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고려 시대문화고려의 우수한 문화유산

고려 불교 예술의 정수-불화

안화사(安和寺). 왕부의 동북 쪽을 거쳐 산길을 3∼4리 가면 점차로 숲 그늘이 맑고 무성해지고 늪과 산기슭은 험하디 험해진다.관도(官道)의 남쪽 옥륜사(玉輪寺)에서 수십 보를 가면 작은 길이 구불구불 이어져 있고 높은 소나무가 길을 끼고 있는데, 삼엄하기가 만 자루의 창을 세워 놓은 듯하다. ……(중략)…… 다시 깊은 골짜기 속으로 들어가서 산문각(山門閣)을 지나 시냇물을 끼고 몇 리를 가면 안화문(安和門)으로 들어가고, 다음에 정국안화사로 들어간다. 절의 액호(額號)는 곧 지금의 태사(太師) 채경(蔡京, 1047~1126)1)의 글씨이다. 문의 서쪽에 정자가 있는데 방(榜)이 ‘냉천(冷泉)’으로 되어 있다. 또 좀 북쪽으로 가면 자취문(紫翠門)으로 들어가고, 다음에는 신호문(神護門)으로 들어간다. 문 동쪽 월랑에 상(像)이 있는데, 제석(帝釋)이다. 서쪽 월랑의 대청을 ‘향적(香積)’이라 하며, 가운데에는 무량수전(無量壽殿)이 세워져 있다. 그 곁에 두 개의 누각이 있는데 동쪽의 것을 ‘양화(陽和)’라 하고 서쪽의 것을 ‘중화(重華)’라 한다. 이곳 뒤에는 문이 세 개 늘어서 있다. 동쪽 것을 ‘신한(神翰)’이라 하며, 그 뒤에 전각이 있는데 ‘능인(能仁)’이라고 한다. 전각의 두 액자는 실로 금상 황제께서 내린 어서(御書)이다. 중문은 ‘선법(善法)’이라 하는데 그 뒤에 선법당(善法堂)이 있고, 서문은 ‘효사(孝思)’라 한다. 뜰 뒤에 전각이 있는데, ‘미타당(彌陀堂)’이라고 한다. 전각 사이에 두 곁채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관음(觀音)을 봉안하였고 또 하나는 약사(藥師)를 봉안하였다. 동쪽 월랑에는 조사상(祖師像)이 그려져 있고 서쪽 월랑에는 지장왕(地藏王)이 그려져 있다. 나머지는 승려의 거실이다.

고려도경』권17, 사우 정국안화사

삼가 『대비다라니신주경(大悲陁羅尼神呪經)』을 살펴보니, 이에 이르기를, “만약 환란이 바야흐로 일어나거나, 원적(怨敵)이 침범하거나, 전염병이 유행하거나, 귀마(鬼魔)가 설쳐 어지럽히는 일이 있거든, 마땅히 관세음보살의 불상을 만들어 모두가 지극히 공경하는 마음을 기울여라.당번(幢幡)개(蓋)로 장엄하게 하고 향과 꽃으로 공양하라. 그렇게 하면 적들이 죄다 스스로 항복하여 모든 환란이 아주 소멸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유언(遺言)을 받들자 마치 친히 가르치는 말씀을 듣는 것 같았습니다. 이에 단청(丹靑)의 손을 빌려서 수월관음(水月觀音)의 얼굴을 모사합니다. 아! 그림 그리는 공인이 우리 백의(白衣)의 모양을 비슷하게 한지라, 지극한 정성을 다 피력하여 우러러 연모(蓮眸)를 그립니다. 엎드려 원하건대, 빨리 큰 음덕을 내리시고 이내 묘한 위력을 더하셔서, 지극히 인자하면서 무서운 광대천(廣大天)처럼 적의 무리를 통틀어 무찌르게 하십시오.무외 신통(無畏神通)으로써 그 나머지는 저절로 물러나 옛 소굴로 돌아가게 하옵소서.

동국이상국집』전집 권41, 「석도소」최상국양단병화관음점안소

휴상인(休上人)은 사중은(四重恩)을 갚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는 데 있어서도 나름대로의 원칙을 지니고 있었다. 또 그는 부처의 형상이나 부처의 말씀 모두가 불도(佛道)에 들어가는데 특히 중요한 바탕이 된다고 하여, 제자인 도우(道于)와 달원(達元)으로 하여금 지묵(紙墨)을 시주받아서 주해(註解)가 붙어 있는 『화엄경(華嚴經)』과 『법화경(法華經)』을 각각 1부씩 찍도록 하였다. 또 설법(說法)을 통해서 얻은 보시(布施)를 가지고는 서방 정토의 아미타불과 팔대 보살(八大菩薩)을 그려 장명등(長明燈) 아래에 안치하였다. 남은 비용은 불경을 찍는 데 보태도록 했다.

