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조선 전기정치중앙 집권 체제의 정비

유교적 국가의 완성

옛날부터 제왕(帝王)들이 천하와 국가를 다스림에, 새로 나라를 세운 임금[창업지주(創業之主)]은 초기에는 나라를 다스리기에 바빠서 전적(典籍)과 고사(故事)를 살필 틈이 없고, 수성지주(守成之主)1)는 선대왕의 옛 법을 그대로 지킬 뿐, 다시 법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비록 “한나라 고조가 빠뜨린 부분이 없이 치밀하게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삼장약법(三章約法)2)’은 겨우 통치의 틀만 밝혔을 뿐이다. 역사가들이 “당나라는 모든 제도가 구비되어 펼쳐졌다”라고 말들 하지만, 『육전(六典)』3)을 만든 것은 오히려 중반이 되어서야 가능하였으니 한나라나 당나라만도 못한 나라들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삼가 생각하건대, 세조께서는 천명을 받아 임금이 되어 국가를 중흥하였으니, 그 공적이 창업과 수성을 모두 이룬 것과 같았다. 문(文)과 무(武)를 빛내고 정비하셨으며, 예(禮)와 악(樂)을 갖추고 융성하게 하였는데도 오히려 잘 다스리기를 더욱 부지런히 하고 제도를 만들어 널리 펼치셨다. 일찍이 신하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우리 선대왕께서는 깊은 인자함과 두터운 은혜로 넓고도 빼어난 규범(規範)이 법 조문 곳곳에 펴져 있으니, 바로 『경제육전(經濟六典)』의 「원전(元典)」⋅「속전(續典)」⋅「등록(謄錄)」이다. 또 여러 차례 내리신 교지(敎旨)들이 아름다운 법이지만, 관리들이 용렬하고 어리석어 제대로 받들어 행하지 못하였다. 이렇게 된 것은 진실로 법의 과(科)와 조(條)가 너무 번잡하고 앞뒤가 서로 맞지 않고 하나로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남고 모자람을 짐작하고 서로 통하도록 갈고 다듬어 자손만대의 성법(成法)을 만들고자 한다”라고 하셨다. 계속해서 영성부원군(寧城府院君) 최항(崔恒), 우의정 김국광(金國光), 서평군(西平君) 한계희(韓繼禧), 우찬성 노사신(盧思愼), 형조판서 강희맹(姜希孟), 좌참찬 임원준(任元濬), 우참찬 홍응(洪應),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성임(成任), 서거정(徐居正)에게 명령하시어, 여러 조목을 한데 모아 상세히 살펴 선택한 뒤에 편찬해서 책을 만들되, 번잡한 것을 버리고 되도록 정밀하고 간략하게 하며, 모든 조치는 임금의 결재를 받도록 하였다. 또 영순군(永順君) 부(溥)와 하성부원군(河城府院君) 정현조(鄭顯祖)에게 명하여 책의 출납을 맡도록 하셨다.

책이 완성되어 여섯 권으로 만들어 바치니, 『경국대전(經國大典)』이라는 이름을 내리셨다. 「형전(刑典)」과 「호전(戶典)」은 이미 반포되어 시행하고 있으나 나머지 네 법전은 미처 교정을 마치지 못했는데, 세조께서 갑자기 승하하시니 지금 임금[예종]께서 선대왕의 뜻을 받들어 마침내 하던 일을 끝마치고 나라 안에 반포하셨다.

신은 가만히 생각하건대, 천지가 넓고도 큼에 만물이 뒤덮여 있지 않은 곳이 없고, 춘하추동 네 계절[四時]이 끊임없이 운행함에 만물이 생육(生育)되지 않는 때가 없으며 성인이 법을 만듦에 만물이 흔쾌히 볼 수 없는 것이 없으니, 진실로 성인께서 법을 만드심은 천지와 네 계절과 바이다 같은 것이다.

