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조선 전기정치중앙 집권 체제의 정비

의정부 서사제

교서(敎書)를 내리기를,

당우(唐虞) 시대에는 백규(百揆)가 9관(九官)과 12목(十二牧)을 거느렸고, 성주(成周) 시대2)에는 총재(冢宰)가 6경(六卿)과 60속(六十屬)을 거느렸는데 총재의 실임은 3공(三公)이 겸직하였다. 혹자는 한나라의 진평(陳平)이 전곡(錢穀)의 숫자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않아서 대신(大臣)의 체통은 지켰다고 말하지만 대신의 직책에 실로 흠이 되는 줄을 몰랐던 것이니 한나라 재상이 권위를 잃어버린 것이 진평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한나라 이후 역대의 치란(治亂)이 모두 대신을 잘 만나고 못 만난 데서 비롯되었다.

우리 태조께서 개국하신 초기에는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를 설치하여 한 나라의 정치를 총괄하게 하였다. 뒤에 의정부로 고쳤으나 그 임무는 도평의사사와 같았다. 지난 갑오년(1414, 태종 14년)에 예조에서 아뢰었다.

“대신은 작은 일까지 친히 간섭할 필요가 없으니 군사에 관계되는 나라의 중대한 일만을 의정부에서 회의하여 아뢰게 하고, 그 외의 일은 육조에서 각기 맡은 직분에 따라 임금께 직접 아뢰어 시행하게 하소서”

이로부터 일의 경중(輕重)과 대소(大小)를 가리지 않고 모든 일이 육조로 돌아가고, 의정부에서는 관여하지 않게 되었으며, 의정부에서 참여하여 아뢰는 것은 오직 사형수들에 대한 논결(論決) 뿐이었다.

그러므로 옛날 대신에게 위임하던 뜻과 어긋나는데, 갑오년에 입법(立法)하던 본래의 의도도 이러한 것은 아니었다. 하물며 조종께서 이미 제정하여 놓은 법령은 다만 때에 따라 덜거나 더함이 있을 뿐이다. 지금 태조께서 제정하여 놓으신 법에 의하여 육조에서는 각각 맡은 직무를 먼저 의정부에 품의(稟議)하고, 의정부에서는 가부를 의논한 후에 임금께 아뢰어서 분부를 받고 도로 육조로 돌려보내서 시행하게 하되, 오직 이조와 병조에서의 관리를 제수하는 것이나, 병조에서 군사를 쓰는 것이나, 형조에서 사형수 이외 죄인의 형벌을 결정하는 일은 해당 6조로 하여금 임금께 직접 아뢰어서 시행하고 즉시 의정부에 보고하게 하는데, 만일에 합당하지 못한 일이 있으면 의정부에서는 이에 따라 심의⋅논박하고 다시 계문해서 시행하게 하라. 이렇게 되면 옛날 재상에게 전임하는 본의에 거의 합당할 것이니, 예조에서는 중외에 밝게 알리라”

하고 나서 의정부에 전교하기를,

“옛날 의정부에서 정사에 서명할 때에, 다만 좌우의정(左右議政)만이 도맡아 다스리게 되고 영의정은 참여하지 않으므로, 옛날의 삼공(三公)에게 전임하는 본의에 어긋나는 것이니, 이제부터 영의정 이하가 함께 가부를 논의해서 시행하게 하라”

하였다.

세종실록』권72, 18년 4월 12일(무신)

2)성주(成周) 시대 : 주(周)나라 성왕(成王)과 주공(周公)의 시대를 말하는 것으로, 주나라가 통일되고 가장 융성한 시기로 간주된다. 주 왕조는 건국 초(武王) 무왕 때 서쪽의 호경(鎬京)을 수도로 하여 주나라의 종묘를 두고 종주(宗周)라 하였는데, 곧 주나라의 서도(西都)이며 현재의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 지역이다. 성왕과 그를 보필하던 주공은 주 왕실 내부의 반란 및 멸망한 은나라 왕족인 무경의 반란을 토벌한 후 동쪽으로 낙읍(洛邑)을 건설하여 동도(東都)로 삼았다. 이는 성주(成周)로도 불렸으며 현재의 허난성(河南省) 뤄양(洛陽) 근처였다. 주공과 성왕 두 지도자에 의하여 제후국 분봉이 대부분 완료됨으로써 주나라는 정치적 안정기에 들어갔으며, 이러한 정치적 기반을 바탕으로 성왕의 아들 강왕(康王)은 주의 황금 시대를 열 수 있었다. 따라서 은나라를 멸망시킨 후 두 개의 도성을 세운 시기를 서주 시대(BC 1122~BC 770)라고 하며, 견융(犬戎)의 침략을 받아 유왕(幽王)이 죽고 평왕(平王)이 낙읍(洛邑)으로 패퇴한 후의 시기를 동주 시대(BC 770~BC 256)라 한다.