『목은문고』권8, 서 증휴상인서

1)채경(蔡京)은 북송(北宋) 말의 정치가로 16년간 재상의 자리에 있으면서 금(金)나라와 연합하여 숙적인 요(遼)나라를 멸망시키는 공을 세웠다. 그러나 휘종(徽宗, 1082~1135, 재위 1100~1125)에게 아첨하고 사치하도록 이끌었으며, 구법당(舊法黨)을 탄압하였다. 결국 금나라 군대가 침입하면서 휘종이 사로잡히고 흠종(欽宗, 1100~1161, 재위 1126~1127)이 즉위하자 유배되어, 유배지로 가던 도중 병사하였다. 그는 문인이자 서예가로서 필법이 뛰어난 수준에 이르렀다. 1118년(예종 13) 4월 예종이 송나라에 사신을 보내 수리가 끝난 안화사(安和寺)에 걸 편액을 구하였다. 이에 송나라 황제는 채경에게 ‘정국안화지사(靖國安和之寺)’란 액호를 쓰게 하여 고려로 보냈다.

○安和寺. 由王府之東北, 山行三四里, 漸見林樾淸茂, 藪麓崎嶇. 自官道南玉輪寺, 過數十步, 曲徑縈紆, 脩松夾道, 森然如萬戟. ……(中略)…… 復入深谷中, 過山門閣, 傍溪行數里, 入安和之門, 次入靖國安和寺. 寺之額, 卽今太師蔡京書也. 門之西有亭, 榜曰冷泉. 又少北入紫翠門, 次入神護門. 門東廡有像, 曰帝釋. 西廡堂, 曰香積, 中建無量壽殿. 殿之側, 有二閣, 東曰陽和, 西曰重華. 自是之後, 列三門. 東曰神翰, 其後有殿, 曰能仁殿. 二額, 寔今上皇帝所賜御書也. 中門曰善法, 後有善法堂, 西門曰孝思. 院後有殿, 曰彌陁. 堂殿之間, 有兩廈, 其一, 以奉觀音, 又其一, 以奉藥師. 東廡, 繪祖師像, 西廡, 繪地藏王. 餘以爲僧徒居室.

『高麗圖經』卷17, 祠宇 靖國安和寺

謹案大悲陁羅尼神呪經云, 若患難之方起, 有怨敵之來侵, 疾疫流行, 鬼魔耗亂, 當造大悲之像, 悉傾至敬之心. 幢蓋莊嚴, 香花供養. 則擧彼敵而自伏, 致諸難之頓消. 奉此遺言, 如承親囑. 玆倩丹靑之手, 用摹水月之容. 吁哉繪事之工, 肖我白衣之相, 罄披霞懇, 仰點蓮眸. 伏願遄借丕庥, 仍加妙力, 如至仁廣大, 憚令醜類以盡劉. 以無畏神通, 俾反舊巢而自却.

『東國李相國集』全集 卷41, 「釋道疏」 崔相國攘丹兵畫觀音點眼踈

上人圖所以報四重恩, 修之身心者自有其道. 又謂佛形像佛言語, 皆所以資入道之尤要者. 使弟子道于達元者, 化紙墨印華嚴, 法華有註者各一部. 又以說法所得布施, 畫西方彌陀八菩薩, 置長明燈本. 推其餘, 助印經之費.

『牧隱文藁』卷8, 序 贈休上人序

이 사료들은 고려 불화의 존재와 함께 제작 과정 등을 알려 주는 기록의 일부이다. 사료 1은 『고려도경』의 찬자인 서긍(徐兢)이 안화사를 보고 남긴 글이다. 이 글에 따르면 안화사에는 조사상과 지장왕을 그린 불화 등이 그려져 있었다. 사료 2는 무신 최충헌(崔忠獻)의 맏아들 최우(崔瑀, ?~1249)가 거란군을 물리치기 위해 관음보살을 그려 이를 기원하고자 지은 석도소(釋道疏)의 일부로, 실제 글은 이규보(李奎報, 1168~1241)가 썼다. 사료 3은 고려 말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이 교분이 있었던 나옹 화상(懶翁和尙, 1320~1376)의 제자 휴상인(休上人)에게 써 준 글의 일부이다. 『화엄경(華嚴經)』과 『법화경(法華經)』, 그리고 아미타불과 팔대 보살(八大菩薩)을 그린 일이 기록되어 있다.

이 사료들에 따르면, 고려 불화는 왕실이나 귀족, 권문 세족 등의 지원을 받아 승려나 전문 화원(畵員)이 제작하였다. 이들은 불화를 그리는 과정을 통해 불경의 세계를 구현하는 한편, 불교를 통해 열반에 들고자 하는 염원을 담았다.

