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듣기에 고려는 땅이 동해에 접해 있어서 틀림없이 도산(道山)⋅선도(仙島)와는 거리가 멀지 않으니, 그 백성들이 장생구시(長生久視)
노자에 나오는 표현으로 오래 산다는 뜻
의 가르침을 사모할 줄 몰랐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중원(中原)에서 이전에는 (고려를) 정벌하는 일이 많았고 청정무위(淸淨無爲)의 도(道)를 가지고 교화한 자가 없었던 것이다. 당나라가 일어나서는 혼원시조(混元始祖)
노자
를 섬겼다. 그래서 무덕(武德) 연간(618~626) 고구려는 사신을 보내 도사를 고구려에 파견해 『오천문(五千文)』
노자의 『도덕경』
을 강론하여 심오한 이치를 깨우쳐 주기를 간청하였다. (당나라) 고조는 기특하게 여겨 그 청을 들어 주었다. 그때부터 비로소 도교를 숭상했는데 불교[佛典]를 능가할 정도였다. (북송)대관(大觀)
5년)에 천자께서 저 먼 변방에서 현묘한 도를 듣고자 하는 뜻을 헤아려, 고려에 사신을 파견하면서 도사 2인을 딸려 보내 교법(敎法)에 통달한 자를 골라 가르치도록 하였다. 왕우(王俁)
이 재위 시에 항상 도가의 서적을 보급하는 데 뜻을 두어 도교로 불교를 대체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뜻이 이루어지지는 못했지만 무엇인가 기대하는 바가 있었던 것 같다.
송 휘종의 연호로 1107~1110년에 해당
경인년(1110년, 고려 예종
'예종' 관련자료
예종
는 신앙이 돈독하여 정화(政和)
'예종' 관련자료
송 휘종의 연호
연간(1111~1117)에 복원관(福源觀)을 처음 세워 도가 높고 참된 도사 10여 명을 받들었다. 그러나 그 도사들은 낮에는 복원관에 있다가 밤에는 집으로 돌아갔는데 후에 간관(諫官)이 이를 문제 삼자 법으로 금하였다. 또한 듣기로는 예종
'예종' 관련자료
『선화봉사고려도경
'선화봉사고려도경' 관련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