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조선 전기정치유교적 통치 질서의 확립

언관의 역할

대관(臺官)

어사부(御史府)는 당연히 높아야 한다(御史府當尊).

어사부가 높으면 천자(天子)도 높아지니, 어사부는 조정 기강의 직책이 된다. 그러므로 공경(公卿)과 재상(宰相) 이하 대신이 모두 가슴을 졸이고 숨을 죽이며 어사부에 나아가 옳고 그름을 판단 받아야 하니, 오부(烏府)는 천자의 귀와 눈[耳目〕이요, 궁궐의 당폐(堂陛)가 된다. 이목의 총명함과 당폐의 준정(峻正)함이 없으면 천자도 존귀할 수 없다.

일을 말함에는 용감해야 한다. ……(중략)……

어사(御史)

임금이 방탕하여 덕을 잃고, 패란(悖亂)하여 도를 잃었으며, 정사를 어지럽히고 간쟁을 받아들이지 않고, 충성된 이를 폐하고 어진이 쓰기를 게을리 하면 어사부가 이를 간책(諫責)할 수 있다. 재상이 그릇된 일을 따르고 임금의 뜻만을 순종하며, 위로는 임금을 가리고 아래로는 백성을 속이며, 총애를 탐하여 간할 것을 잊고 복을 오로지 하고 위세를 부리면, 어사부가 이를 규탄하여 바로잡을 수가 있다. 장수가 흉악하고 사나워 명을 따르지 않고 무력을 믿고 함부로 해치거나, 군사를 자기 노리개로 삼고 전쟁하는 일은 버리고 폭리(暴利)로 백성에게 해독을 끼치면 어사부가 이를 탄핵할 수 있다. 임금은 지극히 존귀하고 재상과 장수는 지극히 귀하나, 또한 이들을 간하고 책하며 규찰하고 탄핵할 수 있으니, 나머지는 가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사대의 중함(一臺之重)

대저 심기가 굳세고 독특하며 바른말을 꺼리지 않고 자립(自立)하여 바른말과 곧은 기개로 세력이 강한 상대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을 어사로 삼아야 한다. 그러므로 어사대의 명망(名望)은 족히 사방의 의표(儀表)가 되며, 어사대의 위엄은 족히 백관을 묶어 바로잡을 수 있으며, 어사대에 속한 것은 족히 만사를 진작(振作)시킬 수 있으며, 어사대의 귀함은 족히 조정을 무겁게 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국가의 큰 좀벌레[大蠹]를 제거할 수 있고, 군국(郡國)의 간사한 무리를 안핵(按劾)할 수 있으니, 천하의 큰 이해(利害)와 생민의 휴척(休戚), 백관의 폐치(廢置)와, 뭇 이속(吏屬)의 출척을 감독하고 살펴서 임금에게 조사하여 보고할 수 있는 것이다. ……(하략)……

『삼봉집』권6, 『경제문감』하, 대관

간관(諫官)

간관과 재상의 동등함[諫官與宰相等]

구경(九卿)과 백집사(百執事)는 각자 그 직분을 가지고 있어서, 이부(吏部)의 관리가 병부(兵部)를 다스릴 수 없고, 홍로시(鴻臚寺)의 경(卿)이 광록시(光祿寺)를 다스릴 수 없으니, 각자 그 지키는 바가 있는 것이다.

천하의 득실(得失)과 민생의 이해(利害), 사직(社稷)의 대계(大計)와 같이, 오로지 그 듣고 보는 것가 직사(職司)에 얽매이지 않는 것은 오직 재상만이 행할 수 있고, 간관만이 말할 수 있을 뿐이기에, 간관의 직위가 비록 낮지만 재상과 동등한 것이다. 천자가 ‘안 된다’ 하더라도 재상은 ‘됩니다’ 할 수 있으며, 천자가 ‘그렇다’ 하더라도, 재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할 수 있으니, 묘당에 자리 잡고 앉아서 천자와 더불어 가부(可否)를 상의할 수 있는 자는 재상이다. 천자가 ‘옳다’ 하더라도, 간관은 ‘옳지 않습니다’ 할 수 있으며, 천자가 ‘꼭 해야겠다’ 하더라도, 간관은 ‘반드시 해서는 안 됩니다’ 할 수 있으니, 전폐(殿陛)에 서서 천자와 더불어 시비를 다툴 수 있는 자는 간관이다. 재상은 그 다스리는 도(道)를 마음대로 행하며, 간관은 그 말할 바를 마음대로 행하기에, 말도 행해지고 도(道) 역시 행해진다. 구경과 백집사는 하나의 직책을 지키는 자들이라 한 직분의 소임만을 맡으나, 재상과 간관은 천하의 일을 엮으니, 또한 천하의 책임을 맡은 것이다. ……(중략)……

간쟁하는 신하는 임금의 곁에 있어야 한다(諫臣當在左右).