고려 시대에 들어오면서 조영된 불상이나 석탑 등은 신라 때와 비교하여 종교적 조형미에 차이가 있었다. 삼국 및 통일신라의 경우 ‘미륵 반가 사유상’처럼 열반의 미소를 구현하여 성스러움을 자연스레 느끼게 하였다. 이에 비해 고려 태조(太祖, 877~943, 918~943) 대에 제작된 개태사지 석불 입상이나 광종(光宗, 925~975, 재위 949~975) 대 만들어진 논산 관촉사 석조 미륵보살 입상은 인체의 비례가 맞지 않아 예술적 고아함과는 거리가 있다. 다만 석탑이나 승려의 부도 등은 매우 다양하고 특이한 형태로 제작되었다. 금산사의 6각 다층 석탑이나 오대산 월정사의 8각 9층 석탑, 묘향산 보현사의 8각 13층 석탑, 여주 신륵사의 다층 전탑 등 팔각 원당형(八角圓堂形)⋅범종형(梵鐘形)⋅특수형(特殊形)으로 제작된 부도가 이에 해당한다.

고려 시대 미술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불화의 제작이었다. 고려 불화는 고려 청자와 함께 고려의 예술 세계를 대표하였다. 그림이라는 면에서 불화는 석탑이나 부도, 불상 등과는 달리 이상적 세계를 구현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제작자의 의도에 따라 중생과 보살, 부처의 세계를 함께 담거나 여러 부처와 그 세계를 그려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화려함과 정교함은 불교 미술의 정수였다. 사료 1과 사료 2, 사료 3에 일부 나타나듯이 불화는 예배용이나 법회용(法會用), 병란을 없애기 위한 양병(禳兵) 및 재해를 없애고자 하는 소재용(消災用), 수명 장수 기원용, 탄생 기원 및 탄신 축하용 등 여러 가지 용도로 제작되었다.

현존하는 고려 불화로서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은 1006년(목종 9) 천추 태후(千秋太后, 964~1029)가 발원하여 제작한 『대보적경사경변상도(大寶積經寫經變相圖)』이다. 이 외에도 11~12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목판본 변상도가 있었으나, 현전하는 화려함과 섬세함을 보여 주는 고려 불화의 대다수는 원(元)나라 간섭기에 해당하는 14세기에 제작된 것이다. 이 같은 고려 불화는 남송(南宋, 1127~1279)과 서하(西夏, 1032~1227), 그리고 원나라( 1271~1368)의 영향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사료 1에서 서긍이 기록한 정국 안화사의 경우, 송나라와 교류가 있었음을 알려 주는 사찰이다. 본래 안화사는 930년(태조 13) 8월에 창건된 사찰로, 처음에는 안화 선원(安和禪院)이라 하였다. 1117년(예종 12)에 이르러 대대적인 중건을 하였는데, 이때 송나라의 휘종과 재상 채경(蔡京, 1047~1126)이 액호를 써서 보내 주었다. 이러한 사실은 조사도나 지장왕도 등의 불화에서도 송나라의 영향이 있었음을 추정하게 만든다. 고려 불화는 이처럼 송나라와 교류를 주고받으면서 제작되었으나, 중국의 것과 다른 독자성을 띠었다. 사료 3에서 아미타불이나 팔대 보살의 불화 등에 이러한 면이 반영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도 다른 불화이긴 하지만 강원도 낙산사를 배경으로 하거나 금강산을 불교 설화의 무대로 등장시키는 고려만의 독창적인 불화들이 있기 때문이다.

현전하는 고려 불화는 국내외에 대략 140여 점이 전한다. 사경화(寫經畵)는 70여 점 정도가 남아 있다. 고려 불화의 일부는 국내에 현전하고 있으나, 실제 상당수는 일본으로 건너가 있어 연구에 어려움이 있다. 예컨대 「관경변도(觀經變圖)」⋅「나한상(羅漢像)」⋅「관음보살상(觀音菩薩像)」⋅「지장보살상(地藏菩薩像)」⋅「아미타여래상(阿彌陀如來像)」 등을 포함하여 거의 70여 점이 일본에 있다. 이 외에도 미국 및 유럽에도 고려 불화가 소장되어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고려 불화 작가로는 1300년을 전후하여 일본 센소사[淺草寺]에 소장된 「양류관음도(楊柳觀音圖)」를 남긴 혜허(慧虛)와 1301년(충렬왕 27)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를 남긴 김우문(金祐文), 1307년(충렬왕 33) 「아미타구존도(阿彌陀九尊圖)」를 발원하여 그린 노영(魯英), 1323년(충숙왕 10) 「수월관음도」를 그린 서구방(徐九方) 등이 있다.

오늘날 직접적으로 고려 불화의 모습을 살펴보기는 어렵지만, 사료 1과 사료 2, 사료 3을 통해 볼 때 고려 불화는 왕실과 관련 있는 사찰에 모셔졌으며, 귀족 등의 발원에 의해 제작되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고려 불화는 고려의 독자적 시각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중국의 것과 달리 새롭게 불화 공간을 구성하였으며, 부처와 보살, 일반 백성, 건축물, 복식, 원근법 등이 반영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고려 불화만의 독특한 미감을 느낄 수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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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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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영원한 미-고려불화특별전』, 호암갤러리 편, 호암갤러리,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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