을 보면 여섯 조목 중 3가지가 불교에 관한 것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였고, 음양설과 선풍(仙風)도 중요시되었지만, 유교적 정치 이념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이는 의종이 실추된 고려 왕조를 중흥시키기 위한 기반으로 유교 사상이 아니라 다른 신앙과 사상에서 구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고려 왕들은 왕권 강화와 국가 부흥을 위해 유교 이외의 사상에 관심을 가진 경우가 많았으며, 태조를 비롯한 후대의 왕들은 국가가 위기에 처하거나 새로운 정치를 실시하려고 할 때 그 정신적 토대를 우리 고유의 사상인 선풍에서 구하려 하였다. 고려 시대 선풍의 구체적 실체는 팔관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선풍과 팔관회의 이와 같은 관계는 의종의 교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의종은 신라가 부흥했던 이유를 선풍을 따르고 숭상했던 데서 찾고, 당시 고려가 겪고 있던 어려움을 선풍이 쇠퇴했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그러면서 고려에서 선풍이 쇠퇴하게 된 이유를 팔관회의 격식이 약소화 된 것에서 찾으면서, 선풍을 따르고 숭상하기 위해서 팔관회를 옛날의 격식대로 성대히 치를 것을 주장하였다. 즉 고려 시대에는 선풍의 계승이 팔관회를 통해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고려 왕조에서 팔관회가 가지는 의미는 상당히 컸다. 팔관회는 고대의 제천 행사이자 추수 감사제인 동맹(東盟)⋅무천(舞天)⋅영고(迎鼓) 등의 전통을 잇는 것으로, 신라 진흥왕(眞興王, 재위 540~576) 대 처음 시작하여 고려에도 계승되었다. 태조는 ‘훈요십조(訓要十條)’에서 팔관회에 대해 “천령(天靈) 및 오악(五嶽)⋅명산(名山)⋅대천(大川)⋅용신(龍神)을 섬기는 대회”라고 하면서 후대 왕들에게 매년 격식을 갖춰 성대히 개최할 것을 당부하였고, 선랑을 뽑아 사선(四仙)으로 가장시켜 노래를 하고 춤을 추게 했다. 이와 같이 고려 시대 선풍과 관련된 선랑⋅선가⋅사선 등의 용어들은 모두 팔관회 행사와 관련해 등장하였다.

팔관회에서 왕은 왕실과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는 예불을 올렸으며, 국토를 수호하는 여러 산천의 신, 하늘과 바다의 신 등 토속 신에 대한 제의 행사를 하고, 음악과 무용을 비롯한 각종 형식의 오락을 통해 나라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였다. 또한 팔관회 행사는 황제의 격식으로 치러졌고, 지방의 장관들과 주변 국가의 사절이 참석하였기 때문에 대내외에 왕의 위엄을 천명하는 기능을 하였다. 이처럼 팔관회는 우리 고유의 종합적 종교 축제로 선풍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으며, 왕권의 보전이나 국가의 수호를 기원하는 호국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국난이 국가가 위기에 처하거나 새로운 정치를 실시하려고 할 때 팔관회의 개최는 더욱 강조되었다. 따라서 왕권 실추와 금의 압박 등 대내외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의종이 선풍을 따르고 숭상할 것을 강조했던 사실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의종의 교서는 전후의 정치 상황을 통해 무신정변이 발생하게 된 한 원인을 짐작하게 해 주며, 고려 시대 선풍과 팔관회의 본질, 양자의 관계를 알려 주는 핵심 자료로 중요성을 가진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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