敎曰, 唐⋅虞之際, 百揆統九官十二牧. 成周之時, 冢宰統六卿六十屬, 而冢宰實三公兼之. 或以爲漢陳平, 不對錢穀之數, 爲得大臣之體. 然不知實虧大臣之職, 而漢相之失權, 自平始矣. 自漢以後, 歷代之治亂, 皆由任相之得失. 我太祖開國之初, 設都評議使司, 以摠一國之政, 後改爲議政府, 其任如初. 歲在甲午, 禮曹啓, 以大臣不宜親小事, 軍國重事, 議政府會議以聞, 其餘令六曹各以所職, 直啓施行. 自是以後, 事無輕重大小, 皆歸於六曹, 而不關於政府, 政府所與聞, 唯論決死囚而已, 有違古者任相之意, 甲午立法之本意, 亦不至於如此也. 況此皆祖宗之成憲, 但隨時損益而已. 今依太祖成憲, 六曹各以所職, 皆先稟於議政府, 議政府商度可否, 然後啓聞取旨, 還下六曹施行, 唯吏兵曹除授, 兵曹用軍, 刑曹死囚外刑決, 仍令本曹直啓施行, 隨卽報于政府, 如有未當, 政府從而審駁, 更啓施行, 如此則庶合古者專任宰相之意, 惟爾禮曹, 曉諭中外. 仍敎議政府曰, 昔議政府署事之時, 但左右議政摠治, 而領議政不與焉, 有違古者專任三公之意. 自今領議政以下, 同議可否施行.

『世宗實錄』卷72, 18年 4月 12日(戊申)

이 사료는 1436년(세종 18년) 세종(世宗, 재위 1418~1450)세자에게 대리청정을 하게 하면서 내린 교서로서, 이전까지 국정 운영이 육조 직계제(六曹直啓制)로 운영되던 것에서 의정부 서사제(議政府署事制)로 변화되는 과정을 보여 준다.

경국대전(經國大典)』「이전(吏典)」 경관직(京官職) 조에 의하면, 의정부의 기능은 백관을 통솔하고, 서정(庶政)을 공평하게 하며, 음양(陰陽)을 고르게 하고, 나라를 경륜해 가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다. 이렇듯 형식상으로는 의정부 서사제가 정립되었지만, 육조 직계제가 부활되고 원상제(院相制)까지 실시되었던 세조(世祖, 재위 1455~1468) 대에 『경국대전』이 편수된 관계로 전통적 총재(冢宰) 제도에서 의정부의 많은 권한 사항이 명문화되지 않았다.

조선 건국 초기에는 정치 구조에서 고려 귀족제의 특징이 많이 남아 있었다. 조선 전기의 관제는 그 같은 정치 구조에서 국왕을 권력의 정점으로 하는 관료제의 형태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었다. 태조(太祖, 재위 1392~1398) 대에는 고려 말과 마찬가지로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라는 재상들의 합좌 기구를 통해 주요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1400년(정종 2년)에는 도평의사사를 해체하여 그 권한과 기능을 분산하는 대신 의정부가 설치되어 여러 방면에 걸쳐 국정을 총괄하는 기능을 맡았다. 그러나 태종(太宗, 재위 1400~1418)의정부의 권한이 너무 크다고 보고 그 권한을 분산시켜 왕이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통로를 확대하고자 육조 직계제를 실시하였다. 이에 육조의정부를 통하지 않고 직접 왕을 대면하여 직접 행정 실무까지 관장할 수 있게 되었다.

세종도 재위 전반기에는 육조 직계제를 실시하였지만, 집현전을 통해 성장한 사대부의 정치적 지위가 높아지면서 후기에는 다시 의정부의 권한을 강화하였다. 다만, 인사 관리와 군사 문제, 사형수 이외 심리 등은 각 조에서 직접 왕에게 계문하여 시행토록 하여 왕의 주도권이 손상되지 않는 범위에서 의정부 대신의 권한을 회복시켰다. 이후 문종(文宗, 재위 1450~1452)에 이어 단종(端宗, 재위 1452~1455) 대까지 의정부 정승을 중심으로 의정부 서사제가 강화되었지만, 세조(世祖, 재위 1455~1468)는 다시 육조의 권한을 강화하는 정책을 폈다.

육조는 속아문을 거느리고 국가의 중요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기구로 자리 잡았다. 그 밖에 승정원⋅의금부와 같은 왕의 직속 기구라든가 사헌부⋅사간원⋅홍문관의 삼사(三司)와 같은 권력을 견제하는 기구 등이 존재하였다. 성종 대에는 사림(士林)의 진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이들이 주로 삼사에 진출하면서 삼사는 언론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독자적인 정치적 위상을 얻었다. 조선 전기 중앙 집권적 통치 체제가 성립되는 과정에서 의정부 서사제육조 직계제의 시행 여부, 그리고 이에 따른 국정의 주도 여부를 통해 각 국왕 대별 왕권의 강약 여부가 일시적으로 이와 같이 맞물려 있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조선 초기 6조 연구-제도의 확립과 실제 기능을 중심으로-」,『대구사학』20⋅21,한충희,대구사학회,1987.
저서
『조선 전기 관리 등용제도 연구』, 임용한, 혜안, 2008.
『조선 시대 대간 연구』, 정두희, 일조각, 1994.
『조선 초기 정치지배세력 연구』, 정두희, 일조각, 1983.
『조선시대의 대간 연구』, 정두희, 한국연구원, 1989.
『조선 초기 정치사연구』, 최승희, 지식산업사, 2002.
『조선 초기 관직과 정치』, 한충희, 계명대학교 출판부, 2008.

관련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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