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조선 전기정치유교적 통치 질서의 확립

음서제의 시행

【음자제(蔭子弟)】

매년 정월에 실시한다.

○ 공신(功臣) 및 2품(品) 이상의 아들(子)⋅손자(孫)⋅사위(壻)⋅형제(弟)⋅조카(姪)와 【원종공신(原從功臣)의 경우는 아들(子)과 손자(孫)에만 한정한다.】 실직(實職) 3품(品)인 자의 아들(子)⋅손자(孫), 일찍이 이조(吏曹)⋅병조(兵曹)⋅도총부(都摠府)⋅사헌부(司憲府)⋅사간원(司諫院)⋅홍문관(弘文館)⋅부장(部將)⋅선전관(宣傳官)을 거친 자의 아들(子)로서 나이가 20세 이상인 자에게 시험을 보게 하여 임용한다. 녹사(錄事)1)에 속하고자 하는 자는 들어 준다.

경국대전』권1, 「이전」, 취재

1)녹사(錄事) : 조선 시대 의정부(議政府), 중추원(中樞院)에 속한 상급 서리(胥吏)의 관직. 공문서 작성과 전달 및 기타 잡무를 담당하였다.

【蔭子弟】每年正月. ○ 功臣及二品以上子⋅孫⋅壻⋅弟⋅姪【原從功臣則子⋅孫】. 實職三品者之子⋅孫, 曾經吏曹⋅兵曹⋅都摠府⋅司憲府⋅司諫院⋅弘文館⋅部將⋅宣傳官者之子, 年二十以上, 許試敍用. 欲屬錄事者聽.

『經國大典』卷1, 「吏典」, 取才

이 자료는 『경국대전』이전(吏典)에 규정된 조선 시대 음서(蔭敍)와 관련한 규정이다. 음서란 조상의 음덕이나 공훈 덕분에 그 자손이 시험을 거치지 않고도 관직에 나아갈 수 있는 제도이다.

음서는 고려 시대 귀족 사회에서 상당히 성행하였다. 고려 시대 음서는 성격상 문음(門蔭)과 공음(功蔭)으로 구별된다. 문음은 특별한 공훈과는 상관없이 시행되는 음서 제도이고, 공음은 조상의 공훈으로 자손들이 음서 혜택을 받는 경우를 말한다. 『고려사』의 선거지(選擧志)에 규정된 음서에 따르면, 문무 5품 이상 관원의 자손을 비롯해 왕실의 후예, 공신의 자손들이 음서 혜택을 받았다. 그리고 음서 혜택은 친가나 외가, 처가 등에서 모두 받을 수 있으며, 혜택을 받는 자손의 범위는 아들을 비롯해 친⋅외손자, 동생과 형제의 아들, 누이의 아들, 사위 등이었다. 음서의 시행은 정해진 시기가 없이 아무 때나 시행되었고, 음서로 관직을 제수 받는 경우에는 특별한 시험이 없었다. 이러한 고려 시대의 음서 제도는 고려 귀족 사회를 안정화시키고 특권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요소였다.

이에 비해 조선의 음서 제도는 달랐다. 조선의 음서 제도는 1392년(태조 1) 7월 실직(實職) 3품 이상을 역임한 자의 장자(長子)나 장손, 그리고 장자가 유고(有故)일 때는 차자(次子)에게 음서로 관직을 제수하게 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그 대상이 점차 확대되었으며, 앞서 제시한 『경국대전』에 따르면 공신이나 2품 이상의 관원, 그리고 이조나 병조를 비롯해 사헌부나 사간원 등 청요직을 역임한 관원의 아들이나 손자는 물론 사위나 동생이나 조카들에게까지 확대되었다. 원종공신의 경우에는 아들과 손자만이 그 대상이었다. 다만 음서 제도는 고려 시대의 5품 이상 관원에서 2품 이상 관원 및 3품 이상 청요직을 역임한 관원으로 축소되었다.

여기에 더해 음서 제도의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이조(吏曹)에서 주관하는 음자제취재(蔭子弟取才)라는 시험을 통과해야만 하였다. 음자제취재는 매년 1월에 사서(四書) 오경(五經) 중 각각 하나씩 시험 보는 제도로, 여기서 합격한 이들은 조부나 부친의 실직(實職) 관품에 따라 정7품에서 종9품까지 품계(品階)를 달리 하여 관직을 제수 받았다.

이상과 같이 조선 시대는 고려 시대에 비해서 음서 제도를 축소하는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음서 제도 출신에 비해 과거 출신을 우대하는 양상이 전개되었다. 다만 한편으로는 충순위(忠順衛) 설치나 대가제(代加制) 시행 등을 통해 음서 제도의 혜택이 줄어든 것을 보완하기도 했다. 충순위(忠順衛)는 조선 시대 3품 이상 고위 관리들의 자손들로 구성된 병종(兵種)으로 1445년(세종 27) 설치하여 중앙군인 오위(五衛)의 충무위(忠武衛) 소속되었으며, 일정 기간 복무를 마치면 다른 관직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 대가제(代加制)란 문무의 현직자가 정3품 당하관의 품계 이상이 되면 국왕의 즉위나 공훈 등으로 인해 자신에 더해진 품계를 아들이나 사위, 형제, 조카 중 1인에게 줄 수 있는 제도였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과거와 음서-고려 귀족사회의 두 가지 등용문」,『한국사시민강좌』46,김용선,일조각,2010.
「조선 전기의 음서제도」,『아시아문화』6,김용선,한림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1990.
「조선초기 음서제와 과거제」,『한국사학』12,이성무,한국정신문화연구원,1991.
「조선 초기 음서의 실제와 역할-추요역임자와 거족출신사환자의 역관분석을 중심으로」,『한국사연구』91,한충희,한국사연구회,1995.
편저
「양반」, 이성무, 국사편찬위원회,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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