예로부터 법을 만든 융성함이 주나라만 한 것이 없는데, 『주관(周官)』4)에서는 육경(六卿)5)을 나누어 천지와 네 계절에 짝하였으니, 육경의 직책은 하나만 없어도 안 된다.

우리 태조 강헌대왕(康獻大王)께서는 천명과 인심에 순응하시어 나라를 이룩하시고는 법도(法度)를 세우며 기율(紀律)을 마련하시니, 규모가 원대하셨다. 삼종(三宗)께서 서로 이어받아 훌륭한 법을 만들어 후손에게 물려주시니 제도가 밝게 갖추어졌다. 세조께서는 신성한 생각과 밝으신 지혜로 성대히 법을 제정하여 모두 법도에 맞았으니 천고(千古)에 뛰어났다.

임금(예종)께서는 총명하시어 선대왕들이 만들어 놓은 법을 그대로 지키며 행하였고, 금과옥조(金科玉條)를 구슬로 새기어 영원히 빛을 남기시니, 아름답고 거룩함이 그지없도다.

『육전』이란 곧 주나라의 육경이고, 그 좋은 법과 아름다운 뜻은 곧 주나라의 「관저(關雎)」와 「인지(麟趾)」6)이다. 문장과 품격은 알맞게 조화하여 찬란하게 빛나는데, 누가 우리의 『경국대전』의 제작이 주관⋅주례와 서로 견줄 만하지 않다 하겠는가.

천지와 사시에 맞추어도 어그러짐이 없고 옛 것에 고증해 보아도 틀리지 않는다. 먼 훗날 성인이 다시 나타난다 하여도 의혹되지 않을 것을 알 수 있다. 지금부터 신성한 자손이 이미 이룩한 법규를 따름에 그르치지 않고 잊지 않는다면 우리 나라가 문명(文明)으로 다스려질 것이니 어찌 한갓 주나라의 융성함에 비할 뿐이겠는가. 억만년 무궁한 왕업이 마땅히 유구하면 할수록 더욱더 오래될 것이다.

성화(成化) 5년(기축년, 1469) 9월 하순에 정헌대부 호조판서 겸 예문관 대제학 동지경연사서거정은 머리를 숙여 절하고 삼가 서문을 쓴다.

경국대전』서

1)수성지주(守成之主) : 창업지주(創業之主), 곧 나라를 처음 세운 군주의 뒤를 이어 나라의 물려받고 지키는 군주를 말한다.
2)삼장약법(三章約法) : 한(漢)나라 고조(高祖)가 진(秦)의 까다로운 법을 모두 없애고 다만 살인한 자에게는 사형을, 남을 다치게 하거나 도둑질한 자에게 그에 합당한 벌을 주기로 약속한 세 가지 법률을 말한다.
3)『육전(六典)』 : 당(唐)나라 현종(玄宗)이 『주례(周禮)』의 6전을 본떠 편찬한 『당육전(唐六典)』을 가리킨다.
4)『주관(周官)』 : 『주례(周禮)』의 원래 이름으로 주나라 관직에 대한 것을 기록했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5)육경(六卿) : 주례(周禮)』에 나오는 천관(대총재), 지관(대사도), 춘관(태종백), 하관(대사마), 추관(대사구), 동관(대사공)의 여섯 장관을 말한다. 이들 육경의 소관을 육전이라 했으며 조선 왕조의 육조(六曹) 역시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6)「관저(關雎)」와 「인지(麟趾)」 : 육경의 내용과 정신이 주나라의 시작과 끝이라는 의미이다. 「관저」는 군자가 숙녀를 얻어 즐기는 정경을 읊은 내용으로 『시경(詩經)』 「국풍(國)」 주남(周南)의 첫 장이고, 「인지」는 주나라 문왕(文王) 우비(右妃)가 덕을 닦아 자손 이 모두 그 선행에 감화된 것을 읊은 내용으로 주남의 종장이다.