천자가 존경하여 듣는 자는 재상이지만, 재상과 만나는 것은 시기가 맞아야 하니 몇 날이 되도록 오래도록 만날 수 없기도 한다. 그러나 오로지 간쟁하는 신하(諫臣)만은 재상을 따라 들어가 일을 아뢰되, 아뢰기를 마치면, 재상은 중서성(中書省)으로 물러가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간관의 출입과 언동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임금과 서로 친밀하여 마땅히 물러가야 한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이렇게 하여 일의 득실이, 아침에 생각한 것을 저녁까지 기다리지 않고 말할 수 있으며, 저녁에 생각한 일은 하룻밤을 넘기지 않고도 말할 수 있으며, 대답하지 않으면 강력히 변쟁(辨諍)할 수 있다. 여러 차례 입시하여 진술하기를 의당 이렇듯 상세하고 실정대로 하니 비록 간사한 자나 용렬한 사람이 임금의 곁에 가고자 하더라도 그 틈을 얻을 수가 없었다. ……(중략)……

간관과 어사(御史) 직분의 차이(諫官御史其職略異)

간관과 어사는 비록 모두 말하는 책임을 맡은 신하가 되지만, 그 직분은 각각 다르니, 간관헌체(獻替)를 관장하여 임금을 바르게 하고, 어사는 규찰(糾察)을 관장하여 모든 관리(百僚)를 다스린다. 그러므로 임금에게 허물이 있으면 간관이 주독(奏牘)하고, 신하가 법을 어기는 일이 있으면 어사가 봉장(封章)한다. ……(중략)……

시비를 감히 말하지 않는다(是非不敢言).

사리에는 어떤 시비가 있게 마련인데, 오늘날 조정에서는 이 시비를 감히 판별해 내려 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재상 같은 이는 굳이 임금의 뜻을 거스르려고 하지 않고, 대간 역시 재상의 뜻을 건드리려 하지 않는다. 이제 천하에서 시비를 감히 논하려 하지 않는 자들만 조정에 모여 있고, 또 감히 심하게 말하려 하지 않는 자들만을 가려서 대간을 삼는 짓이 이미 풍습을 이루고 말았으니, 어떻게 일을 이룰 수 있겠는가? ……(하략)……

『삼봉집』권6, 『경제문감』하, 간관

臺官

御史府當尊.

御史府尊, 則天子尊, 御史府爲朝廷紀綱之職. 故大臣由公相已下, 皆屛氣切息, 就我而資正, 烏府爲天子之耳目, 宸居之堂陛. 未有耳目聰明堂陛峻正, 而天子不尊也.

……(中略)……

言事當勇 ……(中略)……

御史.

君有佚豫失德, 悖亂亡道, 荒政咈諫, 廢忠慢賢, 御史府得以諫責之. 相有依違順旨, 蔽上罔下, 貪寵忘諫, 專福作威, 御史府得以糾繩之. 將有兇悍不順, 恃武肆害, 玩兵棄戰, 暴利毒民, 御史府得以彈劾之. 君至尊也, 相與將至貴也, 且得諫責糾劾之, 餘可知也.

一臺之重.

夫骨鯁介特. 謇諤自立, 讜言直氣, 不畏強豪者之爲御史. 故一臺之望, 足以儀四方也, 一臺之威, 足以繩百僚也, 一臺之屬, 足以振萬事也, 一臺之貴, 足以重朝廷也. 故國家有大蠹, 可得以去也, 郡國有大姦, 可得以按也. 天下之大利害, 生民之大休戚, 百官之廢置, 群吏之黜陟, 皆得督視而劾聞焉.

『三峰集』卷6, 『經濟文鑑』下, 臺官

諫官

諫官與宰相等.

九卿百執事, 各有其職, 吏部之官, 不得治兵部, 鴻臚之卿, 不得治光祿, 以其有守也. 若天下之得失, 生民之利害, 社稷之大計, 惟所見聞而不繫職司者, 獨宰相可行之, 諫官可言之爾, 諫官雖卑, 與宰相等. 天子曰不可, 宰相曰可, 天子曰然, 宰相曰不然, 坐乎廟堂之上, 與天子相可否者, 宰相也. 天子曰是, 諫官曰不是, 天子曰必行, 諫官曰必不行, 立乎殿陛之前, 與天子爭是非者, 諫官也. 宰相專行其道, 諫官專行其言, 言行道亦行也. 九卿百執事, 守一職者, 任一職之責, 宰相諫官, 繫天下之事, 亦任天下之責. ……(中略)……

諫臣當在左右.

天子所尊而聽者宰相也. 然接之有時不得數日久矣, 唯諫臣隨宰相入奏事, 奏已宰相退歸中書, 蓋常然矣, 至於諫官出入言動, 早暮相親, 未聞所當退也. 如此則事之得失, 早思之, 不待暮而以言可也. 暮思之, 不待越宿而以言可也. 不諭則極辨之可也, 屢進陳之, 宜莫若此之詳且實也, 雖有邪人庸人, 莫得而一間焉. ……(中略)……

諫官⋅御史其職略異.

