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조선 전기정치지방 제도의 정비

지방관의 포상과 징계

사헌부에서 어가(御駕) 앞에서 곧바로 글을 올리는 것[직정(直呈)]을 금지하는 법과 수령을 포폄하는 법을 올리니, 임금께서 따랐다. ……(중략)…… 또 아뢰기를, “수령을 포폄할 때 덕행(德行)과 등제(等第)만을 널리 칭찬하고 실효의 유무를 논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수령들이 헛된 명예를 힘써 구하고자 사신(使臣)과 과객(過客)에게 아첨하고 품관(品官)과 향리에게 잘 보이니 정작 실효를 거두는데 힘써 행하는 자가 없습니다. 지금부터 행장(行狀) 뒷면에 적은 일곱 가지 일[七事]을 고찰하고 등제와 실효를 사목(事目)으로 나누어 각각의 성명 밑에다 자세히 기록하여 아뢰어 출척(黜陟)의 증거로 삼으소서”라고 하였다.

일곱 가지 일은 다음과 같다.

1. 진심으로 인(仁)과 서(恕)를 행하는 일[존심인서(存心仁恕)] : 궁핍한 사람을 진휼한 것이 몇 사람이며, 늙고 병든 사람을 돌본 것이 몇 사람인가?

1. 몸소 청렴근신(淸廉謹愼)을 행하는 일[(행기겸근(行己廉謹)] : 낭비되는 비용을 어느 어느 일에서 절감하였는가? 세금을 줄인 것이 어느 어느 일이며, 아침저녁으로 노고한 것은 어느 어느 일인가?

1. 조례와 명령[條令]을 받들어 행하는 일[봉행조령(奉行條令)] : 부임한 이래로 받들어 행한 일이 어떤 일이며, 방을 내걸고 대중들을 깨우쳐 알 수 있게 한 것이 몇 가지 항목인가?

1. 농사와 누에치기를 권장하는 일[권과농상(勸課農桑)] : 경내에 저수지[제언(堤堰)] 몇 곳을 쌓고 성을 수축한 곳이 몇 곳이며, 부임한 후에 백성에게 뽕나무 심기를 권장하여 한 집에 몇 그루씩 심었으며, 관에서 모종한 뽕나무를 분급하여 재배한 것이 한 집에 몇 그루인가? 백성에게 수차(水車)를 만들도록 권고한 것은 한 마을에 몇 개씩이며, 관에서 만들어 보급한 것은 한 마을에 몇 개씩인가? 경작을 권고한 것은 몇이며, 온 집안이 병을 앓고 있는 자는 이웃으로 하여금 경작해 주게 하고, 그가 회복되기를 기다려 값을 갚아 주게 한 것이 몇인가?

1. 학교를 수선하는 일[수명학교(修明學校)] : 학교 몇 칸[間] 중에서 수리한 것이 몇 칸이며, 생도 몇 사람 중에서 독서하는 사람이 몇 명인데, 경서를 통한 사람은 몇 명인가?

1. 부역을 균평하게 하는 일[부역균평(賦役均平)] : 공부(貢賦)의 징수는 어떤 어떤 일이 공평하며, 군역의 차출은 어떤 어떤 일이 공평한가?

1. 소송 판결을 분명하게 하는 일[결송명윤(決訟明允)] : 노비 소송 몇 건 중에 올바로 판결한 것이 몇 건이며, 잡음을 일으킨 소송은 몇 건인가?

태종실록』권12, 6년 12월 20일(을사)

司憲府上禁駕前直呈及守令褒貶之法, 從之. ……(中略)…… 又啓, 守令褒貶, 汎稱德行等第, 不論實效有無. 以故守令務求虛譽, 行媚於使臣過客, 取悅於品官鄕吏, 未有力行實效者. 今後以狀後七事考察, 分爲等第實效事目, 各於名下, 具錄申聞, 以憑黜陟. 一. 存心仁恕. 賑恤窮乏者幾人, 惠養老疾者幾人. 一. 行己廉謹. 裁省冗費某某事, 減損收斂某某事, 早暮劬勞某某事. 一. 奉行條令. 到任以來, 奉行某某事, 板牓張掛, 諭衆申明幾條. 一. 勸課農桑. 境內堤堰幾所內, 修築幾所, 任後勸民植桑椹, 每一戶幾株. 官種桑椹, 分給栽植, 每一戶幾株. 勸民造水車, 每一里幾具, 官造作分給每一里幾具, 勸耕幾, 合家疾病者, 令隣里耕耨, 待其平復, 償價者幾. 一. 修明學校. 學校幾間內, 修治幾間, 生徒幾人內, 讀書幾人, 通幾經幾人. 一. 賦役均平. 貢賦收斂, 某某事均平, 軍役差定, 某某事均平. 一. 決訟明允. 奴婢相訟幾, 道內(決絶)〔決折〕幾道, 雜訟幾道.

『太宗實錄』卷12, 6年 12月 20日(乙巳)

이 사료는 1406년(태종 6년) 12월 사헌부에서 수령을 포폄하기 위해 제시한 방안을 수록한 것이다. 수령에 대한 포폄은 선정을 베풀었을 때 지방관을 포상하고, 치적이 나쁜 관원을 좌천시킨다는 의미에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고려 시대에는 고공(考功)이라는 평가 제도가 있었지만 체계적인 포폄 제도는 조선 시대에 와서 구체화되었다.

조선은 건국 이후 수령에 대한 포폄 기준을 발표하였고, 세종 1년(1419)에 가서는 경관(京官)도 포폄 대상에 포함시켰다. 특히 세종(世宗, 재위 1418~1450)은 포폄법과 순자법(循資法)을 정비하면서 포폄 대상의 범위를 계속 확대하였다. 태종(太宗, 재위 1400~1418) 초에는 5고 가운데 3중(中)을 받으면 쫓아내고 2중을 연속하여 받으면 관직을 옮기도록 하였는데, 세종 때 가서 우수한 사람에게 가자(加資)하는 규정을 추가하였다. 이러한 절차를 거쳐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 1년에 두 차례(6월 15일과 12월 15일) 고과하고, 평가는 상중하(上中下)로 하되, 10고의 경우 모두 상을 받으면 1계(階)를 올려 주고, 2중이면 무록관(無祿官)으로 임명하고, 3중이면 파직한다고 규정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하를 받아 파직된 자는 2년이 지나야 다시 등용할 수 있었다.

지방관의 포폄은 이에 앞서 수령 5사(守令五事)라고 하여 농지의 개척 상황[전야벽(田野闢)], 호구의 증가[호구증(戶口增)], 부역의 균등[부역균(賦役均)], 소송의 신속성[사송간(詞訟簡)], 도둑의 단속 업적[도적식(盜賊息)] 등이 주요 지표였다. 후에 교육 진흥과 예속 보급이 첨가되어 수령 7사(守令七事)가 확립되었다.

그 후 1483년(성종 14년)에 이르러 수령 7사의 순서를 바꾸고 간결하게 고쳤다. 이에 『경국대전』 이전 고과조에 농상성(農桑盛), 호구증(戶口增), 학교흥(學校興), 군정수(軍政修), 부역균(賦役均), 사송간(詞訟簡), 간활식(奸猾息) 등으로 규정하였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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