自古, 帝王之有天下國家也. 創業之主, 經綸草昧, 而未遑典故, 守文之君, 遵守舊章, 而又無事於制作. 雖曰漢高筭無遺策, 而三章之法, 略存䂓模. 史稱唐家萬目俱張, 而六典之作, 猶俟中葉, 况下於漢唐者乎. 恭惟世祖, 握符中興, 功兼創守. 文昭武定, 禮備樂興, 猶孜孜圖理, 恢弘制作. 嘗謂左右曰, 我祖宗深仁厚澤, 宏䂓懿範, 播在令章者, 曰元續六典謄錄. 又有累降敎㫖, 法非不美, 官吏庸愚, 眩於奉行. 良由科條浩繁, 前後牴牾, 不一大定耳. 今欲斟酌損益, 删定會通, 爲萬世成法. 仍命寧城府院君臣崔恒⋅右議政臣金國光⋅西平君臣韓繼禧⋅右賛成臣盧思愼⋅刑曹判書臣姜希孟⋅左叅賛臣任元濬⋅右叅賛臣洪應⋅同知中樞府事臣成任暨臣居正, 裒集諸條, 詳加採擇, 撰次爲書, 删煩削冗, 務要精簡, 凡所措置, 皆禀睿裁. 又命永順君臣溥⋅河城府院君臣鄭顯祖, 掌出納書. 既成, 釐爲六卷以進, 賜名曰經國大典. 刑⋅戶二典, 既已頒行, 四典未及讎正, 八音遽遏, 聖上遹追先志, 遂訖就緖, 用頒中外. 臣竊念 天地之廣大也, 萬物無不覆載, 四時之運行也, 萬物無不生育, 聖人之制作也, 萬物無不欣覩焉. 信乎聖人之制作, 猶天地與四時也. 自古制作之隆, 莫如成周, 周官以六卿, 配之天地四時, 六卿之職, 闕一不可也. 我太祖康獻大王, 應天順人, 化家爲國, 立經陳紀, 䂓模宏逺. 三宗相承, 貽謀燕翼, 制度明備. 世祖神思睿智, 制作之盛, 動契典則, 卓越千古. 殿下聦明, 時憲是遵是行, 金科玉條, 刻之琬琰, 垂耀無極, 猗歟盛㦲. 其曰六典, 即周之六卿, 其良法美意, 即周之關雎麟趾. 文質損益之宜, 彬彬郁郁, 孰謂大典之作, 不與周官周禮而相爲表裏乎. 建諸天地四時而不悖, 考諸前聖而不謬, 百世以俟聖人而不惑者, 可知矣. 繼自今聖子神孫, 率由成憲, 不愆不忘, 則我國家文明之治, 豈唯比隆於成周而已乎. 億萬世無疆之業, 當益悠久而悠長矣. 成化五年, 己丑九月下澣, 正憲大夫戶曹判書兼藝文館大提學同知經筵事臣徐居正, 拜手稽首, 謹序.

『經國大典』序

이 사료는 1469년(예종 1년)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이 지은 『경국대전(經國大典)』 서문이다. 『경국대전』은 조선 사회가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하는 중앙 집권적 양반 관료 정치 체제의 통치 규범을 성문화한 법전이다. 서문을 지은 서거정은 문신으로 45년간 여섯 왕을 섬겼다. 『동국통감(東國通鑑)』⋅『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편찬에 참여했고,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을 국역하였다. 이 외에 『사가집(四佳集)』, 『동인시화(東人詩話)』, 『동문선(東文選)』을 남겼다.

