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이 무악(毋岳)에 이르러서 도읍을 정할 땅을 물색하는데, 판서운관사(判書雲觀事) 윤신달(尹莘達)과 서운부정(書雲副正) 유한우(劉旱雨) 등이 임금 앞에 나와서 말하였다. “지리의 방법으로 살펴보면 이곳은 도읍이 될 수 없습니다. ” 이에 임금이 말하였다. “너희들이 함부로 옳거니 그르거니 하는데, 이곳이 만일 불가한 사항이 있으면 여러 문헌을 살펴서 말해 보라. ” 윤신달 등이 물러가서 서로 의논하였는데, 임금이 다시 한우를 불러서 물었다. “이곳이 끝내 좋지 못하냐?” 유한우가 대답하였다. “신이 살펴본 바로는 실로 좋지 못합니다. ” 임금이 또 말하였다. “여기가 좋지 못하면 어디가 좋으냐?” 유한우가 대답하였다. “신은 알지 못하겠습니다. ” 임금이 노하여 말하였다. “네가 서운관이 되어서 모른다고 하니, 누구를 속이려는 것인가? 송도(松都, 개성)의 지기(地氣)가 쇠하였다는 말을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유한우가 대답하였다. “이것은 도참(圖讖)
에서 말한 것인데, 신은 단지 지리만 배워 도참
은 모릅니다. ” 임금이 말하였다. “옛사람의 도참
도 역시 지리에 따라 말한 것이지, 어찌 터무니없이 근거 없는 말을 했겠느냐? 그러면 너의 마음에 쓸 만한 곳을 말해 보아라. ” 유한우가 대답하였다. “고려 태조(太祖)
가 송산(松山) 명당에 터를 잡아 궁궐을 지었는데, 중엽 이후에 오랫동안 명당을 폐지하고 임금들이 여러 번 이궁(離宮)으로 옮겼습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명당의 지덕(地德)이 아직 쇠하지 않은 듯하니, 다시 궁궐을 지어 그대로 송경(松京, 개성)에 도읍을 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
'도참(圖讖)' 관련자료
'도참' 관련자료
'도참' 관련자료
'태조(太祖)' 관련자료
임금이 “내가 장차 도읍을 옮기기로 결정했는데, 만약 가까운 지역에 다시 길지(吉地)가 없다면, 삼국 시대의 도읍 또한 길지가 됨직하니 마땅히 의논하여 알리라” 하고 좌시중(左侍中) 조준(趙浚)
⋅우시중(右侍中) 김사형(金士衡)에게 말하였다. “서운관이 고려 말기에 송도의 지덕이 이미 쇠했다 하고, 여러 번 글을 올려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자고 하였다. 근래에는 계룡(雞龍)이 도읍할 만한 곳이라 하기에 백성을 동원하여 공사를 일으키고 백성들을 노역하여 힘들게 하였다. 이제 또 여기가 도읍할 만한 곳이라 하여 와서 보니, 한우 등이 좋지 못하다 하고, 도리어 송도 명당이 좋다고 서로 논쟁을 하여 국가를 기만하니, 이것은 일찍이 징계하지 않은 까닭이다. 그대들이 서운관 관리로 하여금 각각 도읍될 만한 곳을 진술하여 아뢰게 하라. ”
'조준(趙浚)' 관련자료
이에 겸판서운관사 최융(崔融)과 윤신달⋅유한우 등이 글을 올려 아뢰었다. “우리나라 안에서는 부소(扶蘇)
부여 북쪽에 위치한 곳으로 백제 시대의 성터
가 명당의 첫째요, 남경(南京)이 그 다음입니다” 이날 저녁 임금이 무악 밑에서 유숙하였다. 『태조
'태조' 관련자료
중추원 학사 이직(李稷)이 말하였다. “도읍을 옮기고 나라를 세우는 곳에 대해 지리책을 살펴보니, 대개 말하기를, ‘만 갈래의 물과 천봉의 산이 한 곳으로 향한 큰 산과 큰물이 있는 곳이 왕도와 궁궐을 정할 수 있는 땅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산의 기맥이 모이고 조운(漕運)
이 통하는 곳을 말한 것입니다. 또 이르기를, ‘천리의 땅을 가지고 임금이 된 사람은 도읍을 사방 500리로 하고, 500리의 땅을 가지고 임금이 된 자는 도읍을 사방 각 50리로 한다. ’고 하였으니 이것은 사방 도로의 거리를 고르게 하기 위해 말한 것입니다.
'조운(漕運)' 관련자료
우리나라 비결에도 이르기를, ‘삼각산 남쪽으로 하라’ 했고, ‘한강에 임하라’ 했으며, 또, ‘무산(毋山)이라’ 했으니, 이곳을 들어 말한 것입니다. 대개 터를 잡아 도읍을 옮기는 것은 지극히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한두 사람의 의견으로 정할 것이 아니며, 반드시 천명에 순응하고 인심을 따른 뒤에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서경』에 말하기를, ‘거북점이 따르고 시초점도 따르며 공경사대부(公卿士大夫)도 따르고 서민도 따른다’ 했으니,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결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도읍을 옮기는 여부는 본래 때와 운수에 달려있는 것이니, 신이 어찌 쉽게 의논하겠습니까? 전하께서 천도하려는 것은 천심에서 나오고 또 민심의 향하는 바를 살피시니, 곧 하늘에 순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악의 명당은 신도 역시 좁다고 생각합니다. ”
『태조
'태조' 관련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