諫官⋅御史, 雖俱爲言責之臣, 然其職各異. 諫官掌獻替以正人主, 御史掌糾察以繩百僚, 故君有過擧則諫官奏牘, 臣有違法則御史封章. ……(中略)……

是非不敢言.

蓋事理只有一个是非, 今朝廷之上, 不敢辨別這是非, 如宰相固不欲逆上意, 臺諫亦不欲忤宰相意. 今聚天下之不敢言是非者在朝廷, 又擇其不敢言之甚者爲臺諫, 習以成風, 如何做得.

『三峰集』卷6, 『經濟文鑑』下, 諫官

이 사료는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이 1396년(태조 5년)에 편찬한 『경제문감(經濟門鑑)』 중 대관(臺官)과 간관(諫官)에 대해 논한 글이다. 정도전언관(言官)의 기능을 강화함으로써 관료 체제의 균형과 안정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대간이란 언관을 담당하던 사헌부와 사간원을 통칭한다. 사헌부는 관료의 부정부패를 다스리는 대관이고, 사간원은 국왕의 독주에 간쟁(諫諍)하는 간관이다. 이 둘을 합해서 일반적으로 대간이라 했다.

고려 시대에는 중국의 제도를 도입하여 시행한 어사대(御史臺)와 문하부(門下府)의 낭사(郎舍)가 언관 기능을 하였다. 이때 어사대는 관리를 규찰하고, 문하부의 낭사는 국왕에 대한 간쟁을 각각 수행하였다. 그러다가 조선 시대에 이르러 어사대가 사헌부로 고쳐져서 정 3품의 아문으로 승격하는 한편, 1400년(태종 1년) 문하부가 폐지될 때 그 낭사들은 사간원(司諫院)이란 독립 관부가 되었다.

이에 사헌부의 대사헌과 사간원의 대사간도 이전 시기보다 직급이 높아졌다. 사헌부와 사간원은 각각 맡은바 업무가 달랐지만 실상은 같은 사찰 업무를 담당하여서 서로 보완적인 위치에 있었다. 이들은 언관으로서 공론(公論)을 주도하고 휘하에 감찰(監察)을 두어 사정 업무를 담당하였다. 감찰은 관원의 불법 행위, 각종 집회, 각종 제사, 부당 상거래, 조회, 과거시험장 등 모든 곳의 부정을 감찰하였다. 따라서 외근이 많았다. 아침에 출근하면 지평이 업무를 분담시키는데 이를 분대(分臺)라 하였다.

대간에는 당대 최고의 인물들이 포진하였다. 우선 가문 좋고, 문과에 우수한 성적으로 급제해야 하며, 성격은 강직해야 했다. 여기에 높은 학문과 양반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래서 이들을 ‘청요직(淸要職)’이라고도 불렸다. 대간은 목숨을 잃더라도 직언할 수 있어야만 했고, 무엇보다 청렴해야 했다. 또한 상피(相避)라 하여 친인척이 함께 대간에 될 수는 없었다.

대간이 갖는 특권 가운데 하나가 서경권(署經權) 행사였다. 새 법을 만들 때와 신규 인사가 있을 때 이를 심의할 권한이 있었다. 이에 대해 50일 이내에 가부를 판정해야 했다. 이 때문에 국왕과 갈등을 빚기도 하였다. 서경은 5품 이하에만 해당했고 4품 이상은 국왕이 직접 임명하였다. 그런데 대간은 4품 이상 관직에 대해서도 탄핵을 할 수 있는 권한은 가지고 있었다.

대간 제도의 존재 의미는 신료 내부의 상호 견제 작용에 의한 권력 구조의 안정에서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조선 시대는 대간 제도를 잘 활용하여 왕권 및 의정부육조(특히 이조)와 상호 견제하여 정치의 안정을 도모하는 데 큰 구실을 하였다.

그러나 대간이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정권 다툼에 이용될 때는 많은 폐단을 낳을 위험성도 있었다. 결국, 그와 같은 가능성은 성종(成宗, 재위 1469~1494) 때 신구 세력의 대립과 그로 인한 연산군(燕山君, 1476~1506) 때의 사화 및 선조(宣祖, 재위 1567~1608) 이후의 붕당 정치에서 현실로 나타났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저서
『조선 시대 대간 연구』, 정두희, 일조각, 1994.
『조선 초기 정치지배세력 연구』, 정두희, 일조각, 1983.
『조선시대의 대간 연구』, 정두희, 한국연구원, 1989.
『조선 초기 언론사 연구』, 최승희, 지식산업사, 2004.
『조선 초기 정치사연구』, 최승희, 지식산업사, 2002.
『조선초기 6조와 통치 체제』, 한충희, 계명대학교 출판부, 1998.

관련 사이트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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