고려 말의 모순을 극복하고 조선 왕조를 개창한 건국 세력들은 새로운 통치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성문 법전 편찬에 착수하였다. 의정부육조 중심의 관료제와 과전법을 통한 경제 제도, 군현의 조정 및 양반 중심의 신분 제도가 정비되었는데, 이를 효율적으로 운영할 법전을 정비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세조(世祖, 1455~1468)는 즉위하자마자 법전 편찬을 위해 육전상정소(六典詳定所)를 설치하여 마침내 1485년(성종 16년) 조선 왕조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을 반포할 수 있었다. 『경국대전』 반포는 국왕 정점의 중앙 집권적 관료제를 밑받침하는 통치 규범의 확립을 의미하였다.

경국대전』은 새로운 법을 제정, 편찬한 것이 아니고 조선 건국 이래로 『경제육전(經濟六典』, 『원육전(元六典』, 『속육전(續六典)』, 『등록(謄錄)』 등 각종 법전에 수록된 수교(受敎)와 수판(受判) 등의 조령(條令)에다 문종(文宗, 1450~1452) 대부터 성종(成宗, 재위 1469~1494) 대에 걸친 역대 수교를 증보하여 엮은 이른바 조종(祖宗)의 수교를 집대성한 것이다.

경국대전』은 육전 체제(六典體制)로 각기 14~61개의 항목으로 이루어졌다. 편제와 내용은 「이전(吏典)」⋅「호전(戶典)」⋅「예전(禮典)」⋅「병전(兵典)」⋅「형전(刑典)」⋅「공전(工典)」의 순서로 되어 있고, 각 전마다 필요한 항목으로 분류하여 규정하였다. 「이전」은 궁중을 비롯하여 중앙과 지방의 직제 및 관리의 임면과 사령, 「호전」은 재정을 비롯하여 호적⋅조세⋅녹봉⋅통화와 상거래 등, 「예전」은 여러 종류의 과거와 관리의 의장⋅외교⋅의례⋅공문서⋅가족 등, 「병전」은 군제⋅군사, 「형전」은 형벌⋅재판⋅노비⋅상속 등, 「공전」은 도로⋅교량⋅도량형⋅산업 등에 대한 규정을 실었다.

경국대전』의 편찬과 시행은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첫째, 국왕을 정점으로 하는 중앙 집권적 전제 정치의 필연적 요청으로써 법치주의에 입각한 왕조 통치의 법적 기초라 할 수 있는 통치 규범 체계가 확립되었다. 둘째, 여말 선초 이래 타당성과 실효성 있는 고유법을 성문화하여 중국 법의 급작스럽고 무제한적 침투에 대비한 방파제가 되었다. 또 영구불변성이 부여되어 고유법의 유지, 계승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셋째, 특히 「형전」의 규정에는 조선적 특수 형법 사상이 담겨 있어 『대명률(大明律)』보다 우선적으로 적용되었다.

경국대전』이 반포된 뒤 『대전속록(大典續錄)』⋅『대전후속록(大典後續錄)』⋅『수교집록(受敎集錄)』 등과 같은 법령집과 『속대전(續大典)』⋅『대전통편(大典通編)』⋅『대전회통(大典會通)』과 같은 법전이 편찬되어 개정 혹은 폐지된 조문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경국대전』의 기본 이념은 면면히 이어 내려왔으며, 대전 조문은 훗날의 법전에서 삭제되어서는 안 되는 신성한 ‘조종지법(祖宗之法)’의 지위를 차지하였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조선 건국과 경국대전 체제의 형성-조선 건국과 유교 문화의 확대-」,『동방학지』,도현철,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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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국대전과 유교국가 조선의 예치-예의 형식화 과정을 중심으로-」,『사회과학논집』,최연식⋅송경호,연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2007.
「『경국대전』성립 배경에 대한 연구」,『동국사학』15⋅16합,황용운,동국사학회,2004.
저서
『조선건국과 경국대전체제의 형성』, 오영교, 혜안, 2004.
『경국대전 연구』, 윤국일,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1986.
『경제육전습유』, 전봉덕, 아세아문화사, 1989.
편저
「『경국대전』의 편찬과 계승」, 박병호, 국사편찬위원회,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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